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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진도군의 방향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진도군의 방향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1.2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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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의 푸른 보석, 아열대의 슬픈 남회귀선의 섬

우리 진도사람들은 ‘다도해의 푸른 보석’으로 고향을 자랑한다.

벽파정을 바라보며-李淑함(이숙함)은 아래와 같이 노래했다.

碧波亭好在(벽파정호재) : 벽파정은 잘 있었는가.

白首客重來(백수객중래) : 흰 머리 나그네 다시 왔도다.

古渡淡煙合(고도담연합) : 옛 나루터에는 옅은 물안개 자욱하고

層崖亂石堆(층애난석퇴) : 층계 진 벼랑에 어지러운 돌이 쌓였구나.

시 한 수를 더 감상해보자.

天邊日脚射滄溟(천변일각사창명) 하늘 맞닿아 햇빛 눈부신 먼 바다

雲際遙分島嶼靑(운제요분도서청) 구름 밑으로 점점이 박힌 푸른 섬

閶闔風聲晩來急(창합풍성만래급) 해거름 바람 소리 하늘에 가득터니

浪花飜倒碧波亭(낭화번도벽파정) 파도 꽃 부서져 흩날리는 벽파정 바다를 건넌 자 역사를 만나리라. 이충무공전첩비가 우둑 선 벽파정에 올라 먼 바다를 쳐다본다. 하늘 낮게 비낀 해가 바다를 온통 반짝거리게 비춘다. 하늘에는 몇 점 구름이 한가롭고, 먼 바다에는 점처럼 박힌 섬이 또렷하다.

벽파정

 

바다에서 불어오는 서풍이 매우 거세다. 파도가 높이 인다. 벽파정 밑에 있는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가 하얀 물보라를 만든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하얀 파도 꽃이 피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석양에 바닷가에 서서 발 앞에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하염없이 보고 있노라면 누구든지 시인이 될 것이다.

“천지는 사사로움이 없다. 그래서 만물의 스스로 그러함을 들을 줄 안다”(도덕경 5장 天地不仁)

우리 앞에 죽음이 현실에 있지 않고, 죽음은 매우 추상적이고, 초월적이면서 비현실적인 어떤 사건으로 우리가 죽음을 인지하는 척도가 너무나 다르다. 삶을 인지하는 속도는 강화돼 있고, 극과 극의 괴리가 너무 길어 그래서 우리 옆집에 코로나로 누가 죽었다 해도 그 다음에 우리 앞집에 어떤 사람이 사고로 오늘 밤에 죽었다 해도 누가 자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해도 죽었나 보다, 아이고 안 됐네, 그냥 끝나고 만다.

고향이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도 평생 고향에서 산다. 전쟁이 끝난지가 70년이 다 되었지만 실향민들은 지금도 아바이마을과 편안한 농사(安農)를 바라는 두고 온 산천에서 꿈속에서도 살기 마련이다. 진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진도에서 사느냐고 묻는 이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제대로 큰 병원도 없고 백화점도 유람선도 없는 섬에서 호미로 자갈밭을 파며 슬픈 흥타령을 부르며 파뿌리가 되도록 살고 있다.

내가 나를 떠나지 못하는 곳. 700년이 넘도록 귤나무가시속 유배지로 역사의 격랑을 떠다니며 사람과 사람사이에 하얀 질베의 길, 신의 길을 닦으며 흘러온 섬. 아열대의 푸른 진도.

왜 사람들은 한 평생 굵은 운명의 닻을 내리고 올리며 노래의 그늘을 치며 이 질박한 바다도 아닌, 들도 아닌 숲도 아닌 가흥가흥(佳興)하면서 살아온 것일까.

진도 정주인구 3만시대가 허물어진다. 섬마을의 돌담이 세월을 따라 하나 둘 허물어져 가듯이 수 십년 밑들을 빼 윗돌을 쌓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지자체에 상당한 지위를 인정하나 지역자치에 필요한 중요한 헌법적 원칙들을 충분히 담기에 부족한 상태다.

지금처럼 지자체들이 따로국밥식 행정을 하는 상황에선 지역위기를 극복할 어떠한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지역주의로의 회귀에 솔깃해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공염불에 우왕좌왕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 버릴 수 있다. 지방소멸은 신기루가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은 분들에게, 잠시 시간을 내서 지난 20년간 우리 국토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각종 통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코앞에 다가온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조만간 지방소멸이 아닌, ‘국가소멸’이라는 화두를 놓고 또 다른 갑론을박을 벌이게 될 지도 모른다.

 

진도에는 군단위로는 최초로 설립된 ‘진도학회(회장 이윤선)’가 활동하고 있다. 학회란 무엇인가?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그들만의 운동장인가. 인류에게 섬사람들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였는가. 최근 진도학회 내에서 진도를 깊이있게 연구한 결과 내용을 담은 진도학회보를 절례회때마다 발간하고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모든 연구는 현실에서 실행으로 옮길 때 그 가치를 빛낸다.

