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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미역 한줄기 8만원, 고유가에 속타는 어민들
90㎝ 미역 한줄기 8만원, 고유가에 속타는 어민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10.1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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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7시 전남 진도 서거차도항. 마을 주민 12명이 따온 미역 무더기 두 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전날보다 4배가 많은 돌미역 2000㎏을 수확했지만 박해용(57) 이장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수온 변화 등 여파로 미역 채취량이 매년 눈에 띄게 줄어서다. 박 이장은 “올해 미역 수확량은 10년 전에 비하면 5분의 1 토막 수준”이라고 했다.

맹골수도(孟骨水道) 내 서거차 일대는 자연산 돌미역 중에서도 이름난 진도곽(藿) 주산지다. 진도곽은 자연이 키워낸 돌미역 중에서도 맛과 영양이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8월 현재 서거차도산 마른 돌미역은 길이 90㎝ 한 장당 6만~8만원에 판매된다. 양식 미역(1만원)보다 6배 이상 비싸지만 손이 많이 가고 채취량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어선에 엎드려 돌미역을 따는 어민. 프리랜서 장정필

돌미역은 상품성만큼이나 채취 때 위험성이 크다. 파도에 요동치는 1.2톤급 소형어선에 엎드린 채 갯바위 앞에서 미역을 따야 한다. 작업 중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머리나 얼굴을 바위에 부딪쳐 크게 다치기 일쑤다. 상반신을 배 밖으로 내민 채 작업을 하다가 급류에 휩싸여 숨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어민들은 1년에 한 달가량 진행되는 미역 채취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진도에서 뱃길로 3시간이 걸리는 섬에서 목돈을 쥘 수 있는 이른바 ‘대목’이어서다. 과거 주민들은 매년 7월이면 가구당 1000만 원 안팎을 벌기도 했지만 날로 수입이 줄어든다고 했다. 주민 정해석(55)씨는 “예전에는 뭍에 있는 자식들까지 불러서 10여 차례 작업했는데 올해는 300만원도 못 벌 것 같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천정부지 기름값도 어민들의 수심을 깊게 한다. 지난해 200ℓ(1드럼)당 15만~16만원 하던 면세유가 올해는 32만원을 넘겼다. 그나마 올해는 생산량이 소폭 늘었지만 미역값은 지난해보다 떨어졌다. 지난해 산지에서 8~10kg에 85만원 하던 건미역이 올해는 70만원까지 하락했다. 고유가로 인한 어민들의 고통은 돌미역 업종뿐만이 아닌, 어업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운 상태다.

위험 속에서 돌미역을 따온 어민들에게 희망적인 소식도 들린다. 진도와 신안 일대 돌미역 채취가 국가중요어업유산 지정을 추진 중이다. 해양수산부 어업유산으로 지정되면 전통 돌미역 채취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지원이 이뤄진다.

어민들도 어업유산 지정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보호장비나 관리용 선박 등이 확충돼 보다 안전하게 미역 채취를 할 길이 열려서다.

국가의 지원으로 전통의 맛을 지키면서도 현장의 고통을 덜 수 있는 해법이 나올지 주목된다. 바닷일의 위험을 무릅쓰는 어민들이 사라진다면 우리 고유의 어업유산도 맥이 끊길 수밖에 없다.

한편 전남도가 ‘신안·진도 조간대(연안) 암반 돌미역 채취어업’의 국가중요어업유산 지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흑산군도와 진도군 조도군도 일대 연안 바위에는 5838㎢ 면적의 국내 최대 규모의 자연산 돌미역이 서식하고 있다. 현재 신안 618어가와 진도 364어가 등 982어가, 16개 어촌계에서 자연산 돌미역 채취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관계자는 “신안·진도 암반 돌미역 채취어업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채취하는 일반적인 방법과는 달리 연안 바위에 붙어 서식하는 자연산 돌미역을 낫으로 채취하는 어법으로 보전의 가치가 있다”며 “어업 자원이 신안과 진도 2개 시·군에 분포돼 있어 국가중요어업유산 지정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가중요어업유산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고유의 유·무형 어업자산을 보전하고 관리하기 위해 해양수산부에서 2015년부터 지정·관리하고 있다. 첫해 제주 해녀어업(1호), 보성 뻘배어업(2호), 남해 죽방렴어업(3호) 지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11건이 지정됐다.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되면 3년간 국비 등 7억 원이 지원돼 전시관과 조형물 조성, 체험프로그램 개발 등 어업유산 보전 활용 계획이 추진된다.

