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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영 교수의 「’왜덕산‘ 유감」에 대하여
 이세영 교수의 「’왜덕산‘ 유감」에 대하여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3.22 10: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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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주 언 (진도문화원장)

「藝鄕진도신문」 2023년 2월 22일자 2면 1/2을 차지한 상단기사는 ‘이세영 한신대학교 한국사학과 명예교수’의 「‘왜덕산’ 유감」이라는 기고문이다.

내용은, ‘반세기 동안 역사를 연구해 온 필자가 2020년 말 이래 고향인 진도에 돌아와서 살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진도의 역사를 말하고 쓰는 사람들(이른바 향토사학자)이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얘기(전설)나 이름(성명, 지명 등)을 사실(事實)의 여부(與否)를 따지지 않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얘기하고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로 시작하여, 2023년 2월 17일 이세영(한신대학교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진도중학교 23회 졸업. 현재 고군면 도론리 거주)씀 을 마지막 문장으로 끝낸다. 교수 신분을 확실히 강조했다.

<요약>

기고문의 2/3 정도는 역사강좌로 이어졌다. -역사학의 시조(始祖)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역사는 전해 들은 것(傳聞)을 쓰는 것이다’라고 했던 ’역사‘를 지금까지도 붙들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사실(史實) 사적(史蹟)을 새로 만들기까지 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창세기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고 쓰여 있다. 근래의 유전학자 언어학자들은 ’인간은 18만년 전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하 6줄 생략, –중국에서는 기원전 11세기부터 한자(갑골문자)를 쓰기 시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잘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세종임금 때에 비로소 한글을 만들었다. 이하 5줄 생략, -지금 남아있는 역사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시대의 다음 시대인 고려시대의 김부식(金富軾, 1075~1151) 등이 고려 인종 23년(1145)에 편찬했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이다. 그런데 역사학계에서는 지금까지도 『삼국사기(三國史記)』 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史實)의 사실(事實) 여부를 놓고 논쟁 중이다.

-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의 첫 번째 의미는 ‘과거의 일(事) 자체’를 말한다. 여기서 일(事)은-이하 17줄 생략- 기고자는 역사의 두 번째 의미와 세 번째 의미를 나열하면서 ‘올바른 역사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사실(史實)을 사실(事實)로 환원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원문 1>

- 왜덕산에 대해서는 미리 언급되었지만 역사강의가 끝날 무렵 문제가 제기되었다. -2003년 박주언이 당시 내동리 이장 이기수씨의 말(명량해전 때 전사한 일본 수군의 시신들이 내동리 앞바다로 떠내려오자 인근 마을 사람들이 그 시신들을 거두어서 묻어줌으로써 큰 덕을 베풀었다고 해서 왜덕산이라고 했다)을 듣고 그 산을 왜덕산으로 지칭하면서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마추어 역사학자라도 그 산의 실체를 확인하려고 할 때는 여러 사람의 구술(口述)을 크로스체크하거나 발굴해서 시신과 유물들을 분석하는 법인데 박주언은 그렇지 않고 마치 월척을 건 낚시꾼(『임진 정유왜란과 진도 진도민』 164쪽)의 들뜬 기분으로 이기수씨의 말만을 확신해 버렸다.

사죄문을 발표하는 하토야마 전일본총리

<기고에 대한 지적 1>

이세영 교수는, 왜덕산에 대한 조사접근방법을 제시했다. -발굴해서, 시신과 유물들을 분석하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법이라 생각된다. 이 교수는 연구실이든 자기 집 골방이든 이런 일이 생기면 차분하게 발굴계획을 세우고 유물들을 분석하는 일에 착수할 것이다. 대개 발굴은 박물관 수준에 의뢰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예산도 만만치 않게 투입되고 시신과 유물을 분석하는 작업도 팀으로 관리한다. 그러나 작업을 의뢰하면서 예산신청을 상급기관에 해야 하고 따라서 올해 예산이 안되면 내년 예산으로 신청하겠지만 내년 사업도 제외될 수가 있다. 발굴기사는 언제 쓸 것인가?

또 이 교수는 이걸 알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취재 파트에 종사하는 직업인들은 24시간 비상 대기 상태이다. 만약 왜덕산 같은 경우 이 교수가 기자 신분으로 취재하여 데스크에게 보고 할 때 ‘현장발굴을 거쳐 시신이나 유물분석 후 기사를 쓰겠다’ 하면 이 교수는 그 자리에 서 사표를 쓰게 된다. 한마디의 질문도 허용되지 않는다. 데스크가 볼 때 말을 섞을 상대 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문 2>

-그리고 2022년 9월 23~24일에 진도문화원(왜덕산 보존위원회) (원장 박주언)은 진도군청의 후원하에 한국 일본의 정계 학계의 유명인들을 초청하여 「제1회 왜덕산 국제심포에스타」를 개최하고 ‘왜덕산’의 일본 수군 공동무덤 앞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그리고 ‘한일간의 화해와 인류평화를 추구하는 진도의 왜덕산 정신에 동의하는 왜덕산 사람들’(『진도문화』 2021. 가을 제107호 3쪽)은 앞으로도 계속 교토 코무덤과 왜덕산 공동무덤에 위령제를 지냄으로써 한일간의 화해와 세계평화를 이룩하자고 했다.

