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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가 남긴 가장 소중한 자산은 무엇인가
유교가 남긴 가장 소중한 자산은 무엇인가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1.0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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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면 분토리 횽충사

인류에게 민주라는 사상은 서구만의 산물이 아니었던 것처럼 복지 역시 서구만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와 제도 역시 서구니 비서구니 하는 구분을 넘어서서 넓게 찾아져야 마땅하다. 실제 현실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과거 오랫동안 서구가 비서구를 압도적으로 지배하며 영유하던 초과 이윤이 줄어들면서 이러한 상황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그렇다고 상황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미래 세계가 과거보다 반드시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이 될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중요한 점은 한 마리의 호랑이든 열 마리의 늑대, 또는 무엇이든, 여하한 형태의 소수의 폭압과 전횡, 약탈에 맞서 싸웠던 인류의 모든 소중한 지혜와 경험을 모으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이들 사이의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구 대 비서구라는 차등적 구분선은 점차 실효를 잃게 될 것이다. 문제는 서구 대 비서구라는 불평등한 구도만이 아니다. 우리 내부, 각자의 내부에서 소수의 폭압과 약탈이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점이다. 유교 역시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폭압과 약탈의 구조를 합리화하는 유교도 있었고, 여기에 항의하며 맞서 싸우는 유교도 있었다. 이 둘을 날카롭게 구분해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쉽고 간단한 일은 아니다. 여러 힘이 얽힌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이 둘은 쉽사리 구분되지 않는다.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다. 이것이 시작이다. 그런 노력들이 쌓여갈 때, 유교 자원의 건강한 측면을 오늘날 현실에 맞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위·변형할 수 있는 창조력도 생길 것이다. 사창을 설립한 주희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은 향촌의 민 스스로가 자기 지역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매우 구체적인 수준에서 고민했다는 점이었다. 민생 문제의 민주적 해결 방식을 모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주희가 구상한 이상적인 방식의 사창 운영은 결국 향촌의 양심적인 몇몇 유학자에게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사창이 사심을 품은 향촌 세력가나 관료들의 힘에 휩쓸리곤 했던 것을 결국 막아낼 수 없었다. 민이 스스로 자기 구제의 주체로 서는 수준까지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주희 시대의 한계였다. 그러나 이제 주회가 기대했던 민간의 자립적 주체들이 지닌 힘이 그의 시대에 비해 현저하게 성장했다. 보편적인 현상이다. 시민사회의 활동성이 매우 강한 한국 사회의 경험도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러나 민주적 역량이 커졌다, 민주주의 사회가 되었다. 단순히 이런 언명에 그친다면 그것은 안일하고 자족적인 태도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힘의 성장을 저지하고 억누르는 시스템과 이데올로기도 아울러 자라나고 더 교묘해졌기 때문이다. 민주, 민생, 평등, 평화 이러한 가치의 향유 범위는 꾸준히 확장되어왔지만 동시에 이를 가로막는 장애들도 새롭고 고도화된 형태로 늘 제기되어왔다. 우리가 안일함에 머문다면 결국 냉소주의가 이긴다. 우리가 찾아보려 했던 것은, 안일함에 머무르지 않는, 늘 새롭게 발생하기 마련인 여러 문제 앞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 그 자체, 그 전부가 윤리적이고 비판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현상에 머무르려고 하기도 하고, 자기폭력적인, 또 그것이 번져나간 타자폭력적인 양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비판적이고 윤리적으로 보며 대응하고 풀어나가도록 우리를 끈질기게 밀고 가는, 저항할 수 없는 모종의 추동력이 그 안에 잠재되어 있다. 칸트가 말한 실천이성의 '순수한 충동echte Triebfeder'에 비견되는 무엇이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고 한 '그 무엇es' 말이다. 우리가 유교에서 물려받은 가장 소중한 자산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산 윤선도 제막식 임회면 굴포리

유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 벗기기

지난 100년간 한국 사회에서 고리타분하고 퇴행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유교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재미있고 새롭게 조명하고 해석한 책이 나왔다.

이 책은 한마디로 유교에 대한 오해를 걷어 낸다. 예를 들면 맹자사상은 곧 민본주의, 위민사상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민본’은 서양에서 들어온 개념 ‘데모크라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 지식인들이 각각의 정치적 현실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했고 거기에 동양적 콤플렉스가 뒤엉킨 낱말이라는 것. 저자는 그런 빈껍데기 개념에 이해 없이 기초해 맹자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일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오류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저자는 ‘부모에 대한 효도’는 곧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이미지는 놀랍게도 유교에 근거가 없다고 진단한다. 충효라는 말의 기원은 법가의 한비자로서, 거기서 ‘충’은 군주(인격)에 대한 신하의 절대적 복종을 뜻한다(반면 유교의 ’충은 자기 성찰에 가깝다). 이 법가의 원리는 제국을 다스릴 통치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던 한나라 동중서(董仲舒)에 의해 채택됐고, 이후 동아시아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특히 일본(에도시대)에서는 충-효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용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일본의 봉건적 관습이 식민시대를 겪으면서 우리 땅에서 맥락이나 개념적 이해 없이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면서, 오늘날의 ‘유교=충성’이라는 일반의 믿음이 굳어졌다고 밝힌다.

오히려 저자는 “유교의 충성은 대상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뜻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공자에게 충성은 ‘문명적 차원의 이념(大義)’ 또는 ‘자연적 이치(天理)’에 따르는 것, 내면의 덕성에 바탕을 둔 덕치(德治)사회의 건설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유교는 삼강오륜과 충효 이데올로기로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저자는 유교에는 삼강오륜이나 충효 이데올로기 따위가 존재한 바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가 관습적으로 잘못 알고 있거나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해주는 고전 다시 읽기는 항상 놀라운 ‘한방’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그것은, “삼강과 오륜은 이것이 아니면 저것일 수밖에 없다. 삼강이 바르다면 오륜은 그르고, 오륜이 옳다면 삼강이 틀린 것이다. 요컨대 삼강과 오륜은 서로 다르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삼강은 군주독재와 중앙집권의 정치논리를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족 속으로 침투시키고자 했던 한나라 사상가 동중서의 일통(一統)사상이 만들어 낸 개념이지, 소통과 공감을 중시했던 공자나 ‘상대와 더불어(與)’를 늘 고민했던 맹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악성 바이러스 같은 삼강은 오륜에 들러붙어 유교를 병들게 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에서 “우리는 유교를 오해해 왔다. 실물경제와는 담을 쌓은 도덕주의, 이기심과 욕망의 심리학을 억누른 관념주의, 현실을 도외시한 창백한 이상주의 등이 유교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유교는 일용지간(日用之間)이라, 평범한 일상 속에 진리가 쉼 쉰다고 여긴다. 진리는 지금 이곳, 너와 나 ‘사이’에 있을 따름이다. 인간조건을 넉넉히 감안하고서, 현재 삶의 문제를 직접 대면하는 것이 유교다. 비루하고 치사한 생존의 문제를 도외시 하지 않고서, 산속이 아니라 질척이는 시장통에서 삶의 진실을 찾는다. ‘지금, 여기’에 제출된 역사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이 유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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