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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숨은 진주 조유아 누구?
국립창극단 숨은 진주 조유아 누구?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8.2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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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할머니 박색구씨와 '진도 엿타령' 유명

 

조유아

진도에는 국가지정을 뛰어넘는 만속예능이 살아 있다. 신명과 흥으로 3색의 호응으로 구수하고 흥겨운 진도엿타령. 엄연히 닻배노래 예능보유자인 조오환 명인은 ‘진도엿타령’의 절대 강자다. 어머니 박색구 딸인 조유야까지 3대가 흐르는 엿타령 요즘에는 송가인이 동기라고 소개한 국립창극단 조유아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국립창극단 조유아는 전라남도 진도 출신이며 초등학교 때부터 소리를 시작해 중앙대 음악극과에 진학했다. 또한, 졸업 후에는 중앙음악극단, 판소리 공장 바닥소리 등에서 활동했으며 2015년 국립창극단 소속이 됐고 2016년 정식 단원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조유아의 할머니는 ‘진도 엿타령’으로 유명했으며 아버지는 전남 무형문화제 제40호 조도닻배노래 예능보유자 조오환이다. 

조오환

기쁨과 슬픔, 한이 녹아있는 진도 소리는 그들의 삶을 꿰뚫고 있다. 진도의 너른 들녘에 울려퍼지는 구성진 가락에는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진도의 토속민요는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입에서 입으로 혹은 북과 장구, 꽹과리 장단에 맞춰 들썩이는 춤사위를 통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진도 사람들에게는 소리와 춤의 특별한 DNA가 있다. 그들은 숨 쉬고 밥 먹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소리와 춤, 흥에 익숙하다. 핸드폰에서 울려나오는 컬러링 소리에도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수확을 앞둔 드넓은 파밭이나 배추밭에서도 눈빛만 마주하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리랑 가락에 춤사위가 펼쳐진다. 진도사람들에게 소리와 춤은 삶 그자체이다.6일 저녁, 진도 전통민속마을인  진도군 지산면 소재 소포전통민속체험관 앞 공연장에서 마을주민들이 '2021 생생문화재'의 하나인 소포리 전통창극 '철야' 공연을 펼치고 있다.소리의 고장 진도는 예전부터 구전되어 온 진도아라랑과 진도 북놀이, 진도만가, 강강술래, 남도들노래, 소포걸군농악 등이 오늘까지 이어져 진도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되었다. 전라남도무형문화재 제39호인 진도소포걸군농악(珍岛素浦乞军农乐)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는 소중한 문화자산이다.국가지정중요문화재로 강강술래(제8호), 남도들노래(제51호), 진도씻김굿(제72호), 진도다시래기(제81호) 등이 있고 전남무형문화재도 진도북놀이(제18호), 진도만가(제19호), 남도잡가(제34호), 진도소포걸군농악(제39호), 조도닻배노래(제40호) 등 5종에 이른다. 시(詩), 서(書), 화(畵), 창(唱) 등 다양한 무형 문화유산을 간직한 남도 예향이다.진도군은 1년 내내 신명나는 가락과 놀이, 굿판이 끊이지 않는 민속문화의 보고다. 강강술래, 진도아리랑, 소포걸군농악 등 전국에서 가장 많은 3개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또한 진도는 진돗개, 구기자, 돌미역 등 세 가지 보물과 진도민요, 서화, 홍주 등 삼보삼락(三寶三樂)의 눈과 귀, 입이 즐거운 남도의 대표 문화예술 여행지이다.전남도는 오는 2022년까지 100억 원을 들여 진도에 ‘아리랑 굿(GOOD)거리’를 조성키로 했다. 굿거리 공원, 장터 굿 공연장, 시장점포 80여 곳 리모델링, 갤러리 콘텐츠 개발 등을 통해 진도의 전통문화·예술자원을 특화하고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그곳은 꿈이 삶이 되는 곳이다. 싸움마저 파도처럼 노래판으로 끌어들였다.”