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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옳았다”
“농부가 옳았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9.2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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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태어난 것은 운명이고 섬을 떠나는 것은 인생이다.”

내가 섬에서 태어난 것은 축복이었다. 섬은 바다에게 가장 아름다운 행성이었다. 안택선이 여지없이 부서지던 명량 바다 건너 고구마 담은 바구니섬.

섬을 선택한 것은 또 하나의 축복이었다.

나는 이 생에서 제대로 내가 사는 섬에 홀리고 미친 적이 있었는가.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가 일 때마다 나도 온 몸이 일렁거렸다. 진도는 바다 갯벌이 둑을 이룬 밭이었다. 고기잡이를 즐겨하지 않았다. 하기야 사타구니 앞까지 들물이 오는 개옹에는 늘 숭어가 뛰고 가라지와 깡다리가 거름장이 될 정도였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미쳐서 산다. 그림에 미치고 글씨에 미치고 나락과 콩과 보리와 귀리 기장에 미쳐 농사를 짓는다. 해마다 인자 때려쳐야지 하면서 다시 씨앗을 품는 농사꾼이 정말 옳은지 나는 지금도 장담하지 않는다. 예전이야 농약값이 밀려 농약을 먹고 세상을 버린 농민들이 동네마다 있었다. 내 외삼촌도 두 갈래 길에서 서울로 야반도주를 했다. 아무도 죄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쯤이나 “농부가 옳았다”라고 당당하게 기쁘게 말할 수 있을까. 농사꾼이 농토를 신전으로 삼아 씨앗의 말씀들을 심어 나누는 아 위대한 순환에 앞장선 분들을 떠올린다. 한 밤에 그들의 삶을 책으로 읽어본다.

무위당 장일순선생은 어느 날 시장 나들이가서 원주 어느 장터에서 고구마를 파는 장사꾼의 글씨에 넋이 홀린다. 골판지에 쓴 ‘고구마’라는 글자. “나는 평생 저런 글씨를 쓰지 못할거야” 그 어떤 유명한 서예가의 작품보다 그 농부장사꾼의 글씨에는 대지의 위대한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털석 그자리에서 주저 앉았다고 한다. 추사의 글씨보다는 원교 이광사의 동국진체보다 한석봉보다 원주 강원도 촌농부 ‘고구마’는 쇠귀 신영복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에서 봄을 품고 있었다.

장일순선생의 호가 일속자다. 一粟子 한 톨의 서숙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분은 평생 생명농사를 짓은 분이다. ‘깊이 심은 미래’와 희망은 토종 씨앗이 되어 이제 여기 저기 백두대간에서 생명을 키우는 하느님의 역사를 대신하는 일꾼들이 늘어나고 있다. 판화가 이철수도 철학자 윤구병씨도 “나는 늙은 농부만 못하다”라는 이병철 말고도 진도 금골산의 김종복 풀무농업 교사, 충남 홍성의 문당리 주형로씨. 반도체에만 빛나는 미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가을날의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구별하지 못했으며, 봄을 알리는 산수유와 생강나무의 차이를 모르고 지냈습니다.” 연을 날리듯 언어를 풀고 당기는 고수 시인 안도현.

세상에 괴짜는 없다. 오직 미친 사람이 있을 뿐이다. 뼈가 저리게 내면으로 자폐의 여행을 떠나 한 소식을 품은 이들이 저자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관(關)을 벗어난 이 시대의 노자들이다. 도올이 박연철 변호사가 한 종소리를 닦는다. 민들레의 영토로 가신 권정생 종치기.

소포 대흥포 김병철 상쇠의 낙지잡는 솜씨가 그립다. 다시래기에서 ‘씹춤’을 쫓아다니던 똥철학 전경수 박사. 논미꾸라지 붕어탕이 댕긴다. 한남례 엄매의 흥타령 장타령 단가 소리를 주무르고 싶다.

세상이 쓸쓸하고 가난할 때 오히려 빛나는 이들에게, 고구마같은 삶을 줄기줄기 살아온 그들에게 삶을 물었다. 그들은 결코 쓸쓸하지 않았다. 그들의 화두는 늘 뜨거웠다. 세상에는 순발력도 쓸모도 비틀어진 나이테로 유폐한 팽나무가 자라고 호미 끝에서 가을햇살이 영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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