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3:33 (토)
사설- 정관(貞觀)의 치(治)를 꿈꾸며...
사설- 정관(貞觀)의 치(治)를 꿈꾸며...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10.28 1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옥주고을 원님에게 쓴소리 할 충신(忠臣)은 있을까? -

중국 당나라때 오긍이 편찬한 당 태종(太宗, 李世民, 598~649)의 언행록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묘사된 태종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는 현명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선발해 어진 군주가 되려고 노력했고, 허심탄회하게 간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잘못된 행실을 바로잡으려 했으며, 부역과 세금을 가볍게 해 백성들을 아꼈고, 형법을 신중하고 가볍게 사용해 법제를 보존시켰으며, 문화를 중시해 풍속을 좋게 바꾸고, 농업을 근본으로 삼아 백성들이 전쟁이나 부역으로 인해 농사철을 놓치지 않도록 했으며, 군주와 신하가 서로 거울이 되어 시종여일 선행을 하려했고, 근면하고 검소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정관(貞觀)’은 태종의 연호이고, ‘정요(政要)’는 정치의 요체라는 뜻인데, 당 태종이 신료(臣僚)들과 정치에 대해 주고받은 대화를 엮은 책으로서 예로부터 제왕학(帝王學)의 교과서이다. 역사에서 당 태종의 태평성대를 ‘정관(貞觀)의 치(治)’라 칭하는 데 당나라 봉건통치의 견실한 초석을 세워 태종을 중국 역사상 위대한 인물 중의 한명으로 기리도록 하였다. 그 책 내용 중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나무 꼭대기의 새는 탐욕 때문에 죽는다.

정관(貞觀) 16년, 당(唐) 태종(太宗)이 곁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새는 숲에서 살지만 그 숲이 높지 않음을 걱정하여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고, 물고기는 물속에 숨어 있으면서도 물이 깊지 않음을 걱정하여 또 그 아래에 동굴을 만든다. 그러나 새와 물고기가 사람들에게 잡히는 것은 모두 먹을 것을 탐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현재 신(臣)들은 임명을 받아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두터운 봉록(俸祿)을 누리오. 본래 충성스럽고 정직하게 행동하고 공정하고 청렴하게 일을 처리하면 재앙이 있을 수 없고, 오랫동안 부귀를 지닐 수 있소.”

자신을 해롭게 하는 것은 모두 재물의 이익을 탐하는 데서 온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재앙과 복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취(取)하는 것이다.’라고 했소. 자신을 해롭게 하는 것은 모두 재물의 이익을 탐하는 데서 비롯되오. 이것이 어찌 물고기와 새가 먹을 것을 탐하여 죽게 되는 재앙과 다르겠소? 여러분은 마땅히 이러한 말을 생각해보고 귀감(龜鑑)으로 삼아야 할 것이오.“

중국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시대 가운데 한 시절이었다. 이때 태종을 보좌하면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위징(魏徵, 580~643)이라는 재상(宰相)이 있었다.

그는 비서감(秘書監), 시중(侍中) 등의 직책을 두루 거치며, 태종에게 2백 회가 넘는 간언을 올렸다. 《자치통감》에 보면, 위징이 죽었을 때(정관17년) 태종은 몹시 슬퍼하며, 옆에서 따르던 신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한다.

세 개의 거울

‘사람은 구리로 거울을 만들어서 의관을 바로잡고, 옛 것을 거울로 삼아서 역대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아서 자신의 득실을 알 수 있다. 위징이 사망함으로서 짐은 거울 하나를 잃고 말았다.’

정관 18년, 당 태종은 고구려 원정을 감행하였으나 대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탄식하며 ‘위징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나한테 이런 걸음을 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魏徵若在 不使我有是行也)이라고 한탄하였다.

군주라 할지라도 독단(獨斷)과 독선(獨善)적인 강한 자의식에 빠지면 이를 바로잡을 충언(忠言), 간언(諫言)을 해 줄 신하나 측근이 있어야 한다.

탐욕(貪慾)과 무능(無能)

원님이 가마타고 입성한지 100일이 지났다고 자회자찬의 홍보격문을 그대로 게재하는 옥주지(沃州紙)들은 원님과 밀월관계에 있다.

관리나 아전의 제일의 덕목은 청렴(淸廉)이다. 조선조 말 미국의 목사 길모어(George William Gilmore)는 3년간의 서울생활을 바탕으로 쓴 1892년 <서울에서 본 코리아>에서 지독히도 가난한 조선을 경험하고서 ‘코리아는 왜 가난한가? 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 첫째가 국왕과 관리들의 탐욕(貪慾)과 무능(無能)을 원인으로 꼽았다.

관리들은 청백리까지는 아니어도 상하를 막론하고 청렴해야 하고, 또 청렴해야한다. 그래서 미래비전을 위해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 갈 보배섬을 만들기 위해 선공후사하고 결집하여 발전을 위해 진력을 다해야 한다.

옛 통치에 불만을 품은 자들은 새로운 통치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는다.

마키아벨리는 ‘옛 통치에 불만을 품은 자들은 새로운 통치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는다.’고 했다. 진도읍성 남문(南門) 너머 신작로에 끝없이 늘어선 화환의 행렬사이로 꽃가마타고 의욕적으로 출발한 꿈같은 세월이 어언 100일이 지났다.

원님은 건곤일척 모든 것을 던지며 그토록 갈망한 철마산하 꿈의 궁전인 옥주고을 관아에 입성하여 이제는 밑바닥을 다지고 낮은 자세로 민심을 수렴하고 민의를 보살피겠다고 한 약속(공약) 실천의 현실을 보아야 한다.

겸손하고 겸양하고 경청하고

100일의 성과를 자랑하지 말고 되돌아보면서 자칫 백성에게 권위적이고 권력자처럼 대하지는 않는지,,. 과거 70 80년대 소싯적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MZ세대나 하급 아전관리들에게 ‘라떼식 꼰대’형 리더쉽으로 대하지는 않은지..., 백성들의 소청에 원님의 언행에는 항상 겸손과 겸양이 배어 있어야하고,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와 용어를 사용하는 등 체통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 더해 보다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경청하고... 경청하고... 그리고 관에서 갖고 있는 수많은 정보를 통해서 대안과 대책, 비전을 마련하고 달래야 한다.

재야시절에야 모든 것을 다 이룰 것처럼 말(약속)하고 행동 했을지라도 현실(제도권)은 다르다. 백성은 나의 일, 작은 것일지라도 나의 것, 그리고 내게 이로운 것이 집단의 모든 이익보다 더 큰 것으로 본다. 그래서 민원이 어렵다. 저잣거리의 평판은 이러한 작은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충언역이(忠言逆耳)

현대사회의 고을원님은 중앙군주의 명을 받은 것이 아니고 지역 백성의 명을 받은 사람이다. 이는 지역 백성의 ‘대리인’일 뿐이지, 백성이 맡긴 권력을 자기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절대권력 수탁자‘가 아니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 독한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忠言逆於耳而利於行, 毒藥苦於口而利於病)고 했다.

옥주골 원님에게도 위징(魏徵)과 같은 충신이나 측근이 존재할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