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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재미있는 향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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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10.1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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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타고 해남을 오갔던 효열부 임씨

<효부편>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두모마을 정려실기

 

◇ 효열부 임씨의 정려문(해남군 향토유적 제13호) 효열부 임씨는 15세 때 진도 고군면(원포)에서 해남 현산면 두모리로 시집을 갔다. 김철산이라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보니 맹인 시아버지가 홀로 계시고 형제와 친척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시집 와 채 1년이 되기 전에 남편의 상을 당했다. 형제도 친척도 없는 상황에서 임씨는 상복을 입고 몸소 흙을 지어 날라 선산에다 남편을 안장했다. 임씨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눈먼 시아버지 봉양에 나서야 했다.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고 하루 세끼 밥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대접했다. 그때 친정집에서 소식이 왔다.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거의 사경에 이르렀다는 소식이었다. 부랴부랴 남의 배를 빌려 타고 큰 바다를 건너 친정집에 도착해 보니 늙으신 아버님은 아무 일이 없었다. 이는 친정어머니가 청상과부로 살 것을 염려해 새로 시집을 보낼 요량으로 딸을 불러낸 것이었다. 이에 그 길로 발길을 돌려 바다에 왔으나 세낸 배는 돌아가 버리고 바다를 건널 방법이 없었다. 맹인 시아버지 걱정에 물가를 배회하던 임씨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물에 뛰어들어 자결을 하려했다. 그런데 그때 어떤 것이 꼬리를 흔들며 옷을 끄는데 자세히 보니 시댁에서 기르던 개였다. 개를 따라 바다를 건너니 바다가 탄탄 대로였다. 밤 3시경도 안 돼 해남집에 도착해 눈먼 시아버지에게 안부를 물으니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소리를 듣고서 놀라 감긴 눈을 뜨게 되었다. 이때 천지가 밝고 해와 달이 빛나며 초목과 금수도 기쁜 빛을 띄었다. 아버지를 뵌 임씨는 서둘러 개를 불렀는데 개는 곧 호랑이였고 그 호랑이는 웅크리고 엎드리며 꼬리를 흔들고 다리를 흔들며 임씨를 반겼다. 임씨 부인은 은혜에 감격해 개 한 마리를 잡아 호랑이에게 주었다. 호랑이는 개 한 마리를 한입에 삼키고는 머리를 숙여 감사의 절을 하고 몇 걸음 걸어가다 사라졌다. 다음날 저녁 그 호랑이가 임씨에게 와서 슬프게 부인이 자신을 살렸다고 고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해주의 함정에 빠져서 목숨이 경각에 이를 때 꿈을 꾸듯 그 곳에 쓰러졌는데 여덟 마리의 큰 소가 나타나 자신을 다치게 하지 말라 했다는 것이다. 이를 본 호랑이 무리들이 모두 놀라 기이하게 여기며 그 연유를 물으니 소들은 꿈에 바닷가에서 목숨을 던지려는 부인이 나타난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호랑이들은 “이상하다 이상한 일이다” 하면서 자신의 등을 어루만지며 출입을 삼가지 않았기에 해주의 함정에 빠진거라며 부인을 구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기쁜 마음으로 바다에 가서 부인을 끌고 나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천고에 드문 일이니 그 고을 원님이 그 전말을 심사하고 당상관이 주상께 아뢰니 정려문을 세우도록 명했다. 선비들이 일제히 논의를 해 다시 만년토록 썩지 않을 비석을 세웠다. 효열부 임씨는 진도 여인으로 어렸을 때부터 언어와 행실이 일치했다. 부모 효성이 깊고 누에를 키우고 삼을 지어 실을 짜는 등 일을 잘 해 나이 성인이 되기 전부터 이웃의 공경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78년도 지춘상 전남대교수와 나경수씨 등이 한국설화 진도편 조사 당시 고군면에서 노인들에게 채록하여 실어놓았다. 명량대첩축제 때 진도대교 아래서 해남 예인들이 극으로 꾸며 무대에 올려 선을 보이기도 했다.

진도(珍島) 효자 강천복(姜天福)

정조10년(1786) 11월11일|효(孝), 열(烈)

강천복(姜天福)

정조 22권, 10년(1786 병오/청건륭(乾隆)51년) 11월11일 신사 6번째 기사

효자들과 열녀에게 정문을 하사하다.

효자들에게 정문을 하사하였는데, 통덕랑 홍조영(洪朝泳), 현감 성덕구(成德求), 학생 유준(兪雋), 남원(南原) 사인(士人) 형세적(邢世績), 학생 김택순(金宅淳), 개성부사인 이정유(李鼎濡)이고, 효부(孝婦)는 송화(松禾) 무사(武士) 한진배(韓震配)의 처 노씨(盧氏)였다.

열녀에게 정문을 하사하였는데, 양인(良人) 최수환(崔壽煥)의 처 최씨(崔氏), 학생 임교상(任敎常)의 처 이씨(李氏), 학생 유익엽(劉益燁)의 처 현씨(玄氏), 학생 오윤상(吳允常)의 처 김씨(金氏), 파주(坡州) 사인(士人) 홍우주(洪宇周)의 처 이씨, 흥양(興陽) 포인(鮑人) 김점산(金占山)의 처 남씨(南氏), 남평(南平) 군역(軍役) 나소채(羅小采)의 처 황씨(黃氏), 장수(長水) 양녀(良女) 분대(粉黛)였다.

충신 증병조참의 양대업(梁大樸)의 집과 효자 학생 최도관(崔道觀), 최적관(崔迪觀)과 현감 이지로(李之老), 진도(珍島) 무부(巫夫) 강천복(姜天福)에게 모두 호역(戶役)을 면제해 주었다.

○旌孝子通德郞洪朝泳、縣監成德求、學生兪雋、南原士人邢世績、學生金宅淳、開城府士人李鼎濡、孝婦松禾武士韓震配妻盧氏、烈女良人崔壽煥妻崔氏、學生任敎常妻李氏、學生劉益燁妻玄氏、學生吳允常妻金氏、坡州士人洪宇周妻李氏、興陽鮑人金占山妻南氏、南平軍役羅小采妻黃氏、長水良女粉黛、忠臣贈兵曹參議梁大樸閭、孝子學生崔道觀、迪觀、縣監李之老、珍島巫夫姜天福, 竝復其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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