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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김 받고 꽃상여 타고 – 가난이 살려낸 것들 24
씻김 받고 꽃상여 타고 – 가난이 살려낸 것들 24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9.1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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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진 희(전남 곡성군 죽곡면)

접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몇 달은 그야말로 벼람박에 똥칠을 하며 떡애기가 되었다가 그렇게 오롯이 반대방향으로 어머니의 품인 흙으로,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갈퀴손의 며느리가 그 감당을 하다 어무니가 돌아가시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그 인생 또한 서럽고 쓰라려 어무니 설움 내 설움 보태서 섧게 울었습니다. 어무니 혼을 씻겨 드려야겠습니다. 며느리는 씻김굿을 해드리기로 합니다.

어무니 나이 쉰쯤에 구신 들린 적이 있습니다.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어져서 죽은 구신, 그 역시 한 많은 넋이었나 봅니다. 어무니는 그 원혼이 씌어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모르고 몇 날 며칠을 맨발로 산으로 바다로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때 와서 굿을 해준 당골이 있습니다.

당골은 절대로 구신을 쫓지 않습니다. 언제 뭔 영화를 보니까 서양 사람들은 구신을 쫓느라고 오만 짓을 다 하던데 그래가지고는 절대로 구신이 쫓아지지 않습니다. 십자가든 칼이든 힘을 써서 우선 당장 구신을 쫓아놓아도 풀릴 길 없는 원한의 덩어리, 오갈데 없는 원혼은 결국 누군가한테 또 찾아옵니다.

우리 당골은 구신의 그 설움, 그 한(恨) 다 헤아려 알아주고 달래고 또 달랩니다. 장구 소리 징 소리 장단 맞춘 당골의 소리는 산 사람 죽은 사람 모두의 마음을 녹이고 넋을 어루만져줍니다. 이 꼴 저 꼴, 사람이 살아 생전 겪는 꼴은 다 보고 다 풀어낸 당골의 신명 저 깊은 곳, 저 높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입니다.

소쿠리에 쌀을 담아 그 위에 대(竹)를 세워놓은 손대를 잡은 망자의 가족에게 망자혼이 내려 왔습니다. 질기디질긴 원한의 미련이 남아 구신은 못 가겠다고 버팁니다. 당골은 큰소리로 호통을 칩니다. 구신은 꾸지람을 듣고서야 덜 풀린 응어리를 다 토해내고 눈물을 흘립니다. 눈물을 흘리면 되었습니다. 그 눈물로 넋이 씻어집니다. 당골의 마음에서도 눈물이 흐릅니다. 이 눈물, 저 눈물, 굿 보는 사람들 눈물… 그리고 쑥물과 향물과 청계수로 넋이 씻겨집니다.

구신은 떠돌던 구천에서 더 맑고 환한 하늘로 갔습니다. 접도 할머니도 그렇게 도로 제정신이 돌아왔습니다. 당골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한꺼번에 씻겨주었던 것입니다.

착하고 순한 사람에게 구신이 잘 들린답니다. 독하고 그악스런 인간한테는 구신도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아서입니다. 당골도 마찬가지입니다. 니 설움이 내 설움이 되고 니 한이 내 한이 되는 여리고 순한 심성의 사람에게 신이 내려옵니다. 당골은 위장병이 있는 사람과 마주앉으면 그 자리에서 위가 아프고 허리가 아픈 사람과 마주앉으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합니다.

그러니 지상에서 가장 영예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이 당골입니다. 땅과 하늘을 잇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영악스런 사람들은 급할 때는 당골을 찾다가도 뒤돌아서면 손가락질을 하고 하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더라도 그 영혼이 맑은 사람은 압니다. 천지에 가득찬 신명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음을…

며느리는 접도 할머니한테 씐 구신을 보내주었던 그 당골을 찾아가 어무니 씻김굿을 부탁합니다. 그 당골이 지금은 영화 [영매]에도 나오고 진도씻김굿 마지막 당골로 대접을 받으며 우리나라에서건 바다 건너 일본에서건 전수받으러 오는 사람이 줄 서고 있다는 사실을 며느리가 알 턱이 없습니다.

당골은 이제 나이가 너무 들어 몇 시간씩 계속되는 굿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며느리는 사정을 합니다. 당골은 하는수없이 제자를 데리고 가기로 합니다.

장사 지내기 전날 저녁입니다. 당골은 제자들과 징을 잡은 남편과 장구, 아쟁 등의 악공들과 함께 왔습니다. 당골 일행은 관이 놓인 옆방에 앉아 굿물을 만듭니다. 한지를 정성들여 가위로 오려 지전(紙錢)을 만들고 망자의 넋이 담길 사람 형상을 만듭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가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되듯이’ 그냥 종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영혼을 불어넣으면 그냥 종이가 아닙니다. 혼을 지닌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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