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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 교수의 왜덕산‘반박글’에 대하여   진도문화원장 박주언
이세영 교수의 왜덕산‘반박글’에 대하여   진도문화원장 박주언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4.1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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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 교수는 지난 3월 24일, <예향진도신문에 게재하신 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반박글을 댓글로 올렸습니다> 라는 내용을 예향진도신문 전자판에 올리고 나서 필자의 e-메일로 보냈다.

‘박주언 원장님은 아직까지도 ‘왜덕산 유감’ 글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학술대회나 위령제에 앞서 ‘왜덕산의 일본수군 공동무덤’이 역사적 사실(事實)인지를 발굴을 통해서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그런 행사를 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 날조해서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것(曲學阿世)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진도문화원장이 그러시면 되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시길 바랍니다. 이번 원장님의 글을 보고 주제 넘게 한 말씀 드립니다.

“문화원장 직을 사퇴하시기를 권고드립니다”

 

지난 3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제주도에서는 들불축제가 있었다. 원래 화산섬인 제주도라 들불축제의 상징성이 클 수밖에 없다. 37만 내지 40만 관광객 운집을 목표로 하는 제주도 대표축제는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삼성혈(三姓穴)에서 채화식을 가지면서 시작된다. 고(高), 양(梁), 부(夫) 3성의 시조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세 신인이 솟아 나왔다는 3개의 풀밭 구멍이다.

제주도에도 왜 역사학자가 없겠는가? 만약 이세영 교수처럼 ‘이곳을 발굴하여 3 성씨가 나왔는지를 증명한 뒤라야 축제를 할 수 있다’고 소리치고, 신문기사로 행사주관 측을 성토하고, 사실(事實)을 대라고 주장하는 역사학 교수가 있다면 제주도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

이 교수는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에 등장하는 뽕할머니와 영등할머니 이야기를 포함한 전국 축제의 설화적 전설적 스토리를 모두 조사하여, 그 사실(事實)을 ‘발굴 증명’하는 ‘이세영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 앞장서 투쟁할 의향이 있는가?

필자는 2020년 말께 내려온 이 교수의 귀향을 누구보다도 환영했다. 2000년 9월 1일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제10회 학술심포지엄(주제: 진도문화의 국제적 이해) 때 출범시킨 ‘진도학회’ 회장직을 이세영 교수에게 맡길 욕심에서 환영했다. 전국 군 단위로는 유일한 진도학회(珍島學會)와 진도학(珍島學)이다.

전경수 교수(서울대 문화인류학)가 12년을, 나경수 교수(전남대 국어교육학, 민속학)가 10여 년을 맡아 이제는 역사학 연구자가 진도학회를 맡으면 좋겠다 싶을 때 한신대 한국사학과 이세영 명예교수가 내려왔으니 적시에 매우 잘된 일이라 생각되었다.

몇 차례 권유와 상당기간을 기다린 끝에 그이로부터 수락을 받고, 이 사실을 바로 전경수 전 회장, 나경수 현 회장에게 자랑스럽게 알렸다. 몇 분에게도 진도학회 회장직을 이 교수가 수락했음을 전했다. 모두들 환영했다. 그런데 며칠 뒤 이세영 교수는 그 결정을 거두어버렸다. 확실한 해명도 없었다.

또 그는 2022년 9월 23일의 제1회 왜덕산 심포에스타 토론을 수락했다가 행사 직전 거절하여 주관 측을 당황케 했다.

또한 한국학 호남진흥원이 지원하는 학술회의에서 이세영 교수가 원고료를 반납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이세영 교수는 명언을 남겼다.

“-원고료를 적게 받았다고 반납한 것이 아닙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생선장사도 생선 길이가 같다고 해서나 무게가 같다고 해서 같은 가격으로 팔지는 않습니다. 생선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 않습니까?’ 원고의 양이 같다고 질도 같지는 않습니다. 이런 최소한의 상식이나 기준도 무시하고 연구자나 학자를 대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프로메테우스의 침대의 의미를 아실 줄 압니다. 저는 단언하건대 원장님이나 주위의 지인들이 쓰는 (그러한?)글을 쓰는 글쟁이가 아닙니다. 앞으로 문화원에서 부탁하는 글을 쓰지 않겠습니다”

