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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순례길을 만들자
강강술래 순례길을 만들자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6.1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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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레 경연대회 신안도초고

진도는 흔히 ‘원형의 섬’ 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수 천년 오랜 의식이 깃든 민속과 문화의 원형질이 가장 온전하게 남아 전승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진도는 또 다른 원형(圓形)의 섬이다. 새로운 세계를 품고 있는 바다 위의 알과 같다. 강강술래나 아리랑은 그 알의 원형성을 잘 드러내는 민속놀이이자 의례이다. 달빛처럼 은은하지만 새로운 변화와 대응에는 격렬한 회오리물결을 탄다.

지구는 다시 바다와 섬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진도는 조선 세종19년 재창설 이래 지방자치시대 30여 년 만에 ‘새로운 진도’로 재탄생하는 시대의 요구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6.1선거는 그런 뜻이 담겨 있었다. 군민들은 그에 맞게 깊은 성찰과 선택을 통해 민선 7기를 출발시키게 되었다.

새로운 진도군수는 진도민속문화 학예사가 되어야 한다. 건강복지마니아, 환경보호 옹호론자가 되어야 한다. 세일즈맨 타령만 할 일이 아니다. 문화는 자원이다.

“동요하는 배는 닻을 내려라!” 한 시인의 글 한 귀절이 새삼 떠오른다. 진도는 100여 년 근현대사에서 동요하는 섬이었다. 섬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뱃길도 점차 사라지고 ‘농사짓는 섬’으로 간척지 건설사업으로 1년 농사로 3년을 먹고 산다는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시대와 동떨어지고 단순한 다수확품종 생산은 가격 폭락 등으로 섬사람의 삶 자체가 등외품이 되고 말았다. 신군부시절 1984년 문내면 우수영과 녹진 바다에 진도대교가 건설되어 육지와 소통이 원할하게 되었다. 벽해가 상전이 되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그리고 이동진 민선6기에 진도군은 꿈에 그리던 해안일주도로가 완성 연결되었다. 산타모니카호가 제주간 직항로가 뜷려 육지에서 가장 빠른 노선으로 각광을 받는 중이다.

진도는 오래 전부터

 

민속의 섬이었다. 노래에 살고 노래따라 한 세상을 누리다 가는 생이었다. 모든 놀이는 그 공동체의 결속과 건강성을 다지는 상징이었다. 진도강강술래는 가장 전형적인 놀이의 정수라고 볼 수 있다.

어느 행간 서울에서 진도강강술래가 공연에 올려졌다. ‘우락’이었다. 지금에서는 진도에서도 특별한 날 야외에서 볼 수 있는 강강술래를 실내 무대 공연으로 보여주고 이를 원점(原點)으로 삼아 빈번한 실내 무대 공연을 통해 대중 속으로 다가가, 진도 아리랑처럼 누구나 쉽게 접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강강술래 대중화(大衆化)의 염원이 담긴 흥과 멋이며 아름다움의 봇물이었다.

소리꾼들이 돌아가면서 매기고 받는 강강술래 노래 소리 따라 하얀 저고리 녹색치마로 곱게 단장한 스물 넷 흰 고무신 디딤 발이 규칙적으로 그려내는 하얀 선의 아름다움은 바닷가에 밀려드는 파도 위 하얀 포물선의 넘실거림 같은 감동을 관객의 가슴속에 밀어 넣는다.

진도는 지상의 달이다. 진도순례길은 달의 생성력을 채우는 길이다.

이번 선거 기간 동안 여러 후보자들은 자신들이 진도의 농수산업에 대해 전문가임을 자처하였다. 또한 오래된 공약, 인구늘리기 약속을 했지만 실질적으로 군민 소득향상과 진도 자체의 메리트와 가치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문화적 접근에 매우 미흡한 편이었다. 너무 원론적인 입장만 있을 뿐이었다. 환경문제도 마찬가지다. 장수 트랜드가 없는 섬은 외면당한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진도는 중요한 변곡점 전환시대에 들어서 있다. 떠밀리고 있다. 그만큼 뒤떨어져 있었다. 섬은 소멸의 길을 가고 있다. 관광안내 책자의 한 페이지에 머물 뿐이다.

진도는 오래 동안 신들의 섬이었다. 신탁이 넘쳐나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바람이나 돌담헐, 볼메섬의 우실 담과 신우대에 불과했다. 아예 노래 속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달 밝은 밤 야외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누구나 아무나 어우러져 손에 손을 잡고 놀던 ‘강강술래’의 청어엮기·청어풀기, 고사리꺽기, 덕석몰기·덕석풀기, 바늘귀 끼기, 손치기·발치기, 지와(기와)밟기, 문지기, 꼬리따기’ 등을 무대공연으로 보여준 색다른 감흥에 빨려드는 행복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앞사람의 허리춤을 붙잡고 따라가며 밟는 장단에 좌우로 씰룩거리며 이어지는 스물 넷 뜀 꾼들의 엉덩이가 보여주는 유쾌한 즐거움은 무료(無聊)와 무상(無想)의 하루를 사는 범부들의 일상에 기쁨과 신명이라는 폭탄을 쏟아 부었다.

대한민국 서남해안에 현지 주민들에 의해 전해오는 지명 ‘강강술래터’는 진도 망금산 언덕이 유일하다. ‘명량(鳴梁)’은 한 영화감독에게뿐만 아니라 역사의 신이 진도군민들에게 준 위대한 선물이나 다름없다. 진도 문화해설가들은 더 다듬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다도해 랜드마크 진도타워와 백의종군 순례길에 나선 여행자들에게 감동과 매력을 안겨주어야 한다. 진도군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진도 명량바다 해저에서 인양된 수많은 유물들을 전시할 시설을 진도 연안에 조성토록 해야 한다. 용장산성 2차 발굴 조사, 고군 오산지역 선사유물 등도 마찬가지다.

 

강강술래를 하자.

‘남생아 놀아라, 개고리(개구리)타령, 강아지타령’으로 이어가며 화려한 조명 불빛 아래서 뛰고 돌고, 원을 그렸다 풀어내고, 주저앉았다 일어서고, 두 손으로 손뼉치다 바닥을 향해 때리고 하늘을 향해 뿌리면서 매김 소리 가락 따라 ‘강강술래 강강술래’ 돌고 뛰고 돌아가는 스물 넷 뜀 꾼의 청초함은 공연이 한 참 전에 다 끝난 지금 눈을 감아도 환상으로 다가온다.  

“재경진도군 향우회 강강술래 보존회” 회원들이 전문 예술인들과 비교되는 재미는 공연이란 출연자의 이력, 명성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 출연자들의 신명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관객의 마음이 뜨겁게 부풀어 오르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넘쳐날 때 행복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진도는 전체가 공연장이다. 영등축제때에 외국인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코리아 서울을 품은 진도 강강술래”의 희열(喜悅)은 오래오래 기억되게 해야 한다.

강강술래 / 강강술래 / 뛰어 보세 뛰어 보세 / 윽신 윽신 뛰어나 보세 / 높은 마당이 짚어(깊어)지고 / 짚은 마당이 얕아지게 / 윽신 윽신 뛰어나 보세/ 강강술래 / 강강술래 .

강강술래가 다시 살아난다. 정유재란 진도바다 해전 당시 의병술과 순절묘역, 벽파진 이충무공 전첩비가 강강술래로 연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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