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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가대표 축구스타 허윤정 감독 타계
전 국가대표 축구스타 허윤정 감독 타계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8.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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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허정무를 길러낸 축구 감독

 

지난 16일 영등포장례식장에서 발인

서울시 실버축구팀 허윤정 감독 "축구는 내 인생의 전부"

1960년대 축구대표팀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고 허윤정(진도초교40회) 감독은 1960년대 축구대표팀의 공격을 이끈 스타였으며, 한국축구의 역사상 최초로 1969년 홍콩 1부 리그에 진출했다. 당시 월봉 500달러(미화)와 고급 아파트, 왕복항공권 등의 계약이었다. 1961년 공군축구단, 대한석탄공사, 양지축구단, 싱타오SC, 서울은행, 성무축구단, 1963~1971년 국가대표, 서울은행 플레잉코치, 성무축구단 코치 등 한구의 축구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허 감독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국가대표출신을 주축으로 2010년 서울시 실버축구단을 창단했으며, 허윤정 단장을 비롯해 이회택, 김정남, 김호 등 왕년의 축구스타 28명으로 구성되었고, 당시 평균연령은 68세였다. 서울시 실버축구단의 슬로건은 ‘다 함께 100세까지’다. 그는 “선천적으로 몸이 건강한 것도 있지만 이젠 나이가 있으니 예전처럼 힘든 운동은 하지 못해. 그래도 집근처 공원에서 러닝이나 어린선수들 코치를 해주면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어.”유소년팀에 대한 기술지도와 축구교육을 실시하는 등 시니어전문자원봉사단으로의 활동하며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꿈을 실현해왔다.

진도 출신인 허 감독은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삼촌이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허정무는 삼촌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올라와 축구 선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똑똑하고 운동 잘하는 어린 조카를 축구의 길에 들여 놓은 이야기는 축구계에선 유명한 일화이다. 또한 많은 후배들에게 축구인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북한축구대표팀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에 오르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국가대표팀급 양지팀에서 이회택 선수와 함께 국가대표팀의 대표 골잡이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앙정보부의 부훈에 따라 팀 이름을 지었던 양지팀은 1967년 메르데카컵 우승 등 좋은 성적을 내고서도 정작 북한과 대결하지 못한 채 창단을 주도했던 김형욱 부장이 실각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기록을 덧붙인다.

허 감독은 생전에 “일본 우익 자민당 정부가 독도를 빼앗으려고 여러 꼼수를 쓰는데 왜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어. 나 혼자라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기도 하고, 다른 건 몰라도 일본한테는 당하고 살순 없어.”고 말하며 “8월15일 광복절을 맞아 독도에서 특별한 세레모니를 생각중이다. 당초 3.1절에 하려고 했지만 부득이한 이유로 미뤄졌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고인의 영면을 기도합니다.<채규진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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