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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회오리 바다는 진도의 아픔을 알까?
핏빛 회오리 바다는 진도의 아픔을 알까?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9.3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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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진다. 회광반촉. 핏빛 회오리 바다는 진도의 아픔을 알까? 기사의 사진영화 ‘명량’의 무대로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이 벌어졌던 전남 진도의 울돌목이 저녁노을에 핏빛으로 물들고 있다. 진도와 해남을 연결하는 진도대교 아래에 위치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태양 속에서 큰 칼을 빼들고 회오리 바다로 유명한 울돌목을 향해 진격 명령을 내리는 모습이 장엄하게 다가선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후 진도의 민초들은 어떻게 됐을까? 승리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진도 민초들은 이순신 장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왜적들에게 보복 살육을 당한다. 삼별초의 대몽항쟁 등 역사의 전환기마다 애꿎은 피해를 본 진도 민초들…. 그날의 아픔을 울돌목도 기억하고 있음일까. 영화 ‘명량’의 무대인 울돌목의 하늘과 바다가 핏빛으로 물든다.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다.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이순신의 ‘난중일기’ 중에서)

 

명량해전을 하루 앞둔 1597년 9월 15일(음력). 진도 벽파진에서 조수를 타고 해남 전라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긴 충무공 이순신은 두 달 전 원균이 지휘한 거제 칠천량해전에서 참패한 조선수군들에게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라는 명언을 남긴다. 토사곽란으로 심신이 지친데다 왜선들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첩보를 접한 직후였다.

결전의 그날은 맑았다. 쪽빛 가을 하늘은 더없이 높았고 울돌목 바다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영화 ‘명량’의 한 장면처럼 왜선 130여 척이 밀물을 동력삼아 해남 어란포에서 진도 울돌목을 향해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순식간에 이순신 장군의 지휘함이 왜선들에 의해 겹겹이 포위됐다.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은 화포와 화살을 비오듯 쏘며 때를 기다렸다.

정오쯤 됐을까. 순간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밀물과 썰물 사이의 정조(停潮) 시간대였다. 이어 바닷물이 맹렬한 기세로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놀란 왜선들이 썰물에 밀리다 회오리 물살을 만나 좌충우돌 서로 뒤엉켰다. 기다렸다는 듯 이순신의 장군의 판옥선이 빗발치듯 불을 뿜었다. 이순신 장군은 바다에 떨어진 적장 마다시의 시신을 끌어올린 후 목을 잘라 적들의 기세를 꺾었다.

4∼5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왜선 31척을 격침시킨 이순신 장군은 그날 밤 신안 당사도에서 쓴 난중일기에서 “이번 일은 실로 천행”이라고 기록했다. 배설이 칠천량해전에서 빼돌린 열두 척과 김억추와 안위가 끌고 온 한 척 등 13척의 판옥선과 오합지졸 조선수군을 이끌고 왜선 133척을 물리친 전과는 천행 중 천행이었다. 그러나 명랑해전의 승리가 과연 하늘이 도운 천행 때문이었을까.

명량해전의 승리는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과 울돌목의 조류를 전술에 활용한 이순신 장군의 혜안 덕분이었다. 그러나 명량해전의 진짜 승인은 목숨을 걸고 음으로 양으로 조선수군을 도운 진도 민초들의 우국충정이 비장의 무기로 작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도의 관문인 울돌목은 해남군 문내면 학동과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에 위치한 1.5㎞ 길이의 좁은 해협으로 폭이 가장 좁은 곳은 300m 정도이다. 이 해협을 통과해야 서해와 남해로 갈 수 있어 울돌목은 사실상 서해와 남해의 경계나 마찬가지인 전략적 요충지이다. 울돌목은 말 그대로 물이 돌면서 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 풀어쓰면 명량(鳴梁)이다.

울돌목의 조류 흐름은 쌍둥이 다리인 진도대교 남단의 다리 밑에서 볼 때 더욱 생생하다. 사리 때는 좁은 수로를 통과하는 조류의 속도는 최고 12노트(시속 24㎞)로 물 속의 암초에 부딪쳐 회오리를 일으키며 내는 소리가 20리 밖에서도 들릴 정도라고 한다. 세상을 삼켜버릴 듯 회오리를 일으키며 흐르는 조류는 시험조류발전소가 위치한 피섬 근처에서 잔잔해진다. 피섬은 왜군의 피로 물들었다는 작은 무인도로 완도에도 바위색깔이 붉어 피섬으로 불리는 무인도가 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17일이나 진을 쳤던 벽파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비석인 ‘이충무공 벽파진 전척비’가 홀로 우뚝 서서 그날의 바다를 지켜보고 있다. 진도군민의 성금으로 건립한 전척비에는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로 시작되는 노산 이은상의 글이 눈길을 끈다. 글씨는 진도 출신 서예가인 소전 손재형 선생의 작품으로 같은 글자가 한 자도 없다는 명필이다.

 

고군면 도평리에 위치한 정유재란 순절묘역은 진도 민초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후 신안 당사도로 후퇴하자 왜군의 주력부대는 진도에 상륙해 이순신을 도왔다는 이유로 수많은 진도 사람들을 살육한다. 야트막한 언덕에는 명량해전 때 전사한 조선수군과 민초들의 이름 없는 무덤 230여기가 찾는 사람 없어 더욱 쓸쓸하다. 고군면 내동리의 왜덕산에도 이름 없는 사람들의 무덤 100여기가 방초에 묻혀있다. 명량해전에서 전사한 왜적들의 시신이 떠내려 오자 마을 사람들이 수습해 무덤을 만들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으로 진도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씨를 엿보게 한다. 왜덕산은 왜군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뜻이다.

저녁노을에 붉게 물든 울돌목이 그날처럼 핏빛으로 물들면 진도대교 남단의 나지막한 망금산 정상에 위치한 배 모양의 진도타워가 불을 밝힌다. 지난해 개관한 지상 7층 높이의 진도타워는 울돌목은 물론 진도와 해남 일대가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명소이다. 특히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진도대교와 세방낙조로 유명한 가사군도의 저녁노을은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서정적 풍경을 그린다.

417년 전 그날처럼 울돌목의 하루가 저문다. 보복 살육을 당한 진도 민초들의 원한과 세월호의 아픔을 상징하듯 울돌목의 하늘과 바다가 핏빛으로 채색된다. 진도대교 너머로 낙하하던 태양이 수평선과 입맞춤을 하기 직전 이순신 장군 동상 뒤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순간 비장한 표정으로 큰칼 옆에 찬 이순신 장군이 화염처럼 붉은 태양 속에서 울돌목을 향해 진격 명령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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