서거차도 미역

미역 중에서도 자연이 키워낸 돌미역은 맛과 영양이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8월 현재 서거차도산 마른 돌미역은 길이 90㎝ 한장당 6~8만 원에 판매돼 양식미역(1만 원)보다 6배 이상 가격이 높다. 이곳에서 나는 돌미역은 잎이 가늘며 길고 곧게 뻗은 게 특징이다. 청정해역에서 자생해 영양이 풍부한 데다 끓이면 사골 같은 뽀얀 국물이 나온다.

진도곽은 상품성이 좋은 만큼이나 채취 때 위험성이 높다. 이른바 ‘배작업’을 하다가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머리나 얼굴을 바위에 부딪쳐 크게 다치게 된다. 고개를 숙인 채 미역을 따거나 갯바위 쪽으로 이동하다가 바다에 빠져 급류에 휩싸여 숨지는 경우도 있다. 사고가 없더라도 2~3시간 동안 배 바닥에 엎드려 작업하다 보면 가슴과 배 쪽에 피멍이 들기 일쑤다.

그런데도 어민들은 작은 어선을 타고 갯바위 미역을 따는 ‘배 작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한다. 물살이 세고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큰 곳에서 나는 최상품 돌미역을 얻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어서다. 과거부터 “목숨을 거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채취가 중단된 적은 없다. 어민들은 이날도 험난한 파도·바위와 싸운 끝에 500㎏가량의 돌미역을 따냈다. 박해용(57) 서거차도 이장은 “1년 중 물이 가장 낮아지는 7월 한 달간만 작업이 가능해 위험을 무릅쓰고 미역을 딴다”고 말했다.

‘배작업’의 긴장감은 주민들이 함께 따낸 미역을 나눌 때까지 이어졌다. 미역 작업을 마친 오후 7시쯤 서거차도항에는 철제 저울이 놓였다. 서거차도의 ‘공동작업·균등분배’ 원칙에 따라 이날 주민 12명이 따낸 미역을 나누기 위해서다.

저울로 잰 미역더미 12개가 바닥에 놓이자 박 이장의 부인 배희숙(57)씨가 나섰다. 그는 손에 쥔 화투패를 바라보며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무작위 미역 분배를 위한 추첨용 화투패 뒤편에는 작업에 참여한 주민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날 채취한 물미역은 건조틀에서 2~3일 동안 햇볕에 말린 다음 건미역으로 판매된다.

예부터 미역은 출산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나라 『초학기(初學記)』에는 ‘고래가 새끼를 낳은 후 미역을 뜯어 먹은 뒤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였다’는 취지의 기록이 나온다. 민간에서는 이를 ‘산후선약(産後仙藥)’이라 하며 출산 후 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였다.

저울로 잰 미역더미 12개가 바닥에 놓이자 박 이장의 부인 배희숙(57)씨가 나섰다. 그는 손에 쥔 화투패를 바라보며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무작위 미역 분배를 위한 추첨용 화투패 뒤편에는 작업에 참여한 주민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날 채취한 물미역은 건조틀에서 2~3일 동안 햇볕에 말린 다음 건미역으로 판매된다.

예부터 미역은 출산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나라 『초학기(初學記)』에는 ‘고래가 새끼를 낳은 후 미역을 뜯어 먹은 뒤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였다’는 취지의 기록이 나온다. 민간에서는 이를 ‘산후선약(産後仙藥)’이라 하며 출산 후 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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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은 혈당조절과 고혈압 예방, 콜레스테롤 제거에 효과가 있다. 식이섬유와 요오드·철분·칼륨·칼슘 등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이 중 요오드는 신진대사를 증진하는 효과가 있다. 출산 후 왕성해진 신진대사와 부족해진 혈액의 생성을 촉진하는 데 미역이 큰 역할을 한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1·2월에 뿌리가 나고 6·7월에 따서 말리며, 임산부의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데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기록돼 있다.

미역 작업 후 서거차도 주민 정해석(55)씨에게 돌미역 요리를 요청해봤다. 그는 1993년부터 뭍에서 가수 활동을 하다 노모를 모시기 위해 2002년 5월 고향에 돌아왔다. 섬 안팎에선 ‘미역요리의 달인’으로 통한다는 그는 큰 솥에 마른 돌미역을 듬뿍 넣고 2시간을 넘게 끓였다. “돌미역은 재탕·삼탕을 거듭할수록 맛이 진해지는 만큼 물도 양식미역보다 많이 넣는 게 요령”이라고 했다.

미역 초무침은 쫄깃함이 일품인 돌미역의 식감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요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날 따낸 돌미역을 흐르는 물에 빨래하듯 수차례 씻어냈다. 돌미역은 표면의 점액질 성분이 풍부해 건강에는 좋으나 식감을 떨어뜨릴 수 있어서다. 그는 “말리지 않은 돌미역으로 초무침이나 냉국 등을 할 때 비법”이라며 “어린 돌미역은 미역을 따낸 현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최상의 맛”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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