이 문자를 2022년 12월 12일 밤 11시 30분에 핸드폰으로 보내왔다. ‘이세영 교수 원고료 반납사건’에 따른 ‘원고료 생선가격 기준’은 한국의 학계에 재밌는 뉴스가 될 듯싶다. 한국학 호남진흥원 측에는 원고료 반납 경위를 진도문화원이 해명할 계획이다. 한국학 호남진흥원 사업은 문화원장이 발표료나 원고료를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초 계획부터 지급액이 정해져 내려온다. 대부분의 학술발표 원고료는 발표자가 누구이든 통일성을 지닌다. 따라서 연구기관이나 학회에서 주관하는 학술회의 원고료를 문제 삼는 발표자는 없는 편인데, 이세영 교수는 그 원고료가 반납하지 않을 수 없는 낮은 금액이라 믿어졌던 모양이다. 생선으로 치자면 갈치나 멸치 취급 쯤으로 생각되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필자는 어떤 행사에서는, 이세영 교수의 발표를 의도적으로 제외시켰다. ‘전남행복대학 남도학 강좌’와 같은 경우이다. 발표자들은 진도 문화인류학 연구 50년(동경대 이토 명예교수), 진도 문화인류학 연구 47년(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 진도 음악인류학 연구 42년(박미경 계명대 명예교수), 진도 역사학 연구 38년(이해준 공주대 명예교수), 나경수 교수, 이윤선 교수, 김희태 김현숙 전남도 문화재위원 등에 비하면 이세영 교수는 진도 출신이지만 진도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실적이나 과정이 거의 없어 발표자로 내세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단언한 필자 박주언과 주위의 지인들로 진도학회 학술회의 발표집에 발표 및 토론자로 자주 또는 가끔 등장하는 글쟁이(?)는 매우 많다. 런던大 키이스 하워드 교수(문화인류학)도 50년 되어가는 진도 연구자이다. 최근에는 미네소타大 유경수 교수가 『진도문화』에 글을 올렸다. 가와카미 신지 교수(가나자와大 종교인류학), 야스다 히로미 교수(교토 문교大 경제인류학), 이케다 교수(류큐大 해양고고학) 등 일본의 진도 연구자들도 많다. ‘진도!’ 하면 즉시 떠오르는 국내외 진도 연구자들은 손가락이 부족하다. 이세영 교수가 말하는 필자 주변의 <글쟁이들> 이다

 

‘반박글’에 이어서 이 교수는 3월 30일 ‘왜덕산’ 유감(2)를 같은 e-메일에 올렸다. 따라서 필자는 위의 2건의 내용에 대해 뭔가 대꾸할 필요나 부분적으로 묵살할 것을 생각하면서, ‘이세영’이라는 한 인간이 객관적 또는 주관적 연구대상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교수의 ‘왜덕산’ 유감(2) 4쪽은 “끝으로 진도문화원장 박주언과 군청에 바란다. 박 원장은 ‘산 162번지의 무덤’발굴을 왜 거부하는지를 공개적으로 대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군청은 ‘산 162번지의 무덤’ 발굴 계획을 가까운 시일 안에 밝히기를 바란다.’고 했다. 필자에 해당되는 것을 답변하겠다. 1) ‘왜덕산의 일본수군 공동무덤’이 역사적 사실(事實)인지를 발굴을 통해서 증명하는 작업은 박주언의 권한이나 소관이 아니고, 2) 왜덕산 발굴을 거부한 일이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대답한다.

 

필자는 이세영 교수의 역사관 즉 고증 가능한 역사적 사실만을 받아들이는 근대 역사학계의 실증주의 사관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이 이 실증주의 역사관으로 우리의 단군신화를 부정하고 그로 인해 단군조선을 부정해온 사실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친일사학자 이병도를 위시한 강단사학자들의 후예들은 여전히 이러한 우를 범하면서 대학강단을 장악하고 있다.

 

이 교수는 첫 번째 신문기사 ‘왜덕산’ 유감에서 ‘아직도 일본은 두 차례 침략에 대해 반성이나 사죄를 하지 않고 있는데 무슨 위령제냐?’고 지적했다. 그런데 9월 24일의 왜덕산 위령제는, 임진왜란 이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진도문화원이 일본의 대표성 있는 정치인들을 불러 합동으로 사죄를 받은 행사였다.

이 자리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일본은 식민지 지배 아래서 상처받은 분들이 더 이상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때까지 사과의 마음을 계속 갖는 무한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고 했다. 또 아마기 나오토 전 주 레바논 일본대사는 “교토 평화회 회장으로서 진도문화원과 MOU를 체결하고 교토 코무덤에서 왜덕산 정신을 일본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평화 위령제를 거행할 계획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각자 울먹이며 한·일간 과거 역사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위령제는 일본 정계인사들이 왜덕산에 묻힌 명량해전 전사 일본수군들을 위령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그래서 적군의 시신을 묻어준데 대한 ‘감사와 사죄의 추모’를 바치는 위령제로 짜여진 행사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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