일부 진도역사학을 하는 이들은 진도에서 19년의 적거생활을 한 소재 노수신을 개화지조로 숭앙하기도 한다. 되돌아보면 4년의 적응과 응전과 12년의 진도군수를 역임한 이동진 전임 군수는 21세기의 노수신이었는가? 민속놀이를 야만의 풍속으로 바라본, 퇴계보다 훨씬 닫힌 인식을 바탕으로 목장지역 청년 남녀들의 연분홍 삶의 대목을 부정적으로 본 노수신은 진정한 진도인이 아니었다. 화성남자나 다름없었다. 금부도사가 언제 찾아올지 두려움에 떨며 개소리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며 서당 훈장일로 의식주를 해결 연명하던 연군지정에 매달린 구팽의 신세가 아니었던가.

이와는 달리 무정 정만조는 젓대의 신인이었던 박덕인의 방문을 크게 반기고 시를 남겨 진도의 풍속문화의 근거 기록을 풍부하게 기여하였다.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매천 황현이 부러 먼 길을 돌아 찾아와 헤어짐을 슬퍼하였던 일화는 문답시에 담겨있다. 대금국수 박종기와 무송 박병천이, 소전(素筌) 손재형선생이 하늘에 닿는 기운생동을 얻었다. 시대를 자각하는 이는 파괴적 존재가 인간에게 생명을 던져주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과 여성주의에 입각하여 신화를 읽는다.

잠시 진도의 민속신화로 들어가보자. “신화 속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은유적, 시적,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세상은 늘 혼란을 거치며 평화롭고 안정이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 안정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움이란 것은 또 무엇인가.

이 시대에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바람 속에서도 배추와 대파를 잘 묶는 팔순 할머니는 춤도 잘 춘다. 못 산다 못 산다 해도 몸빼바지 주머니는 품삯돈이 수북하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 경로당은 다시 돌아온 초등학교다.

‘기성세대의 주어진 틀을 새로운 제대가 깨트려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 간다’. 진도다시래기는 진도라는 마고성 역사의 본질이 담긴 아이들 교육에 필요한 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봉사 점쟁이 아버지는 아이들을 뱃속에 가두고 억누르지만 다음 세대는 아버지의 배를 가르고 나와 자신의 시대를 열어가는 것을 상징하는 메시지라고 했다. 씻김굿 사설에도 지소씨 황궁씨가 불려나온다. 흥안령을 건너 이곳 진도에까지 온 것일까. 지역은 지리적인 요소 외에 사람이 소속되어 있고 일상적 삶을 영위하는 생활 기반이 된다는 인식의 정신적 요소도 중요한 관념이다. 이는 공동체 관념과 결부된다. 어느 지역공동체만 발전을 독식하게 하지 않고 모든 지역 공동체들이 골고루 발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진도는 열등한 축소사회 속에서 가치를 상실하고 있는 문화, 삶의 철학, 순환이 막힌 자본주의 부의 축적을 마르둑으로 황금송아지로 받들어 기린다. 다산이, 전봉준이 그토록 복원하고 싶었던 원시공동체 시대는 오지 않는 것일까. 과거의 마을거점 공동체에서 이제는 100원 택시, 버스, 절반의 뱃삯으로 진도 전체를 하나의 문화경제권으로 묶고 있다. 군수는 30분이면 진도 체도 어느 바닷가도 갈 수 있다. 수품리의 물김 현황과 서망 위판장의 꽃게파시 시세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왜 우리는 타는 목마름으로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가. 주거, 소득, 일자리를 얻을 기회, 교육, 문화, 교통, 치안 등의 기본적 확보에서 편차가 없고 굳이 다른 지역 공동체로 옮아가 살 이유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이 균형이 의미하는 최소한의 판단 지표라 할 수 있다. 균형성이 천편일률적인 것을 요구하는 의미여서는 곤란하다. 다양성, 독자성, 자율성이 보장되는 가운데 기초적 인프라가 뒤처짐이 없는 지자체. 경제적, 물질적, 재정적 발전만이 아니라 문화적, 정신적 발전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이것이 더 중요하다.

지역균형발전과 지역자치는 구별된다. 지역발전을 위한 자치권의 확대가 지역공동체들 간 부익부, 빈익빈을 가져오지 않는 균형발전이 필요하다. 각 지역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그 지역공동체에서 일상적인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소득을 가지고 안정적인 주택에서 자녀교육에 힘쓰고 문화적인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양성은 각 지역공동체 마다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활동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역공동체가 인간의 기초적인 삶의 터전이라는 점에서 지속적이고 미래발전적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지역자치는 '공동체 정신'에 터잡고 있다. 공동체 대동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더 나은 선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이 공동선을 일구기 위한 자치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공동체가 그렇게 기반하는 것과 같고 국가공동체는 지역공동체들로 이루어진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대한민국은 지역공동체들로 구성되는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여 공동체 의식의 확인과 함양이 밝혀 다지자는 것이다. '자치'를 구현한다는 핵심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고 보면 보다 자율성을 더 부여하기 위한 헌법의 유연성 여백, 여지를 다소 넓게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대적 변화에 조응하여 현재와 미래의 니즈(needs)를 담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내 고향 ○○’ '지방'이란 말이 마치 '중앙'에 조응하는 의미로, 중앙 아래나 외부의 아웃사이더에 있는 변방이라는 생각을 가지게도 하는 용어라서 지방이란 말부터 '지역', 지방자치단체를 '지역공동제'로 적극 바꾸는 것을 검토해 볼 일이다. 일본제국이 부여 시행해온 도(道) 단위라는 애매한 광역 행정구역은 해체되어야 한다. 지역주체 자치제는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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