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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포 가는 길
장구포 가는 길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12.0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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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가 꽃을 피우면 나는 가벼워진다. 한 대목을 마친 남도 소리꾼이 만장을 몰입하는 대목 부채살처럼 된 듯 하늘하늘 꽃이 된 듯 가벼워진다.

아내와 함께 한 시절을 불러오고 싶을 때 초여름 바람에 한껏 부채살을 펴는 자귀나무 뒤로 강이 흐른다.

짧은 분홍 실을 부챗살처럼 펼쳐놓고 소앵무리는 이쪽으로 가야해. 송가인의 집과 강황밭이 있는 가느다란 길가 수로에는 풀과 물을 찾아 붕어들이 모인다. 굴재 소들이 내려오면 누런 벼들이 고개를 숙여 앵무리는 소리마을이 되었다. 영돈말이 여귀산 작은 포구와 북치는 동네 고산이 자리한 바람은 재우고 물은 받아들이는 장구포 가는 길에는 가창오리 고니떼 다 날아가도 자귀나무가 부채꽃을 피운다. 가버린 날들이 어느새 다가와 손짓하는 당신과 나의 가슴을 다시 물들이는 꽃이야기는 무엇일까.

세방 끝에는 ‘꿈이로다 화연일세’ 소설작가 살았던 그늘이 고요히 내려앉는다. 탑립 바다로 춤추러 가버린 인연 등 지면 긴 사래밭 소전체 가는 장전과 임농 하철경의 한옥 고가 흙돌담에 연기가 피어오른다.(박남인)

*송가인: 트롯가수. 임회면 앵무리가 안태고향마을이다. ‘꿈이로다 화연일세’는 장편 소설로 진도출신 삼절의 화가 소치 허련의 일대기를 쓴 곽의진의 작품 제목이다. ‘실팍한 궁둥이’, 초의선사 발길을 찾아간 ‘향따라 가는 길’, 명량대첩에 얽힌 전설 ‘어란’, 삼별초를 주제로 한 소설 ‘민’ 백성이 등이 있다. 맹골수도 세월호 참사에 팽목항 봉사활동에 전념하던 어느 날 여귀산 탑립에서 돌아가셨다. 유족으로 영화배우 딸 조련씨가 있고 아들은 영화감독을 한다.

장구포에서 진도 명산 여귀산을 보면 성숙한 여인이 길게 누워있는 형상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특히 젖가슴이 돋으라져 묘한 감흥을 일으킨다는 것. 예전 이곳 광전들은 개펄이었다. 그래서 장구포, 선항리, 광전마을, 삼박리, 중미실 호구동 고산 마을이 있다.

특히 삼막리는 하미실이라고 하는데 유명한 젓대의 명인 박덕인과 그 아들 박종기씨가 젓대를 불면 산새들이 날아와 춤을 췄다고 한다. 또 추사 이래 대 명필로 불리는 소전(素筌) 손재형의 애제자인 장전(長田) 하남호, 남농 허건의 마지막 제자이자 소녀사위인 임농(林農) 하철경 등 많은 화가들을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나의 아내는 임회면 호구동 광석보건진료소에서 5년 가까이 근무했다. 그 위로 용산 저수지와 용산마을이 있다. 더 깊이 도정기미라는 두메산골에 몇 집이 들어서 산다. 진도의 숨은 십승지로도 불린다. 최근 이곳에도 일휴 김양수 화백이 집을 짓고 그림작업을 하고 있다. 용산은 마을이 저수지 위 여귀산자락과 닿아 길게 놓여져 있으며 일주 이경모화백이 고향이며 마을 한 가운데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광석진료소는 사택이 별도로 있다. 마을 가게도 두 개나 있다. 식당도 있다. 닻머리 고인돌이 서진도농협지점 앞에 있다. 광석초등학교는 분교가 되었다가 폐교되어 지금은 임회면 동부쪽 주민들 농기계 임대장으로 쓰인다. 보건진료소는 방문환자로 늘 북적거린다. 김씨 조씨 하씨등이 대성을 이룬다.

장구포는 진도읍에서 팽목항으로 가는 주요한 삼거리이다. 지금은 장구포 수로 방향 도로가 지름길로 쓰인다. 고산 매정 폐동(陛洞. 광해군시절 인성군이 유배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사동(뱀골), 고뱅이(고방리)에서 십일시 석교 임회면소재지와 만난다.

