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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를 지키는 사람들(2) 진도풍물의 차세대 리더 차현지 진도군 임업인협의회 차현지 회장
진도를 지키는 사람들(2) 진도풍물의 차세대 리더 차현지 진도군 임업인협의회 차현지 회장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11.1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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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와 힐링의 섬 만들고 싶다”

임업인을 위한 화합·소통의 장 마련 주력

환경과 소득이 있는 임업으로 보배숲 가꿔나가는 데 앞장

진도군, 임업인 한마음 단합 (사진 = 진도군)

작년 진도군이 산림의 중요성을 알리고 임업인들의 화합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2018년 제1회 임업인 한마음 단합 대회를 실시했다.(사천리 유아체험숲) 임업인 한마음 단합 대회는 사단법인 한국임업후계자협회 진도군지회(회장 차현지) 주최와 진도군, 진도군산림조합(조합장 허용범) 후원으로 의신면 표고버섯유통센터에서 열렸다. 행사에는 진도군산림조합, 진도군표고버섯생산자연합회, 진도난우회, 산림법인 회원 등 임업인 및 유관기관 직원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제 산림은 그만큼 우리의 벗이자 미래로 성큼 다가와 있다. 건강과 소득자원으로 투트랙의 토끼를 잡는 사람들. 당시 단합대회는 2019 산림소득 보조사업 설명회를 시작으로 산림헌장 낭독에고 임업인 생산 특산품 전시 코너를 운영했다. 진도군 환경산림과 산림경영담당은 “오늘 행사는 임업인들의 자긍심 고취 및 임업발전과 활성화를 위해 마련했다” 며 “앞으로 임업인의 소득창출을 위해 각종 사업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진도군에서는 산림경관 개선 및 산림복지서비스를 실현하고자 무장애 숲, 명상 숲, 주민 참여 숲, 경관 개선 숲 등 다양한 유형의 산림을 조성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소포걸군농악 진흥에 앞장 서

차현지 진도군입업인협회장은 이 막중한 역할의 적임자이자 역군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차회장은 진도의 민속문화 전승 발전에도 수십 년 직접 참여하며 기여하고 있다.

“진도 소포걸군농악은 서로 도움 정신 그것이지요”

진도 소포마을 민속이자 전남무형문화재인 소포걸군농악야생풍류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은 누가 뭐래도 진도다. 섬 전체가 풍류로 가득차 있어 울돌목의 거친 물결마저 휘모리 장단으로 와 닿는다. 진도의 색깔은 파랗다. 하늘이 파랗고, 땅이 파랗고, 바다가 파랗다. 그런 진도에는 남도들노래, 씻김 굿, 만가, 다시래기, 강강술래, 남도잡가 등이 파랗게 물든 채 생활속에서 거칠게 호흡하고 있다.  진도의 파란 풍류가 ‘이 골 물이 콸콸, 저 골 물이 철철..’하는 새타령 한 대목처럼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향해 소리치는 곳이 있다. 진도 제일의 마을 소포리가 그곳이다. 소포리는 간척전 소금밭을 갈며 농악칠 땐 2,000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살았다. 마을 길도 명동거리, 월남거리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부유했다. 농한기가 되면 정월 대보름부터 모내기 전까지 제주까지 가서 풍장을 쳤다. 

 

그러나 지금은 여느 농어촌처럼 망칠팔십(望七八十)의 노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곳엔 시초를 알 수 없는 우리의 넋과 혼이 실린 춤과 소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망칠팔십의 이 분들이 몌별(袂別 : 소매끝 부여잡고 이별을 슬퍼함)하고 나면, 풍류도 함께 이 곳 풍속대로 풍장(風葬)치를 것을 걱정하며 세 번째 소포리를 찾았다. 

굿판의 굿쟁이들

굿판은 ‘여러사람이 모여 떠들썩 하거나 신명나는 구경거리가 있는 장소’다. 굿쟁이는 ‘굿판 사는 굿판인 것이다. 사람을 재미나게 해주고 굿판을 관장하는 귀신도 신나게 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전수자인 보존회원 차현지씨. 그는 억척스런 농민으로도 유명하다. 사람좋기로 그를 아는 이들에게 정평이 난 차돌백이 농부 풍물꾼.

작년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39호 진도소포걸군농악보(2)가 진도문화예술연구회와 진도소포걸군농악보존회(위원장 임귀현) 이름으로 발간되었다. 현재 위원은 김내식(보유자) 김병철 차현지 오형아 채영식 이인옥 김덕춘 노관민 곽순경 박연실 김순진이며 편집은 김남용씨가 맡았다. 감사에 김오현(진도군민속예술단 전 예술감독), 김현숙(전남문화재위원)씨가 수고하였다.

소포걸군농악 조사보고서(김정호 사료보존회장)에는 “1789년 기록인 『호구총서』에 목장면 소포리로 나오며 이미 이때 소금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1432년(세종14) 기록에 해남 우수영에 있던 주량(周粱)만호가 진도의 소가포(蘇可浦)로 옮긴 기록이 있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소포걸군농악을 발굴 전승하는데 가장 공헌을 한 차근현 전 진도문화원장의 소포에 정착한 유례를 꼼꼼하니 적어놓고 있다.

소포농악이 최초로 소개된 것은 67년 문화재관리국이 실시한 『무형문화재조사보고』(호님편)에서다. 중앙대학 정병호씨는 68년 당시 소포농악대의 상쇠인 김흥국씨를 상대로 구술받은 것을 86년 열롸당에서 펴낸 『농악』, 「호남우도농악」 편에 자세히 수록한 바 있다.(박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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