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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서화평론-소치 허련의 일속산방도
조선시대의 서화평론-소치 허련의 일속산방도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6.0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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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련 일속산방도

소치 허련의 일속산방도 누군가를 진정으로 인품을 사모해보았는가. 그의 일상은 어떻게 지내며 집에는 무엇을 키우고 있는가.

허련(許鍊)이 그린『일속산방도(一粟山房圖)』란 그림이다. 그는 진도(珍島)에서 허각(許珏)의 5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32세 때 초의선사(草衣禪師)의 소개로 서화를 김정희(金正喜)에게 보였다가, 작품의 솜씨에 감복한 김정희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갔다. 그는 한양에 머물면서 김정희의 문하생이 되어 사사(師事)를 받았다.

1840년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되자 해남까지 배웅하였고, 이듬해 제주도로 건너가 서화수업을 받았다. 1843년 제주목사 이용현(李容鉉)의 도움으로 김정희의 적거지를 왕래하며 서화를 익혔다. 1847년 3번째 제주도를 방문하여 스승 김정희를 찾아뵈었다.

1856년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 진도로 낙향하여 운린산방(雲林山房)을 짓고 정주하였다. 1877년 70세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을 만났으며, 대원군은 그를 두고 평생에 맺은 인연이 난초처럼 향기롭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스승의 글씨를 따라 화제에 흔히 추사체(秋史體)를 썼다. 이 그림은 그가 45세 때 정약용(丁若鏞)의 제자인 치원(巵園) 황상(黃裳)에게 선물로 그려준 황상의 별서인 일속산방(一粟山房)의 실경산수화이다. 소치(小癡) ‧ 다산(茶山) ‧ 초의(草衣) 3사람의 정성으로 그렸고, 대체로 인격이 고매하고 학문이 깊은 사대부가 여기(餘技)로 수묵과 담채(淡彩)를 사용하여 그린 간일(簡逸)하고 온화하다.

그림에 대가인 그가 일속산방을 방문하지 아니하고, 초의선사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그렸다. 황상이 기거한 백적산(白蹟山) 산중의 전원적 삶이 선비정신과 스승 정약용에 대한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준 인품의 큰 감동이 진하게 녹아있다. 그림 내용은 집을 빙 둘러 에워싼 산자락에 나무 울타리가 있고, 그 안에 3채의 집이 있다. 그리고 집 왼쪽 위편골짜기에 다시 한 채의 작은 집이 보인다. 이 한 채의 집이 일속산방이다. 그는 초의선사가 그림에서는 스승이니 한번 보여드리니 초의선사가 조금 수정하고 바로잡았다고 기록했다. ▶허련(許鍊)의『일속산방도』에 화제를 씀一粟山房圖, 爲巵園先生雅敎, 癸丑慕春之晦. 小癡 作 草衣 訂. 황상의 별서인『일속산방도』이다. 황상을 위해서 교시한다. 1853년(철종 4) 3월 30일 허련이 그렸으며, 초의선사가 바로 잡아서 고치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과 개인의 경험이 다르다면, 우리는 같은 말을 한다 해도 서로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21세기 한국의 건물 숲속에서도 우리는 사자들을 만난다.

일속암 가운데서 노래가 한창인데 노래하는 사람은 치원 황상이라네.

치자는 동산 가득 꽃 또한 활짝 펴도 검은 얼굴 잿빛 머리 마음 어이 향기에 두리.

스승께서 내 호 지음 이제야 깨닫나니 내 촌스러움 걱정하여 본받게 하신 걸세.

서리에도 변치 않고 눈 속에도 푸르거니 재목감이 못 되어서 새김과 찍힘 받지 않지.

열 송이 꽃, 씨도 열 개 헛된 꽃이 없느니 말을 실천함과 같아 즐거워할 만하다.

꽃은 흰빛 지키고 씨 속은 노래서 자주색 녹색도 아니요 중간의 탁한 빛깔.

이런 말 없는 스승을 이미 알게 되었으니 옷깃 여며 어이해 척박한 땅에 두리.

간직하여 노닐면서 열심히 애를 쓰니 누가 내게 천금의 빗자루가 있음 알랴.

예로부터 스승의 가르침 많기도 하다마는 그 누가 세상 뜨신 뒤까지 법도를 갖추리오.  "내 스승이신 다산 선생님은 여기 강진에 귀양오셔서 20년 가까이 지내셨네. 그 세월 동안 매일 책을 읽고 쓰시고 하시느라 방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구멍이 세번이나 났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三勤)의 가르침을 내게 주시면서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얻었느니라. 너도 이리 하거라' 하시며 몸소 가르치시셨다네. 그 가르침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한데 내 어찌 죽는 날 까지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수 있는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는 죽은 것과 같네." - 황상(黃裳 1788~1870). ‘그 사이 책을 놓고 쟁기를 잡을 때도 있었지만 그 말씀만은 늘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지금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먹과 벼루에 젖어 있다.’ -치원(巵園) 황상(黃裳 1788~1870), 중에서 "벗할 수 없다면 참다운 스승이 아니고, 스승으로 삼을 수 없다면 좋은 벗이 될 수 없다." -

“스승과 벗은 원래 같은 것으로 어찌 두 개의 모습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벗이 곧 스승인 것을 알지 못해 수업하는 것만을 가리켜 스승이라 하고 또 스승이 곧 벗됨을 알지 못해 헛되이 친밀하게 사귀는 사람만을 벗이라 한다.… 만약 스승이 될 수 없다면 벗도 될 수 없는 것이다.” - 이탁오(李卓吾 1527 ~ 1602)

★ "물을 가득 채우면 소리가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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