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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팔려간 섬, 바구니를 건지다
과거로 팔려간 섬, 바구니를 건지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8.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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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테 디엠 그리고 메멘토 모리

남쪽 바다 섬에는 유난히 처녀와 관련한 전설이 많다. 짧고 긴 여운을 남기는 단가와 같은 구슬픈 이야기는 벼랑 끝 동백처럼 해마다 피었다 지곤 한다. 아스라니 손을 뻗치면 툭 떨어지는 꽃. 섬들의 이름은 다들 예뻐 보인다. 누이들처럼 어머니처럼 정겹기만 하다. 진 아일랜드. 장죽수로 새섬과 세섬(삼섬). 모도. 갈매기섬, 구자도 매섬. 또 하나의 보물섬 죽도는 진도의 내도라 불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수년 전에 외지인이 사 별장을 지었다.

진도에 사는 우리는 모두 도래인이다. 도래인(渡來人)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신지식인 개척자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진도 새로운 진도 주인, 이제는 새로운 의식과 차원이 다른 도래인. 월출산 시종면과 두륜산 자락 삼촌면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 전라도 관찰사 이숙함이 진도를 찾았던 1489년. 세종 19년 무려 87년만에 입도 도래한 진도에는 주인없는 밭에서 주먹만한 귤(유자)이 주렁주렁하고 수천 필의 말이 뛰어다니는 옥주 땅은 비옥하였다. 그 오랜 휴식년 동안 진도는 그야말로 보배섬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몽암(夢庵) 이숙함은 군수 박후생의 간청으로 벽파정시를 남겼다. 올해 7월에 개장한 대명솔라&비치 리조트는 이제 “진도군 남쪽 30리 수백그루 동백나무가 있는 동백정”을 21세기형으로 복원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동백정시와 옥주별곡이 지어질 차례다. 진도를 재창설하는데 큰 공을 세운 분들을 기리는 향현사 제례를 좀더 성대하게 치를 필요가 있다. 스승과 조상을 기리는 것은 곧 그 후손 제자들의 자부심을 키우는 일이다.

무엇이 진도와 걸맞지 않는다며 벌써부터 치적논란을 부추기며 험을 잡기 보다는 ‘카르테 디엠’ 오늘을 똑바로 보고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 삶의 아름다운 확장성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고 송군바다는 천 년을 기다려 온 것이다. 진도는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바구리나 번데기로 머물러야 할 때가 아니다. 알이라면 이제 졸탁동시 깨어나 고고성을 울려야 하며 누에번데기는 비단 명주실을 뽑아내는 이적을 내보여야 한다. 환경정화는 내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개발을 미리 고정관념으로 갇아 놓고서 매도하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바다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험을 감수한 항해가 필수적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은 부임하자마자 외친다. ‘카르테 디엠!’

“현재를 즐겨라,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라.” 요즘의 학생들에겐 진정한 멘토와 사표가 없다. ‘떼창’의 우상만이 존재한다. 바다 건너의 바다 또는 섬 속의 또 다른 섬 이니스프리를 찾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나찌의 오우토반처럼 빠르게 매파 우익의 발호가 진행될지 모른다. 일본처럼.

우리 모두 언젠가는 피와 몸이 차가워지게 된다. 과거의 얼굴들을 지켜봐라. 여러번 마주 보았지만 별을 헤아리며 윤동주 식민지 문학청년처럼 마침내 돌아서버린 생의 바다여. 너희처럼 세상을 그들 손에 넣어 위대한 일을 할 거라고 그들의 눈도 새벽별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능력을 발휘할 시기를 놓친 것일까? 귀를 세우고 잘 들어보면 죽은 시인들의 속삭임이 거울 속에서, 바다에서 들릴 것이다.

계속해서 키팅 선생은 열강을 한다. “자, 귀를 기울여 봐. 카르페, 들리나? 카르페, 카르페 디엠. 너의 삶을 독특하게 만들어라!(Sei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문학과 삶을 하나로 만들고 스스로의 감정과 현재에 충실하게 만드는 것. 교과서를 찢고 졸업생 사진을 보여주면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속삭인다. 시를 발표하게 하는 시간도 갖는다. 우리는 처음부터 시인이었다. 책상 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문구를 말하면서 뛰어내리기도 시킨다. 'Carpe diem'은 존 키팅의 교육관을 한마디로 압축해주는 키워드로 볼 수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밤에 몰래 나가서 각자가 원하는 시를 낭송하는 자리였는데 그걸 장난 삼아 신문지상에 '애인 구함'식으로 광고를 낸 것이 시작이었다.

사람들은 좋은 이름보다는 귀한 향유, 자기가 얼마만큼 가졌는가를 남기려고 애쓴다. 사람들은 잔칫집에 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좋아한다. 잔치를 즐기고 파티를 즐긴다.

카르페 디엠 그리고 메멘토 모리. 이 역설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기 원하는,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무엇인가? 생일파티에서, 잔칫집에서 우리는 종종 생각과 마음이 들떠서 망각을 한다. 그래서 카르테 디엠, 지금 현재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과거에 대해 슬퍼 하지 마세요 이미 지나갔잖아요. 미래에 대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아직 오지 않았어요. 현재를 즐기시고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세요.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노력하는 분께는 이길수가 없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즐기는 사람에게는 절대 이길수 없습니다.”

진도로 손님들이 오고 있다. 우리가 즐겨하던 노래를 듣고싶어 한다. 손님이 올 때 애써 다크투어리즘에 매달려 메멘토 모리를 외칠 필요는 없다. 인류 최대공약수 음식잔치를 열어라. 잔치가 끝나면 손님은 떠나고 잔치상은 주인에게 돌아간다. 북과 장구줄을 다듬고 아리랑의 리비도를 즐겨라. 본능에너지를 충전하라. 싸움에는 일부당천, 손님에겐 근자열 원자래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한다.

“별의 저 건너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죽음의 모습을 볼 때 사람들은 각각 다른 생각 다른 슬픔에 젖는다. 이제 남은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를. 그러나 잔칫집에 가면 어떤가? 흥이 나면 음식을 먹고 풍광에 젖는다. 그러나 애곡하는 집에 다녀오면 우리는 엄숙한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는다. 팽목항에 가면 아직도 인양되지 않은 세월호의 진실에 목이 마르다. 금갑포에 가면 삼별초의 패퇴로 1만명의 포로가 몽골로 끌려가던 역사가 허물어진 금갑성돌에 파래김처럼 달라붙어 검고 푸른 머리칼을 풀어놓는다.

수도사들은 아침이면 “메멘토 모리”라고 인사를 했다. 늘 죽음을 기억하는 삶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잔칫집에 가면 카르페 디엠 -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애곡하는 초상집에 가면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우리에겐 다시래기라는 독특한 해원의 방식이 있다.

왜 벌써부터 ‘메멘토 모리’만을 찾는가. 진도는 창조의 섬이다. 창조는 파괴의 신의 은혜를 거쳐야 한다. ‘엣날에는’이라는 ‘네거리타령’은 스스로를 아웃사이더(국외자)로 만들 뿐이다. 존 키팅선생의 수업처럼. 7월 22일 내 생일 아침을 위하여 나 또한 외칠 것이다.

‘카르테 디엠’! 세상의 모든 굴레를 모래성처럼 허무는 푸른 파도가 되어. 그리고 날자. 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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