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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원님의 언로(言路)는 열려있을까?
진도 원님의 언로(言路)는 열려있을까?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5.1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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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게시판 민원글을 보고 -

전제군주(專制君主)시대의 왕은 권력의 최고정점에 있다. 그러나 임금과 백성들의 민생 정보 사이에는 실무를 담당하는 신하인 관리가 있다. 관리가 백성의 각종 정보를 왕에게 보고하지 않으면 임금은 인의 장막에 갇혀 민생을 알 길이 없다.

이때 백성들은 억울함을 직접 최고 권력자에게 호소하는 제도가 조선시대에 북을 쳐서 억울함을 알리는 ‘신문고(申聞鼓)’, 글을 직접 써서 올리는 ‘상언(上言)’, 임금의 행차시에 가마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가전상언(駕前上言)’과 ‘가전격쟁(駕前擊錚)’, 궁궐 문으로 들어가 징을 울리는 ‘격쟁(擊錚)’ 등이 있었다.

 

신문고(申聞鼓), 상언(上言), 격쟁(擊錚)

신문고제도는 조선 태종 때 개인적 상소사건, 사회적 청원사건, 국가적 고발사건 등을 다양하게 상달하는 ‘언론제도’였지만, 세종 2년부터 개인적 원억(冤抑 누명을써서 원통하고 답답함)문제를 주로 해결하는 사법제도로 전락하였다.

원래의 설치목적은 ‘억울한 일이 있으나 고(告)할 때 없는 일반백성’들에게 그들의 하정(下情 아랫사람들의 사정)을 상달(上達)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건국 초기 무질서한 가전상언(駕前上言)이나 월소직정(越訴直呈:소송의 제도 단계를 뛰어 넘어 곧바로 상급기관에 호소함)의 폐단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활용되었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 가전격쟁(駕前擊錚)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왕은 행차를 멈추고 백성의 억울함을 들어주고 풀어주는 극적 반전의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현실세계에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꿈같은 일이다.

조선시대에 백성들이 억울함을 마지막으로 국왕에게 호소 할 수 있었던 이러한 제도는 과연 철저한 신분제도나 계급제도 하에서 평민이나 천민들이 억울함을 관에 호소하면 이를 국왕은 해결하였을까?

 

신속한 해결을 위한 조사 보고기일이 5일

억울한 사연이 있는 사람은 일차적으로 자기가 사는 지역의 관공서에 호소하고, 여기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음으로 사헌부(司憲府)에 호소하고, 사헌부에서도 그 사연을 다루지 않으면 마지막 수단으로 국왕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 국왕에게 보고된 상언(上言)들은 승정원(承政院,국왕의 비서실, 현 대통령제에서 대통령비서실에 해당함)을 통해 관공서에 보내 조사하여 다시 보고하게 하였는데 보고 기일이 5일을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

5일의 기한에 대한 의미는 국왕이 백성의 억울함을 신속하게 해결해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인 왕은 신하들이 백성들의 민의(民意)를 막고 조작과 방해가 가능한 구조여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민본(民本)과 덕치(德治), 공론(公論)

기록에 의하면, 임금의 행차는 힘없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직접 호소하는 기회였다. <중종실록 4년(1509) 9월 10일>어가(御駕) 앞에서 상언(上言)한 사람이 1백 43인이나 되었다. <정조실록 10년(1786) 2월 26일> 어가가 행차하는 도중에 올린 상언(上言) 1백50여 통을 판결하여 처리하였다. 고 되어있다.

조선왕조는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다는 ‘민본(民本)사상’과 신민들을 덕으로 다스린다는 ‘덕치(德治)사상’과 여론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는 ‘공론(公論) 정치사상’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운 유교국가이다.

 

유치차격(有恥且格)

논어(論語) 〈위정(爲政)〉편 제3장을 보면,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공자가 말했다. “백성을 법률과 금령(禁令)으로 인도하고 형법으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이 없다. 백성을 덕(德)으로 인도(引導)하고 예(禮)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부끄러워(恥)할 줄 알고 선(善)함에 이를 것이다.

 

이 글귀에 대한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한 나라를 다스릴 때에 백성들을 법적 제도로써 강압적으로 제재하면 백성들이 법을 위반하지 않으려고만 하고 자신의 행동거지는 반성하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반면 군주와 관리들이 몸소 도덕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예절과 도덕으로써 교화하면 백성들이 위정자들이 먼저 보여주는 바를 보고 감동하여 따라하게 된다. 혹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스스로 수치로 여길 줄 알고 그러다보면 각자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게 된다.’

 

정치는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만드는 것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이는 덕치주의(德治主義)다. 중국의 고왕조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를 이상(理想)으로 하는 유학은 정치를 덕치(德治)로 파악하고, 이 덕치에 의한 현실의 이상화(理想化)를 추구하였고, 공자에 이르러 특히 강조되었다.

덕치주의의 핵심은 군주의 도덕적 정당성이다. 이 도덕적 정당성을 정치의 근원적인 힘으로 본다. 본래 유학에서 ‘정치는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만드는 것(政者正也 正其不正)’으로,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만들 수 있는 힘인 도덕적 정당성은 통치자에게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어느 촌노의 ‘진도 신문고’ 자유게시판 하소연

최근의 진도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민원성 글을 보면, 백성이 국가의 규율을 어기고 불의와 부정한 일로 인해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관청이 오히려 불의와 법규 위반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되었다. 민초들이 당당하게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지켜가는 사회가 건강한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힘이다.

어느 촌노(村老)의 글을 보면, 자기 마을 주변에 허가를 받아 설치한 사업에 대해 시행사업자가 시공상의 법규와 규정에 어긋난 행태를 발견하고 이를 바로 잡아 시정과 복구해 달라고 하는 민원을 수차례 제기 하였다. 이에 대해 관에서는 적법절차에 따라 시행한 사안으로 문제가 없다는 답변에 대해, 이에 불응한 민원인은 진도민들의 신문고(申聞鼓)라고 할 수 있는 진도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렸고 이에 대해 다수의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 공론화된 모습이다.

정의로운 사회의 목적이나 정의로운 국가의 목적은 정의로운 제도를 보존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5백년 조선왕조 시대에도 임금에게 상언(上言)된 민생 사안의 조사 보고 기일이 5일 이었다는데, 3년이나 된 일에 답이 없으니 또 올리고...

차전격쟁(車前擊錚)이라도 해야

맹자는 양혜왕 하편에 ‘여민동락(與民同樂)’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한다.’고 했다. 이 글귀는 군청 민원실에 가장 큰 액자로 걸려있다. 관청은 민생을 돌보고 동고동락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현대판 ‘진도 신문고’를 통해 바르게 잡아 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과 개인, 개인과 기관 등 수많은 이해충돌의 문제는 다양한 법과 제도에서 보장하고 이에 대한 이의제기는 각종 행정기관과 언론 등 각종 해결 방법이 현대 민주국가에는 존재한다. 그러나 고전적 방법으로 현 대한민국의 원님은 관용차(車)를 타고 행차하시니 차전격쟁(車前擊錚)이라도 하여 영화나 고전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드라마틱한 해결(?)을 모색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여민독고(與民獨苦), 이민독락(離民獨樂)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靑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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