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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 김정호칼럼 / 진도의 역사유적을 손질하라
학고 김정호칼럼 / 진도의 역사유적을 손질하라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7.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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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주어질때마다 진도의 역사유적을 더 돋보이게 손질하고 자랑할 것을 강조해 왔다. 완도는 겨우 장보고유적밖에 없지만 신안군은 자랑할만한 역사유적이 없어서 섬마다 특정 꽃을 심거나 지붕에 페인트칠을 해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몇 달전에 신안의 이같은 몸부림은 진도대교 준공뒤 3∼4년간 몰려들었던 관광붐에 견주어 ‘천사대교’구경이 거의 끝나고 나면 맹탕이 되고 말 것 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이에 견준다면 진도는 완도나 신안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을 특등품이라고 자랑할 것도 없이 두 곳과 다른 특징이 한국의 역사를 시대적으로 골구루 설명할만한 유적을 갖췄음을 밝힌바 있다. 왜 이점을 강조하느냐 하면 이제는 관광이 단순한 구경이나 먹거리에 그치지 않고 개성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형 관광으로 변해가는 시대추이를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도가 ‘역사의 섬’이며 ‘이야기의 섬’임을 자랑하는 첫 번째는 진도들목의 명량해협이다. 이곳에 해남을 잇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볼거리가 되고 있지만 진도타워는 옛날 우수영에 위급을 알리는 봉화대 터이다. 이 타워와 조력발전시험시설 사이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204호로 지정된 망금산 관방성터이다.

이곳을 사람들은 ‘강강술래터’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섬은 둘레가 450m로 백제때부터 그릇파편과 움막터, 성치 등이 발굴된 울돌목초소가 있던 관방터 이다. 이 성은 도지정문화재이므로 비록 복원사업은 안하더라도 그 주변 3백미터 거리에는 다른 시설을 할 수 없는 문화재보호구역인데도 진도군은 이에대한 의식없이 타워시설과 조력발전시험시설을 허가하고 있다.

이 관방터가 최소한 완도 장도 정도의 모습으로만 복원되어도 명량대첩 행사의 주목을 받을 수 있고 관광해설에 많은 이야기 꺼리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 관방성을 거쳐 해안따라 벽파진에 이르면 임진왜란에 대한 많은 지식을 덧붙일 수 있다. 음력 9월16일 명량대첩이일어난 시작인 사릿물의 드나듬이나 조금물에 대한 상식도 얘기할 수 있으며 근래 이 해역에서 발굴되고 있는 해저유물들 얘기도 곁들일 수 있다. 벽파정에서는 고려때 삼별초 얘기와 더불어 용장 행궁이야기와 용장산 정상의 제사터가 부안 죽막동제사유물이나 일본후꾸오까 일대의 바다 제사터(특히 오끼시마의 무나가다(宗像)의 유물과 관련되어 주목받는 항해기원의 제사터 이다.

용장성도 단순한 삼별초 행궁이 아니다. 그전에 용장사가 있어서 화순 능주 쌍봉사의 스님 만전이 살면서 토적질 했다는 얘기나 그가 최충헌의 손자 최항(崔沆)으로 아버지 최부가 죽자 정권을 잡은 뒤 문화시중을 지냈다. 오늘날의 성터는 조선초엽 목장으로 쓰기위해 증축한 목장성을 겸하고 있다. 이곳에 몽고식 겔트 몇동을 지어 몽고군과 대적한 삼별초군사들의 죽음을 대비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진도에는 직봉 3개봉수대가 있었고 그곳곁 만호성이 있었으며 군사시설이나 직봉, 군 관아에 연결하던 통신시설인 봉화대가 20곳 이상이어서 호국의 제일선에 있던 고장 이었음을 설명할 수도 있다.

선사시대에 고인돌은 5백여기나 있고 마한시대 유물이라는 옹관묘도 고군면 입석에 있다.

진도의 옛 유적중 일부 복원을 건의하고 싶은 것은 진도읍성이다. 진도군이 영암, 해남 등지로 피난생활을 하다가 1437년 해남과 진도군이 분군 될 때 쌓은 이 성은 그 둘레가 3,400자로 오늘날 지적도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쪽·군강공원 주변등에 450미터 가량의 성벽만 남아있을 뿐 옛 진도읍이 성돌로 애워싸여 있고 3개의 출입문이 있었던 사실은 아는이가 적다. 진도가 전통민속예술 특구라고 자랑하면서 향토문화회관 주변에 많은 전수관과 공연장만 건설할 것이 아니라 피난생활 80여년만에 되돌아와 쌓은 진도읍성을 완전복원은 하지 않을망정 진도군청 서쪽에 있던 서문(성내리 3∼8.9번지)을 복원하고 철마광장에 옛 읍성과 관아조감도를 크게 그려 전시하면 어떨까? 물론 나주시 처럼 흔적없이 사라진 남문루를 복원 못할 것도 없다.

운림산방 한켠 건물에 전시하고 있는 역사관을 소전서예관으로 바꾸고 현재있는 소전서예관에 진도읍 역사관을 서로 꾸미면 어떨까.

진도 무형문화재는 국가와 도지정을 합해 10종목이고 유형문화재는 국가지정 9건, 도지정 18건으로 무형문화재 보다 월등하게 많지 만 이 유형문화재의 자랑에는 소홀하다.

특히 남도 만호진성은 도내 성벽중 가장 빠른 복원공사가 시작되었는데도 아직 성내 민가만 철거한 폐허지 마냥 버려져 있다. 일본의 경우 세토나이내만에 있는 수궁진성들은 완벽하게 복원해 그 옛 관아건물을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은 통제사영이나 좌수영 등은 일부분 복원한바 있지만 만호급 수군진은 손질을 않고 있다.

진도 남도진성은 국내에서 가장 완벽하게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고 기왕에 관아 일부를 복원한바 있으므로 이곳에 조선시대 수군진의 편제나 복식, 무기 등을 복원해 전시해 수군진박물관이라 명명하고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남도진성은 성 건너 산에 작은 규모의 목마장을 만들고자 궁장답게 과녁을 설치하고 곁에 양궁장도 두어 관광객이나 수학여행학생들의 체험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목장의 말은 만호진성을 도는 체험용에 쓸 수도 있고 영화촬영에 동원할 수도 있다.

이 유적들을 진도의 새로운 명소로 꾸밀뜻이 있다면 만호목장 개설과 함께 남도성 남산의 정상에 있던 관해정을 복원해 조도해역 조망대로 활용하면 제격이다. 이 망대에 이르는 길은 방화임도라는 이름으로 개설하거나 등산로를 개설하고 이 길을 말을 타고 왕래 할수 있게 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고군 내동의 왜덕산과 더불어 이웃에 있는 입석동네 옹관묘시대 취락을 복원하고 입석에서 용장산성에 이르는 산책로도 옛길 복원이 될 것이다. 이런 복원에 앞서 서둘러야 할 것은 고성의 문화재 지정이다. 금갑만호성도 접도의 유배지와 관련지어 일부 성벽과 관아를 복원 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일연의 유적발굴이나 보존사업은 진도군의 관광을 완도나 신안과 차별화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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