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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머물다 지나갈 뿐
 단지 머물다 지나갈 뿐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1.3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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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석성

진도에 주둔한 삼별초는 고려 무신정권 말기의 장군인 배중손(裵仲孫, ?~1271)을 지도자로 삼고, 현종의 8대손인 왕족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 ?~1271)을 새 왕으로 받들어 몽골에 항복한 고려 조정과 대립했다. 이처럼 진도의 역사에는 항쟁·항전의 정서가 강하게 스며있다. 물론 ‘진도아리랑’의 명성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의 예인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근에 섬이 목탁 형상을 하고 있다는 불도(佛島)·‘스님의 가사가 섬이 됐다.’는 전설이 전하는 가사도(加沙島) 등이 있어 불교와도 인연이 깊다. 가사도의 원래 한자명은 스님의 법의를 일컫는 ‘袈裟’와 같았는데, 언제부턴가 ‘加沙’로 바뀌었다고 한다. 남종문인화의 대가 소치 허련(許鍊, 1808~1892) 선생은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타계한 직후인 1856년 49세 때 고향 진도로 내려와 이곳에 화실을 짓고 ‘소허암(小許庵)’ 또는 ‘운림각(雲林閣)’이라 불렀다. 현재는 이 공간 전체를 운림산방으로 부른다. 소치 선생이 쌍계사 옆에 운림산방을 건립하고 말년을 보낸 이유는 뭘까? 소치는 자서전 〈소치실록(小癡實錄)〉 ‘자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허련의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대표적인 호는 소치(小癡)이며, ‘노치(老痴)’·‘석치(石痴)’도 그의 호다. 선생은 남종문인화의 창시자인 중국 당나라 때 시인이자 화가였던 왕유(王維, 699년 추정~759)의 이름을 따 허유(許維)로 개명했고, 마힐(摩詰)이란 자(字)도 왕유의 자를 그대로 썼다. 허련 선생이 왕유의 이름과 자를 쓴 것도 자신의 불심과 무관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치는 실제로도 불교와 인연이 매우 깊다. 초의선사를 모시고 공부를 했고, 암자의 방 한 칸을 얻어 세속을 벗어나 지내며 한가로움을 즐겼다. 허련 선생은 종종 사찰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 1877년(고종 14)에는 남원 선원사(禪源寺)와 교룡산성에 머물며 각공(刻工)을 불러 스승 추사의 화본(畵本)을 판각했다. 그리고 ‘매죽도’도 그렸다. 초의선사와 추사·소치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졌을까? 〈소치실록〉 ‘몽연록(夢緣錄)’에는 소치 선생이 객(客)으로부터 “그대는 무슨 인연으로 (추사와)일생의 지음(知音)이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을미년(1835)에 대둔사(大屯寺)에 들어가 초의선사가 있는 일지암(一枝庵)에 방을 빌려 거처했습니다. 속세 밖에서 생활하는 운치가 꽤나 있었습니다. 날마다 서화(書畵)를 즐겼습니다. 초의선사는 늘 추사공의 높고 뛰어난 점을 말씀하셨고, 나는 귀가 닳도록 듣다 보니 그 분을 만나 알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고 …… 나는 공제(恭齊)의 그림을 임방(臨倣)한 몇 폭의 그림과 스스로 만든 몇 폭의 그림을 (초의선사를 통해 추사선생에게)보냈습니다. 추사공에게 한 번 증질(證質)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초의선사의 편지에는 추사공과 (초의선사가)주고 받은 짧은 편지가 들어있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허군의 화격(畵格)은 거듭 볼수록 더욱 묘하니, 품격은 이미 이뤘으나 견문이 좁아 좋은 솜씨를 마음대로 구사하지 못하니, 빨리 한양으로 올라와서 안목을 넓히게 하는 것이 어떠하오?’…….” 허련은 31세 때 초의선사의 추천으로 추사의 문하생이 되어 추사의 집에 머물며 시·서·화를 배웠다. 추사로부터 중국 북송 미불(米芾), 원나라 황공망(黃公望), 예찬(倪瓚), 청나라 석도(石濤)의 화법과 추사체도 전수받았다. 1840년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되자 소치는 1841년·1843년·1847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제주도를 오가며 그림을 배웠다. 추사는 제자 허련에게 아호 ‘소치’를 내려주었다. 특히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했던 추사도 소치에게만은 “압록강 동쪽에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 나보다 낫다.”고 극찬할 정도로 소치의 실력은 뛰어났다.

쌍계사

이 주련은 ‘화엄경’ 여래출현품에서 보현보살이 설한 게송이다.

그러나 몇 군데 원문과 다르게 변형한 글자가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게송의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若有欲知佛境界 當淨其意如虛空약유욕지불경계 당정기의여허공 遠離妄想及諸取 令心所向皆無礙원리망상급제취 영심소향개무애

먼저 다른 글자는 두더라도 욕식이 아니라

욕지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지(知)는 형성글자로 입을 나타내는 구가 의미로,

화살을 나타내는 시가 소리부로 쓰여서 ‘알다’라는 뜻이다.

화살이 과녁을 꿰뚫어버리듯이 상황을 날카롭게 판단해

의중을 정확하게 꿰뚫어 말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반해 식은 말을 나타내는 언(言)이 의미부로,

진흙을 나타내는 시가 소리부로 쓰여서 ‘알다’라는 뜻이다.

머릿속에 새겨 자신의 지식이 되게 한다는 뜻으로

지(知)와 같은 듯하지만 다른 표현이다.약인은 누구라도 부처님 가르침을 알려고 하는 대상을

두루 나타내는 표현이다. 경계는 감각이나 인식의 작용이

미치는 범위를 말하기에 곧 소연이 된다.

여기서는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골수인 핵심을 말함이다.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보충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화엄경’ 초발심공덕품의 게송에 이 가르침이 있다.

“욕지일체제불법 의응속발보리심

차심공덕중최승 필득여래무애지

欲知一切諸佛法 宜應速發菩提心

此心功德中最勝 必得如來無碍智),

일체 제불의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응당 보리심을 일으켜라.

이러한 마음이 공덕 중에

가장 수승한 공덕이라서

반드시 여래의 걸림 없는

지혜를 얻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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