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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달리던 목장’ 지산면지 나왔다
‘말달리던 목장’ 지산면지 나왔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10.3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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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지, 의신면지, 군내면지 실종사건 재조사 펼요

“지산면은 선사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이 인지리를 비롯 산재되어 있고 전통문화가 마을 마을마다 면면히 내려오는 고장입니다.”(조기주 지산면장)

지산면지가 출간되었다. 설진석 감수원장은 감수사에서 “현존하는 사료들이 적절하게 최대한 인용, 둘째 면민 전체가 감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밝혔다.

이윤선 목포대 교수가 대표집필로 전체적으로 제1장 ‘예술혼을 잉태한 지산면의 자연과 인문지리’와 제2장 말달리던 초원의 땅, 지산면의 역사에서 관마리에서 발견된 마한시대의 흔적을 비롯 백제시기의 고분 유적과 통일신라(남북조)시대 첨탐현, 지산면의 해문(海門)이었던 소포나루, 1445년 쉬미에서 마사까지 지산면 목장 초설에서 1502년 유일하게 남은 지력산 목장, 관마리에 있던 점마관, 지력산 지씨원정과 노수신 등을 살펴 적었다.

제3장에서는 더불어 살아 온 공동체, 인문환경과 행정 분야로 지방자치, 교육기관 등을 다루었다. 4장에서는 ‘농사짓고 고기 잡던 지산면 사람들, 제5장 지산면의 언어와 문화예술을 다루었다. 이 밖에도 지산면의 무형문화재(유네스코 지정 및)와 민간의례와 신앙 등을 조사 정리하였다. 미을자랑에 인지리편에서는 효자열녀비(순창 설씨 등)가 군에서 가장 많은 마을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또 다른 시대적으로 섬의 애환과 신분한계 극복을 위한 사례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주필을 담당했던 이윤선 교수는 ‘책을 읽기 전에’에 “우리 면은 문헌자료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고 실토하였지만 무형의 가치에 중심을 두었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진도군의 읍면지 발행은 처음 김정호 전 진도문화원장이 주도한 임회면지를 비롯 집필 발간을 하면서 진도군지(2006년판)가 시대적 요구를 많이 수용했지만 수치와 계량적 지역 비교 서술로 ‘진도는 열악하다’는 경제적 인식을 탈피해 고유한 특장을 찾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민속놀이는 너무 보편적이며 음식 민간요법 등 지역성과 무관한 군더더기도 드러난다.

이런 가운데 조도면지 이후 의신면지와 군내면지가 오래 전 진도군의 예산지원을 받아 발간진행을 하였지만 제대로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해 큰 아쉬움을 주었다. 여기에 진도를 대표하는 진도읍지 마저 아직까지 발간이 늦어지는 가운데 이번에 지산면지가 나온 것은 그 내용 자체를 평가하기에 앞서 관계자들이 어떤 입장에서 임무를 완수했는지 시사해주고 있다.

진도군과 읍·면지 발간 추진관계자들이 이를 계기로 편찬위원회 재구성 발간 일정을 진도군민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주어야 할 계기를 주었다는데도 의미가 크다.

한편 이번 지산면지(인쇄 목포 제일기획)는 편찬위원장에 이재익, 부위원장에 김민재, 감수위원장에 설진석, 위원에 곽상래, 김경철, 김덕춘, 김영인, 김학진, 문동호, 서재엽, 설회관, 이공신, 이병호, 임태욱, 조장환, 조기주(지산면장)이 참여하였다. 도 글에는 이윤선, 변남주, 김석천, 방주현, 교열에는 설진석 이재식 오영록 이종호 금흥근 이며 ‘말달리던 목장’ 제자(題字)는 고산 김민재(보전마을 출신)씨가 썼다.(박종호 기자)

*본지에서는 의신면지, 군내면지, 진도읍지와 관련 면민 향우들의 제언 의견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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