여귀산은 오래 전부터 춤추는 여인들의 신전이었다. 고라니떼도 인연을 따라 생달나무 잎 아래에서 수행을 하고 그 많은 동백나무들은 바다를 향해 푸른 적멸의 춤을 추었다. 바다의 안개가 이른 아침부터 강계(江界)와 죽림(竹林) 저수지 위로 피어오르고 구들장을 높이 쌓은 묵은 미나리논에 미꾸라지가 숨어살았다. 저수지 안에 죽림사가 있었다. 보살여인들이 다녀 절이 유지되는 듯 하더니 어느 노승이 경계하던 “참기름을 바깥으로 돌리지 말라”는 것을 어느 가난한 홀어미에게 보내주고서 폐사되었다니 나는 동백꽃에 묻고 싶다.

산은 바위산으로 되어 있다. 산지 주능선과 산정에서 남쪽을 보면 오봉산과 연대산을 볼 수 있다. 정상부의 산죽 군락지는 그 옛날 정상에 봉화대가 있어서 봉화대를 지키던 봉화수들이 기거했던 곳인데 호랑이의 피해를 막기 위해 심었다는 전설이 있다.

봉수는 약 450㎝ 높이의 잘라진 틈에만 특별히 보완 석축하고 석벽의 가장자리에 몇 단의 석축을 원형으로 쌓았다. 50×30㎝정도의 막돌을 이용하여 ‘막돌허튼쌓기’에 의해 구축한 연대의 직경은 대략 6m 정도이다. 현재는 완전 도괴되어 주위에는 석재편들이 흩어져 있다.

이 봉수에서는 진도남단의 거의 전 지역이 조망되어 남편의 상당곶연대와 남동편의 백동리 연대산연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동편으로는 금갑진성과 금갑리 연대가, 동남편에는 남도석성이 위치하고 있다.

진도자연휴양림 가는 앞 길 양옆에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밑에는 어린 동백나무가 수두룩하다. 절개를 나타내는 대나무숲도 있다. 곰솔, 후박나무, 비파나무, 구실잣밤나무, 조도만두나무, 다정큼나무, 소태나무 들도 함께 숲을 이뤄 하늘을 가린다. 굴을 따던 어머니가 물이 차오르자 아들을 애타게 불렀다는 업생이바위는 수풀 속에 숨겨져 보이지 않았다. 신군부시절 간첩조작사건으로 만들어진 해안 초소는 없어지고 넓은 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구기자와 대나무 뿌리에서 샘솟는 물을 마신 마을 사람들이 오래 살았다고 하여 이름 붙은 천수샘에는 지금도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일휴의 선화속으로 걸어가보자.

부대사(497∼569)의 선시 ‘빈손에 호미들고’(54쪽)의 ‘호미를 든 빈손이요,/무소를 탄 보행이네/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는데/다리는 흘러가고 물은 흐르지 않네’.

다리가 흘러가고 물이 흐르지 않는다. 깨달음마저 버린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가. 다리도 물도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리도 흘러가고 물도 흘러간다는 것이다.  

왕유의 ‘석양’도 ‘빈 산에 사람 없고/들리느니 말소리뿐/지는 햇살 숲 깊이 들어와/푸른 이끼 위에 비치고 있네’ 역시 짧지만 깊은 깨달음의 시적 변주를 갈구한다. 이외에 함허득통(1376∼1433)의 ‘강 위에서’의 ‘누구의 젓대 소리 강을 건너오는가/달은 물결 위에 빛나고 인적 없는데/이 몸은 어찌 예까지 흘러와/외로이 뱃전에 기대어 먼 허공 보고 있는가’에서는 한 득도자의 외로운 심정이 드러난다는 감상 글이 붙어 있다.   “선화는 선화라는 프레임도 거부한다. 선화에 갇히면 이미 선화가 아닌 죽은 그림이다. 선화는 깨친 사람이 나를 비우고 욕심을 버린 선의 상태에서 관찰된 대상의 마음 그림자를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그림 또한 뜬구름으로 여기 세속에서 값을 치르는 것을 거부하는 정신적 내용을 품고 있다. 무애의 붓끝이며 자유의 춤이며 흥겨운 노래”라고 언급했다.  

작가는 ‘선 하나 그으니 선은 간 곳이 없고 텅빈 허공 뿐’이라고 밝힌다.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1493)은 ‘나그네’(32쪽)를 통해

‘아이는 잠자리 잡고 노인은 울타리 고치는 곳

작은 냇가 봄물에 가마우지 목욕하네

푸른 산도 다한 곳, 돌아갈 길은 멀어/ 지팡이 어깨에 메고 하염없이 서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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