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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관 칼럼 -지혜(智慧)롭게 살자
박영관 칼럼 -지혜(智慧)롭게 살자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11.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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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는 삶의 등불이다 -

                                                                                           고군면 오일시 박영관

누가 등을 미는지 세월이 급하게 손짓한다. 유유자적하며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싶은데, 세월에 가속도가 붙어 마음이 더 급해진다.

나이 들면 ‘탓’이 늘어난다. 내 탓이 늘어나면 좋은데, 나는 옷장 안에 감추고 남을 탓하기 시작한다. 치매 초기 현상이나 노화 현상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내 탓이오’를 설파했다. 홀로 애달아서 하는 푸념보다 역으로 나이 든 내가 ‘먼저 하면 어떨까?’ 세상은 상선약수(上善若水 :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가 이치이다.

『무엇이 그들을 지혜롭게 했을까』(스티븐 홀 Steven Holl, 1947. 미국, 김소희 옮김, 리더스북, 2012)란 책에는 ‘감정조절’, ‘판단 능력’, ‘도덕적 선택’, ‘연민’, ‘겸손’, ‘이타심’, ‘인내심’, ‘융통성’의 8가지가 인간을 지혜롭게 만드는 요소라고 했다. 그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지혜롭기를 원한다. 동서양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지적인 활동뿐 아니라, 육체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초기의 철학은 길에서 생겨났다. 소크라테스(Socrates, BC470∼BC399, 그리스)는 대중과 토론하고, 공자[孔子, BC551∼BC479, 魯(노)]는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뜻을 전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 시인인 헤시오도스(Hēsiodos, ?∼?)는 “인간 중 스스로 진실을 볼 수 있는 이가 최고다. 현명한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이도 좋다. 하지만 현명하지도 않으면서 지혜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조금도 노력하지 않는 자는 가치 없는 존재”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단 두 단어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를 통해 인간과 사회 문제를 사고하는 기념비가 될 만한 기록을 남겼다. 즉 지혜는 다른 미덕과 마찬가지로 수고를 통해 얻어지는 성과인 셈이다. 소요되는 수고에는 경험, 오류, 직관, 초연함,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비판적인 사고 등이 있다. 이것은 반직관적, 저항적, 비감성적, 반신화적, 비전통적이다. 지혜를 추구한다는 것은 비단 지적인 활동만이 아니라 물리적인 일이기도 하다. 종종 주변 환경을 바꾸어야 하고, 때로는 여행을 가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정치인들과 시인들을 심문하기 위해 아테네를 돌아다니고, 부처[釋迦(석가), Śākyamuni, BC563?∼BC483?, 인도]는 깨달음의 말을 전파하기 위해 인도 동북쪽 녹원을 떠돌아다녔다. 지혜의 초창기 역사는 이처럼 길 위에서 펼쳐졌다.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 1902∼1994, 미국)은 “지혜는 노년 무렵에 생겨난다”고 했다. 노년은 거의 한평생에 걸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 전반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되돌아볼 수 있다. 노년에는 초연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우리는 농익은 재치, 축적된 지식, 성숙한 판단, 포괄적 이해 등 여러 함축적 의미에서 이것을 지혜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지혜는 개인적 차원에서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살아있는 전통이 지혜의 본질이 된다.

지혜란 남을 속임도 아니고, 남의 아픔을 정직히 표현하는 행위도 아닌, 자신이나 주변을 살리는 묘책이다. 지혜란 이 세상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깨닫고, 그것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갈 수 있는 인간들의 지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지혜는 올바르게 판단하고 최선의 행동 방침을 따르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여기에는 통찰력, 올바른 판단력, 건전한 의사 결정이 포함된다. 지혜는 단순히 지식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그 지식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지혜란 삶의 등불이며, 우리는 지혜로 이 세상의 어둠을 걷어낸다. 제아무리 어렵고 힘든 장애물이라고 하더라도 뛰어넘을 수가 있다. 앎은 지혜가 되고, 지혜는 등불이 된다. 지혜는 용기가 된다. 교육은 이 지혜를 얻기 위한 입문 의례 과정이다. 지혜로워야 상승할 수 있고, 가치 있는 문화를 창출해 낼 수 있다.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참 지혜다”고 공자가 논어에서 말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의 첫걸음이다. “중요한 일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스티븐 커비(Stephen Richards Covey, 1932.∼2012. 미국) 박사는 충고했다. 노년은 필요한 사람에게 백과사전처럼 안내해주는 나침반 역할을 해야 세상이 지혜롭게 흐른다. 하늘이 준 노년의 삶을 걷기와 산책, 사색을 즐기며 낙천적이고 평안하게 즐겨야 삶이 여유롭다. ‘화향백리(花香百里) :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인향만리(人香萬里) :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는 말이 있다. 아름다움은 상대를 배려하고 자기의 꿈을 실현하는 상생전략(相生戰略)이 지혜로운 삶의 미학(美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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