그래서 진도는 독특하다. 누구나 진도를 가려면 먼저 소리와 그림의 꿈을 먼저 담아야 한다. 그리고 역사의 짐을 기꺼이 받아들인 사슴나루 울두목을 지나야 한다. 그곳은 450여년전, 만 백성의 염원을 담아서 명량해전을 지휘하는 이순신 장군에게 거친 물살로 승리의 굿판을 벌인 곳이다. 삼별초 자주항쟁을 비롯 아직도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서민들의 고유한 민속문화가 이어져 오고 있다.‘농무’의 신경림 시인은 "장場은 사람이다. 장터를 무대로 사람들은 놀고 웃고 울고 싸우고 다시 모이고 질기고 소중한 삶을 보듬고 꾸려왔다"고 했다.진도에는 면마다 닷세장이 섰다. 풍성했다. 갯물이 깊이 들어오고 들판은 기름졌다. 사람도 사람의 소리도 죽죽 기름기가 흘렀다. 섬도 많았다.조도닻배노래로 전남 무형문화제 제40호에 지정된 조오환 명인(73)은 진도안의 장터를 삶의 현장으로 평생을 장꾼들과 부대끼며 소중한 '장꾼의 소리'를 지켜 온 모친(박색구.1909~1992)에게 소리를 배웠다. 오래 동안 진도에 유배온 이들이 수준 높은 글을 짓고 곡을 붙이면, 천부적으로 소리꾼일 수밖에 없는 진도 뱃사람들이 흥겹게 불렀다. 그렇게 계승되어온 진도에는 무형문화제로 등록된 사람이 10명이 훌쩍 넘는다. 조오환씨는 진도를 대표하는 소리명인 중 한명이다.그가 부른 소리는 삶을 다 엮어내기엔 부족하지만 누구보다 흥이 깊고 다양하다. 이미 무형문화제로 지정된 조도닻배노래 외에 맛갈스런 엿장수타령, 만년필타령, 장타령, 진도상여소리 등이 조오환님의 대표곡들이다. 모친에게 배운 엿장수타령은 막내딸 조유아에게 계승되어 3대째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국악신동으로 불렸던 막내딸 조유아는 중앙대 음악극과를 거쳐 국립창극단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서 식당을 운영했는데, 유아가 5살 때 창을 불러서 받은 팁이 당시 식당 하루 매출보다 많았다. 청출어람, 국립창극단원인 조유아씨의 타령과 연기는 아버지를 능가한다.구들장소리, 된장소리에 촌철의 시대감각도 ‘능청’'조도닻배놀이' 예능보유자 조오환 선생의 엿타령은 달고 구수하다. 인생의 애환마저 엿처럼 녹는다. 만년필을 들면 한 편의 자서전이 술술 풀려나온다. 조도닻배는 조기잡이 배를 말한다. 닻을 많이 싣고 다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명 멍텅구리배로 불렸다. 주로 어업현장은 지금의 영광 서쪽 위도까지 먼 바다였는데 이곳에는 간조시 일곱 개의 암초가 있다. 이것을 칠산이라 부른다.이곳에서 잡히는 조기가 칠산조기인데, 말리면 영광굴비가 된다. 조기는 살아서 술비, 죽어서 조기, 말려서 굴비로 불린다. 술비는 조 명인의 딸 조유아가 아빠 오환을 부르는 소리이기도 하다.약 200여년 전부터 닻배가 성행하여 황금어장 칠산외에 가거도 연평도 어청도 안마도 등지에서 조업을 하였다. 2월초에서 5월말까지 이어진 오랜 조업기간 동안 고달픈 뱃놈의 신세한탄을 진도사람 특유의 끼를 발휘하여 각 꺼리마다 소리로써 토해냈다. 힘든 노동에 지친 시름을 달래고 협동으로 노동의 효율을 높이면서, 더 이상 고통이 아닌 흥겨운 삶을 노래한 문화로 정착했다. 그러나, 급격한 시대의 흐름으로 20여년간 단절되었던 이 노래는 조오환을 중심으로 전승작업이 활로를 찾았다.신은주(申銀珠)씨에 따르면, <닻배노래>는 일의 진행 순서에 따라, ‘그물 싣는 소리(술비소리)’, ‘노 젓는 소리(놋소리)’, ‘돛 다는 소리’, ‘풍장소리(풍어를 비는 고사)’, ‘그물 내리는 소리(기와자소리)’, ‘그물 올리는 소리(술비소리)’, ‘만선풍장소리’, ‘뒤풀이(배치기)’로 구성된다.조오환씨는 진도문화원(당시 원장 김정호) 간 《조도닻배노래》를 진도 내 각지를 현장 답사하며 채록하여 책자로 내기도 했다. 그런 원력이 오늘의 조 명인을 닦아냈을 것이다.진도를 떠나 가없는 바다에서 황금 조기를 배에 가득채우고 올라 부르는 만선풍장소리가 진도바다를 휘감아 돈다.“지화자 좋네 어허허허 어허어허 기화자아 좋네/ 도장원 했네 도장원 했네 칠산바다에 도장원 했네/배 임자 마누라 물동우 이고 안암팟 니물에 사오천 냥 실었네.”코로나보다 더 지독한 지방색을 수묵으로 씻으며 이제 ‘사는 것이 사는 것’에 대한 물음 앞에 선 현대인에게 남도 소리고장 진도가 있다. 이 가을 너무 깊이 물들지 말라. 힘들고 괴로울 때 울두목 건너 명량바다를 떠올려보라. 당신에게 주어진 길에 묵묵히 노를 젓다보면, 누구에게나 인생의 항구에 만선의 배 들어온다. “칠산바다에 도장원 했네!”(박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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