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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왜덕산과 일본의 코무덤 /정유재란 순절묘역 공신들 ‘예우’가 먼저
진도 왜덕산과 일본의 코무덤 /정유재란 순절묘역 공신들 ‘예우’가 먼저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9.2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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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 회오리바다 위를 스카이 케이블카가 만금산 강강술래터를 오르내린다. 다음 달에는 인류 해전상 가장 빛나는 승전을 이룬 명량대첩을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이번에는 진도측이 주관을 한다.

1597년 정유재란은 조선과 일본에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개의 무덤을 남겼다. 일본 교토에는 일명 ‘귀 무덤’으로 불리는 코 무덤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신으로 모시는 도요쿠니 신사 정면에 있는데 교토시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정유재란 당시 조선인들의 코를 베어 와 묻은 무덤이다. 원래 코 무덤인데 잔인하다고 해 귀 무덤으로 바꿔 부를 뿐이다. 왜군들은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조선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의 코까지 베어 소금에 절여 보냈고 히데요시는 코 영수증을 써줬다고 한다. 일설에는 이 무덤에만 12만 6000여 명의 코가 묻혀 있다고 한다. 조선인들을 전리품으로 생각한 일본인들의 잔인함과 조선인들의 원혼이 담겨 있는 곳이다. 반면 진도군 고군면 왜덕산에는 명량대첩 당시 사망한 일본 수군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인근 울돌목에서 대패해 숨진 일본 수군들의 시체가 파도에 떠밀려 오자 마을 주민들이 수습해 묻어준 곳이다. 수습한 시신은 100여 구로 주민들은 수군 전사자들이 죽어서나마 고향 일본땅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동남향 해변 양지바른 산자락에 묻었다고 한다. “왜군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의미에서 ‘왜덕산’(倭德山)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향토사학자 박주언 진도문화원장의 주장과 노력으로 왜덕산의 이야기가 알려진 후 2006년 일본 수군의 후손들이 409년 만에 진도를 방문해 주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후손들은 이후에도 명량축제 때 왜덕산을 찾아 추모하면서 진도 주민들과 사죄와 용서, 화해와 공존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왜덕산이 위치한 곳은 진도군 고군면 북동쪽이다. 산 아래는 내동리와 마산리가 있다. 향토문화사전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왜덕산은 일본 수군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뜻이다. 명량대첩 때 일이다. 이순신 장군의 군대가 일본 수군을 이겼다. 12척의 배로 무려 133척을 물리친 해전사상 초유의 일이다. 대패한 일본군의 시신 100여구가 내동리 마을 앞으로 떠밀려 왔다. 주민들은 어떤 이유인지 이 시신들을 거두어 묻어주었다. 그 후로 왜덕산이라고 불렀다. 왜군(倭軍)에게 덕(德)을 베풀었으므로 왜덕산이라고 한다.“

왜덕산은 높지 않은 언덕이고 완경사면은 밭이다. 앞쪽은 진도의 동남해다. 한해륙의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접점이기다. 명량대첩 현장에서 가깝다. 묘지는 개간 과정에서 일부 유실되었다. 현재는 50여기가 남아 있다는데 내가 답사한 바로는 구체적인 묘지들을 확인하기 어렵다. 마을사람들은 기와를 굽던 장소(기와 瓦)라는 뜻에서 '와덕산'이라고도 한다. 왜구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박문규 전 문화원장은 매우 강경하게 반대론을 펼치고 있다.

진도 사람들은 2016년부터 4년째 일본 교토를 방문해 코 무덤 위령제를 지내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3년째 중단된 상태다. ‘하나의 전쟁, 두 개의 무덤’이란 주제로 23일과 24일 진도에서 한일 국제학술대회와 왜덕산 위령제가 열린다. 행사에는 지난해 11월 교토 코 무덤 위령제에 참석해 “선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한다”며 한국에 용서를 구한 하토야먀 유키오 일본 전 총리도 참석한다. 한일 관계의 해법을 왜덕산이 보여 준 휴머니즘에서 찾아보는 것도 의미있지만 여러 의문에 대한 학술적 응답이 요구된다.

또한 이 대첩에 해남 어란 아가씨의 정보 제보를 통해 일본수군의 동태를 알고 대응했다는 식의 전설이 덧칠되고 있다. 사즉필생을 강조했던 이순신장군이 대마도를 향해 우뚝 서 있는 벽파항의 이충무공전첩비(진도군민 학생이 돈을 모으고 소전 손재형이 쓰다)가 피눈물을 흘릴 지경이다. 일본군은 진도 내륙까지 들어와 향교를 불사르기도 했다. 다행히 김희남 당시 향교전교가 위패를 사전에 망적산으로 옮겨 피해를 잃지 않았다.

왜덕산에 대한 일본측의 공식 사과가 없이 몇몇 후손들만을 앞세워 위안부 문제 등에 망언을 일삼는 중요 책임있는 일본 인사들이 신사참배나 하면서 두 얼굴을 내보이는 자세와 코무덤 및 몽유도원도 환지본처부터 선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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