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8:06 (수)
과거 살리느라 미래를 포기해서야
과거 살리느라 미래를 포기해서야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2.10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도에는 오래된 씨앗, 영원한 인류의 미래가 민들레처럼 영토를 땅 깊이 언 땅을 뚫고 있다. 모든 씨앗은 시요 수묵(水墨)이다. 뽕할머니에 바치는 아름다운 고향세다. 영등살 하늘에서 무지개가 내려온다. 일곱빛 쌍무지개 고향세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이다. 벽파진에 가 보라. 벽파진 전첩비는 눈물의 화강암이다. 거대한 서사시다.

온고지신에서 ‘온고(溫故)’는 백년의 꿈이 과거를, ‘지신’은 미래를 향한다. 이 세상 어떤 일도 능력이 있어야 하게 되고, 능력이 없으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온고지신’도 행하는 사람이 쌓은 내공에 따라 ‘온고’에 멈출 수도 있고, ‘지신’까지 갈 수도 있다.

‘지신’은 창의나 탐험에 가까우므로 ‘지신’을 하려면 ‘온고’를 할 때와는 다르게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를 ‘뜨거운 사회’와 ‘차가운 사회’로 구별하가도 하는데, ‘차가운 사회’는 균열을 내는 파괴적 동작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온고’에 머물기 쉽다. 반면에 ‘뜨거운 사회’는 균형이나 연속성에 부단히 균열을 내는 일이 구조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온고’에 머물지 않고 부단히 ‘지신’이 일어난다. 우리는 지식 생산지역이 아니다. 지식과 기술을 수입지자체로서 이 정도의 발전은 기적이다. 문제는 우리가 선진 기술과 시스템 접근성 등 가장 외딴 섬에서 살면서 만든 우리의 그릇이 이미 꽉 찼다는 데에 있다. 이제는 이 그릇을 키워야 한다. ‘온고’ 쪽에 머물던 몸을 세워서 ‘지신’ 쪽으로 기울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문화라는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미 있는 그릇의 연속성과 균형에 균열을 가하는 ‘지신’의 용기가 필요하다. 특별히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는 긴 세월 대답에만 빠져 사느라 우리의 영혼이 과거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연속성과 균형에 균열을 내지 못하는 ‘온고’의 점잖음으로 미래의 일에 과거의 규제를 적용한 결과다. 과거를 살리느라 미래를 포기한 일이 이미 적지 않다.

박지원대 박지원. 연암과 디제이 리틀 디제이자 장자방.

조선시대의 박지원의 호는 연암(燕巖)이다. 진도출신 정치인 박지원은 아직 아호가 없어 보인다. 그 또한 또 하나의 제비집이나 다름없다. 정치구단이라는게 눈치와 선택의 타고난 능력때문에 80을 넘어서도 대통령출마 운운하며 자신의 주가를 올리는데 은근히 힘을 쏟는다. 작년에 갔던 제비집을 기웃거리며 헛다리짚기 선수라는 비아냥까지 듣는다.

연암 박지원은 박제가. 이덕무 다산 추사 등 선구자들과 서얼 천재들의 시대를 한탄하였다. 가슴을 찌르는 눈빛, 워낙이 호주가라 벼슬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창 잘 나가는 청나라를 다녀와 천만 명 중 가장 먼저 개안을 했다. 그릇이 더 커졌다. 노자의 도경과 덕경에 퇴계의 성학십우도, 심우도까지. 정감록 천부경, 푸름을 아는 세한의 논어와 시경이 다시 요구된다. 21세기의 박지원도 외눈박이 시인이다. 예언자는 모두 외눈박이다. 눈을 찌르는 메추라기 최북과 안견과 겸재 정선 그리고 녹우당 비를 맞던 윤두서. 진도 이덕리의 상두지. 진도 다시래기 3천년 보리수 아래 직지인심 경을 다시 읽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