그런데 박주언 원장은 그 행사를 준비하면서부터 진도문화원 안으로부터, 그리고 많은 군민들로부터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 그것은 ‘일본은 지난 두 번의 침탈에 대해 지금까지도 진정성 있는 반성이나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고 있는데 위령제를 지내준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라는 것이었다. 행사 이후에 그 파장도 만만치 않았다. 진도문화원 주변 대부분의 인사들은 박주언 원장을 친일파로 의심까지 하고 있고, 국민의 혈세를 유용하고 있는 진도군청을 성토하고 있다.-

<지적 2>

이세영 교수의 기고문은 위 부분이 왜덕산‘유감’의 중심내용인 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이 교수는 결정적 실수를 범했다. 행사의 핵심 부분을 취재하지 않고 기고의 글을 쓴 것이다. 짚어줄 수밖에 없다. 이세영 교수는 신문 1/2면을 채우는 긴 글을 쓸 때는 무엇보다도 독자들에게 왜덕산 유래와 행사내용을 정확히 알리면서 문제점을 지적했어야 옳은 자세 였다. 그럼에도 ‘역사학 강의?’로 많은 부분을 채우다 보니 무슨 행사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사 취재 내지는 파악을 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글을 썼으니 이세영 교수에 걸맞지 않은 내용이 되고 말았다. 이 교수는 기고문을 쓰면서 행사를 주관한 박주언 진도문화원장에게 와서 내용을 제대로 파악했어야 좋았다. 우선 이 교수가 국제학술회의장이나 왜덕산 위령제 현장에 참석했는지 궁금하다.

이제 뒤늦게나마 보충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본 행사 ‘제1회 왜덕산 심포에스타 및 왜덕산 위령제’는 진도문화원 주최로 진도군, 진도문화원, 교토평화회, 왜덕산보존회가 주관하고 진도군, 전남도, 외교부, 전남문화원연합회가 후원했다. 진도문화원장 박주언은 행사의 기본을 누구보다도 이세영 교수에게 설명해야겠다. 위에서 ‘일본은 지난 두 번의 침탈에 대해 지금까지도 진정성 있는 반성이나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고 있는데 위령제를 지내준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라는 것 때문에 박주언 원장은 행사를 준비하면서부터 문화원 안으로부터 또 많은 군민들로부터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왜덕산에서의 위령제는 일본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와 아마기 나오토 전 외교관 그리고 칸이치 현 시의원이 와서 각자 사죄의 추모사를 바쳤다. 임진왜란 이후 처음으로, 진도문화원이 일본의 대표성 있는 정치인들을 불러 합동으로 사죄를 하게 한 행사였다. 그들은 각자 울먹이며 한·일간 과거 역사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이렇게 하는 행사주관자를 ‘친일파’라 한다면 그런 사람은 ‘토착 왜구’일 것이 분명하다. 행사내용도 모르고, 행사장에 오지도 않고, 행사 주관측을 만나보지도 않고 외곽에 몇이 모여 ‘군민들’을 팔아가며 여론을 선동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진도의 불행의 씨앗이겠다.

게다가 ‘국민의 혈세를 유용한 진도군청을 성토한다’고 했다. 민선 제8기 김희수 군수가 취임 3개월도 안 되는데 처음으로 여는 국제행사를 축하는 못할망정, 신문에 광고를 내고 진도군청을 성토한다니, 신바람 내야 할 새 군수의 군정 의욕을 힘 팡 지게 할까 걱정된다.

이 교수가 마지막으로 지적한 왜덕산의 고고학적 발굴사업은 좀 더 범위를 넓혀 둔전만으로부터 오류만, 벽파 연동만, 원포 벌포까지 작업이 필요하다. 다만 앞으로 전남이 세계에 자랑할 것은 진도의 왜덕산 정신이겠다. 진도사람들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적군의 시체도 안장해준 사람들이다. 시체는 이제 적이 아니라 식어버린 생명체일 뿐이다. 언젠가 진도는 세계에 생명의 땅으로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진도의 생명 운동은 왜덕산과 교토 코무덤을 하나로 묶는 구상이 필요하다. 코무덤에서 가까운 기욘거리의 세계 젊은이들, 년 3천만 교토관광객 가운데 일부를 진도로, 왜덕산으로 이동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이번에 왔던 아마기 나오토 교토평화회회장에게 부탁한 것은 코무덤 공원을 코무덤 전용 행사장으로 사용토록 교토시의 허가를 받는 일이었다. 이러한 사업을 위해 우리는 MOU를 체결했다.

<맺음>

모든 일은 잘 안될 수도 있고 잘 될 수도 있는데, 항상 웃으면 더 잘 될 수 있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면 쉽게 웃을 수 있다.

“이 교수! 이제부터 좀 더 큰 우리와 진도를 위해서 날마다 많이 웃어 봅시다!”

2023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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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 2023-03-24 12:43:41
박주언 원장님은 아직까지도 '왜덕산 유감' 글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학술대회나 위령제에 앞서 '왜덕산의 일본 수군 공동무덤'이 역사적 사실(事實)인지를 발굴을 통해서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그런 행사를 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 날조해서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것(曲學阿世)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진도문화원장이 그러시면 되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