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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요 진도아리랑의 위상 , 4대 문화재 등극 !
한국민요 진도아리랑의 위상 , 4대 문화재 등극 !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4.01.2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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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진도3대명물은 진도아리랑,진돗개.진도구기자였다.

- 진도아리랑 최초의 기록은 1935년 ⌜조선일보⌟본사 신축기념 공연에서 -

- 지금도 진도의 명물은 “진도아리랑” ! -

 

                                                            박병훈 : 전라남도무형문화재 제 64호 진도아리랑 보유단체 대표

                                                                                           전 진도문화원장

 

 

 

1.문경새재 노래가 진도아리랑이 된 사연

민요는 누구인가 가사를 만들어 부르면 듣는 사람은 이와 유사한 가사를 모방하여 만들어 불러 함께 유행을 하게 된다.

일예를 들면

놀다가세 놀다나가세 / 저 달이 떳다지도록 놀다나가세

하고 노래 부르면 다른 사람은 이를 흉내 내어

놀다가세 놀다나가세 / 이 밤이 다 가도록 놀다나가세

또는

놀다가세 놀다나가세 / 오늘밤이 다 새도록 놀다나가세

하고 이와 유사한 가사들을 만들어 낸다.

 

일제때인 1910년∼30년대 서울 장안에는

문경새재 박달나무 /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는 아리랑 노래가 대유행을 하고 있었는데 누구인가 이 노래를 흉내 내어

문경새재는 왠 고개인가 / 구부야 구부구부 눈물이 난다. 하고 진도아리랑 가락으로 노래 부르고 1936년 유성기 판(김소희 창)에 “진도아리랑”이라고 명명을 하므로써 이 노래가 대표적인 진도아리랑 노래가 되었다.

또한 이 노래는 최초의 진도아리랑 가사 기록으로, 그래서 국악인들은 진도아리랑을 부를 때 가장 먼저 이 “문경새재”노래를 부르고 있기도 하다.

결론하면 문경새재 노래는 진도아리랑의 대표적인 노래인 것이다.

 

2.최초의 진도아리랑 기록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진도아리랑 기록은 1935년 ⌜조선일보⌟본사 사옥 신축 기념 공연에서 진도아리랑이 불리어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사의 내용의 전문을 밝혀보면 다음과 같다.

 

3. 열악한 환경에서도 꽃은 피어나다.

진도아리랑은 지금까지 지자체의 지원이 거의 소외되어 왔었는데 이의 실상을 ,2013년도 3대아리랑 지원상황을 한 예로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전거 : 박정경(문체부 학예연구사) 의 2013년도 자자체별 아리랑지원 실태조사서

 

이상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진도아리랑은 꽃을 피웠는데 진도아리랑 4대문화재 지정상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끝으로 문화재 지정의 공로 모두가 보존회회원 어머님들의 열성적인 협조와 성원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음을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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