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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만 배수로 공사 이끈 공적 바람에 닳아
소포만 배수로 공사 이끈 공적 바람에 닳아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9.0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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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 헤쳐온 풍운아 이남준 인생아리랑

 

산월-소포리간 이남준 공적비 이전해야

진도읍 산월리와 지산면 소포리를 잇는 소포 간척지. 이곳은 바닷물이 막힌 지 3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예전의 풍요로웠던 모습 대신 아픈 생채기만 곳곳에 남아 있었다. 맑은 물이 흐르던 석교천과 진도천 등은 역한 냄새를 풍기는 저수량 1300만㎥의 거대한 담수호로 변했고 방조제 바깥쪽, 바다에도 조류에 떠밀려 온 해초가 가득 쌓여 또 다른 오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국농촌공사 진도지사 관계자는 "대흥포 방조제가 낡아 2006~2008년까지 모두 23억 원을 들여 배수갑문과 방조제 보강공사를 한다"면서 "사업이 완공되면 안정적으로 농업용수를 확보하게 되고 재해를 미리 예방하는 등 영농환경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곳 소포방조제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1977년. 주민들은 당시 포클레인 같은 중장비가 없었던 시절, 오로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맨몸에 지게와 리어카만으로 바다를 메웠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여의도 면적(848㏊)보다 넓은 1190㏊의 농경지를 새로 만들어 낸 소포방조제.

■ 소포방조제는 지금

진도읍 산월리와 지산면 소포리간 바닷길 1368m를 막아 만든 간척지. 1970년 공사에 들어가 7년만인 1977년 완공했다. 1988년 국가관리로 넘어온 뒤 10개의 갑문과 방조제, 농경지 등을 농촌공사가 관리하고 있다. 몽리면적이 1190㏊에 달하는 데다 담수량도 1억3000만㎥로 풍부해 연간 쌀 생산량이 7100톤을 넘어서는 등 식량부족 해소에 크게 공헌해 왔다.

간척사업을 주도한 李南俊(1919년 02월 15일 ~ 1974년 04월 26일.)은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기업인, 정치인이다.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상만마을에서 태어났다. 제주공립농업학교(현 제주고등학교) 농과, 일본 메이지 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연합신문사 이사, 미군정 불하 공매환율 시정 추진위원 대표, 동양개발주식회사 사장, 중앙통신사 주간 등으로 활동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 중앙상임위원을 지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서예가 손재형씨에 밀려 탈락하였다.

주민들은 “당시에는 농업식량의 획기적인 개선을 이룬 진도창군 이래 대공사였다.”면서 세월에 흔적이 빛바랜 듯하여 안타깝다며 공적비를 이전 새롭게 단장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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