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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서울 오가며 활동 한국화가 김양수"명상과 글을 하며 회화 작업… 고향에 무언가 기여하고 싶죠"
진도·서울 오가며 활동 한국화가 김양수"명상과 글을 하며 회화 작업… 고향에 무언가 기여하고 싶죠"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9.3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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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적 정신성 유지하며 이곳 작가들과 교류할 터40여년만에 고향 돌아와 ‘적염산방’서 작품 집중 마음 공부·아픔 공유 나서…‘선갤러리’ 개관 목표

서울과 진도는 400㎞가 넘는 먼 거리다. 그가 그토록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오가면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꾸려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진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고향에서 보냈다. 고교를 졸업한 뒤 상경했다. 그후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예술활동 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꾸려왔다. 그러다보니 광주·전남을 연고로 활동하는 고향의 예술가들과는 교분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이런 그가 40여년만에 다시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그 주인공은 한국화가 일휴 김양수씨(59). 그는 고향인 전남 진도군 임회면 용호리 여귀산 자락에 ‘고요를 잡는다’라는 의미의 ‘적염산방’(寂拈山房)이라는 작업실을 구축 중에 있다.김 작가는 지역에서 생소한 화가다. 단 한번도 그의 글을 작성해보지 못했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아는 화가도 없다는 반응이다. 그가 진도 출신으로 서울과 고향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을 펼친다는 제보가 있어 그에게 연락을 취했고, 진도와 서울 혹은 서울과 진도 오가는 사이에 광주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했다. 이런 그를 지난 11월9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정보가 없던 터라 처음부터 진지하게 하나 하나 물을 수밖에 없었다.그가 서울로 올라간 것은 진도실고를 졸업한 후였다. 유년시절에는 화가를 모른 채 막연하게 화가를 꿈꾸었다. 그냥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았던 것이다. 장래희망은 무조건 화가라고 명기했을 정도로 화가에 대한 꿈은 분명했다. 중학교 때는 습자지와 스케치북에 그린데 이어 고등학교 때는 캘린더 그림을 보고 똑같이 베끼는 과정을 밟게 된다. 중·고등학교에 미술부가 없어 어디에 소속될 수는 없었고, 거의 혼자 그림을 그리다시피 해야 했다. 당시 전남 진도의 화단 분위기는 남농 허건과 의재 허백련, 그리고 아산 조방원 선생의 화맥으로 내려오는 도제식 교육이었다. 김 작가는 다행스럽게 동국대학교 미술대학에 들어가 정규 과정의 미술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동양화를 전공하게된 이면에는 고향 진도가 동양화가들이 많은데다 정서적으로 서양화보다는 동양 화가 더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풍토적인 영향을 받은 점도 부인하지 않았다. "채색화 등 다양한 학습과정을 거쳤죠. 어느 것이 맞을까 했는데 수묵화가 맞았습니다. 그래서 정신성을 추구하는 문인화풍의 선화를 작업하게 됐지요. 학교가 불교대학이어서 더더욱 선화를 추구하게 됐습니다. 선화는 구도가 간결해야 하고, 군더더기가 없어야 하죠. 직관의 세계를 담아내는 한편, 불필요한 것이 없어야 하며 지나치게 자족적이어도 안되지요. 사유할 수 있는 힘을 안겨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이런 생각을 들려주던 그는 한참 동양화와 서양화에 대해 설명했다. 서양화는 눈에 보이는 형상을 중시하는 등 현상계를 대개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동양화는 드러나지 않는 너머의 정신을 중요시한다며 서양화가 아버지 문화이고, 동양화가 어머니 문화라고 정리해 들려준다. 또 서양화는 채색을 강렬하게 해 욕망을 부추기고, 동양화는 색채를 절제시켜 욕망을 가라앉게 한다는 점 역시 잊지 않았다.작가는 그동안 동국대와 성신여대에 출강하며 개인전 30회와 국내외 단체전 100여회를 열었다. 올 여름 광주는 아니지만 구례 화엄사 성보박물관에서 ‘무진법문’(無盡法門)이라는 타이틀로 전시를 열었다. 고향에서 개인전을 많이 열지는 못했으나 그는 ‘한 자루 붓으로 세상에 한 획을 그었던 소치 허련 선생이 50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가슴에 품은 예술을 불태운 자리 그 혼불의 언저리에서 나 또한 뜨거운 꿈을 꾼다’고 밝힌다. 여기에 그가 고향 진도로 향하는 마음이 그대로 노정된다. "소치 선생이 혼자 장례 후 그때 50살이었는데 진도에 내려가 ‘운림산방’을 내서 작업을 하다 86세에 별세를 했습니다. 진도에 내려가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숨도 고르며 깊이있게 작업을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고향으로 이끌었습니다. 제도권 미술을 멀리하고 독립군처럼 활동을 펼쳐왔어요. 미술단체 등도 작업 시간이 아까워 멀리 해왔으니까 적막한 고향이지만 저만의 작업과 일상을 무리없이 꾸릴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작업 목표도 이뤄갈 수 있겠죠,"그는 작업실이 진행중이지만 다 지어지면 은둔자적 삶을 살아갈 각오를 내비친다. 작업만 하겠다는 각오다. 현재 수묵을 주로 작업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컬러색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수묵에 채색을 입혀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선적인 정신성을 유지하면서 이곳 작가들과도 인연이 닿으면 교류해 나갈 생각이다. "제가 진도에 내려가는 한 가지 이유는 진도에서 가장 오지 중 오지인 곳에서 작품을 하면서 명상을 하고 글을 쓰기 위한 것이죠. 시화집 4권도 출간했습니다.몸이 멍들면 병원 치료가 가능하지만 마음이 병들면 모르고 살아가죠.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같이 그들의 아픔을 나누고 싶어요. 그림과 명상, 차, 그리고 뒷산 힐링로드에서 산책하는 등 이를 통해 교감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아울러 고향에 머물며 무언가 기여하고 싶습니다."그는 앞으로 고향 작업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밑그림을 모두 그려놓고 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시도 지으며 명상을 해나가는 동시에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그 아픔을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갤러리’를 하나 만들어 보고픈 꿈이 있다. "선갤러리에 중국과 일본, 유럽 등의 관련 작가들을 초청해 전시를 열고 싶고, 진도국립국악원 같은 곳을 통해 그들에게 진도 씻김굿 등 국악도 알리면서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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