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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홀의 상조도 항해탐사 보고서
바실홀의 상조도 항해탐사 보고서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8.10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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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보인다. 한 개가 아니다. 열 개도 아니다. 돌고래떼의 군무를 보고 있다. 망원경을 내리면 어느새 아일랜드 해협을 건너온 새떼들이 되는 섬들.

여왕이시여. 여기는 동아시아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씻김(세례)의 나라. 바다의 오아시스입니다.

우리가 서해안을 지나 가장 먼저 닻을 내린 곳은 외병도입니다. 나는 이 섬을 안개꽃 스카프로 여왕님께 바칩니다. 월터 라일리가 여왕의 발이 젖지 않도록 자신의 외투를 벗어 물웅덩이를 덮어 준 운명적인 첫 만남의 장소로 떠올리게 싶습니다. 이 윗새섬 여미 바다를. 저는 여기에 우리 여왕의 새로운 이니스프리를 만들어 바치겠습니다. 왜 조선의 왕들은 담배나 피우면서 비단결같은 바다의 푸른 목장을 키우지 않는걸까요.

이 바실 홀은 결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친근한 벗들의 이름을 섬들에 붙여봅니다. 향항의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여기 해로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원주민들은 맹골물길이라 부릅니다. 진대섬에서 청등도 대마도를 지나 애기난 고래 뱃속에 흔들댄다는 독거도 미역 맛도 서북풍에 실어 보내드립니다. 동거차도 서거차도 사이를 빠져나가면 맹골입니다. 물길이 맹수처럼 사나운 곳입니다. 나의 지도에는 몇 점의 별자리처럼 자리하지만 위대한 시간의 여정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바다를 아는 자 별을 헤아리고 마침내 세상을 얻는 것. 일본 막부 화인들이 도판화를 그리듯 이 바다를 머릿속에 새겨놓았다 해도 신은 무적함대를 물리친 여왕의 용맹스런 신하들 아닙니까.

몇 가지 사전 조사에 따르면 상조도에는 맹성관방이 있습니다. 국영목장 말을 키우던 마장터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퇴로는 절벽입니다. 소마도 대마도 닻배노래 라배도 관사도 여미마을에서 곧장 오르면 도리산입니다. 보라! 대영제국의 영광이 아시아의 바다를 출렁거릴 빛나는 예지입니다. 북양함대는 이미 명성이 쇠락하였습니다.

이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 바다가 햄릿의 고뇌보다 더 많은 보물 이야기를 품고 유황섬(유구열도)까지 흐른다는 것을. 이들은 또 도리산의 성채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위용을 넘고 있다는 것을. 분명 여왕께서도 ‘북아일랜드를 잃을지라도’라고 하셨겠지요.

귀갑선이 있었다는 이 나라. 바다를 사랑하면 역적이 된다고 했다지요. 장보고가 이순신이 삼별초 배중손이. 허균이 세우고자 했던 율도국은 자유무역항이었습니다. 이곳 팽목항 마주한 다도해 손가락섬 상조도는 제 이름이 비록 흐릿이 포말로 부서진다해도 풍란향이 흐르는 향항(香港)이 선명해집니다. 여왕이시여. 잠을 자는 조선보다 먼저 이곳에 등대를 세워야 할 때입니다.


                                                                 관매도 얼굴바위등대                                                         

처음에 눈에 들어은 토박이들은 언덕빼기에 앉아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니 섬의 여기저기서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명의 여자들도 섞어있었는데 어린애를 등에 업거나 또다른 아낙네는 아이를 팔로 안고 있었죠. 그녀들은 앞이 트인, 긴 치마와 무릎 밑까지 살짝 내려오는 같은 색의 페티코트(저고리)를 입고 좁고 짙은 색 띠로 허리 둘레를 동이어 맸고 머리는 땋아서 틀어 올렸으며 흰 수건을 이마에 씌우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애기장수는 어려서 날개죽지가 꺾여 울둠벙에 버려집니다. 섬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출사의 길도 막히고 맙니다. 개옹속에서 펄떡거리다 숭어처럼 작살에 맞아 죽는 운명 따위. 섬은 고래처럼 숨을 쉬지 않습니다.

함께 간 맥스웰 함장은 한 생각이 떠올라 제일 나이 많이 먹은 사내의 손을 잡더니 팔장을 끼고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동네사람들을 기쁘게 했으며 우리들과 같이 걷기 시작했지요. 조금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에 팔과 팔을 끼고 걷는 것은 조선의 풍속이 아닌가 하고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감히 올리자면 오래지 않아 이 바다는 수 없이 무역선들이 떠다니며 우리의 하느님과 우리의 말을 알게 될 것입니다. 위스키에 조선의 노을이 담긴 진도홍주도 맛보시게 될 것입니다.

추신: 급수신 바람. 나폴레옹 바람이 분다. 수신하라! 감격하라! 이곳을 보지 않고선 지구는 아직도 영원한 미지다. 언제나 날 기다리는 아내에게 “당신의 드레스처럼 순결한 바다를 보았소” 흰구름에 급히 실어 보냅니다. 한 조선의 지식인이 하피첩에 편지를 썼다는 아내의 치맛자락을 떠올리며.

세상의 극치, 지구의 극치에서 바실 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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