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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명인 박종기 선생의 효
대금명인 박종기 선생의 효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11.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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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금명인 박종기                                                                                               

필멸의 소리로 불멸의 예술을 꿈꾸다

진도에서 올라온 박종기는 처음에는 먼저 올라온 인척 박동준의 도움을 받아서 경성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처음 그에게 맡겨진 역할은 주로 대금주자가 아닌 고수(鼓手)였다. 그런데 그가 워낙 음악성이 출중해서 북도 잘 치고, 장구도 잘 치다보니 당시에 가장 잘 나가는 기생들이 방송출연을 하면서 박종기를 대동하게 된다. 이른바 박종기가 특정한 명기명창(名妓名唱)의 전용고수요, 수행고수가 된 셈이다. 이렇게 경성에서 음악생활을 시작한 그는 점차 대금을 통해 빛을 발하게 된다. 그가 연주하는 봉작곡(鳳雀曲)이 방송을 타게 되고 음반도 내게 된다. 그리고 그의 대금산조가 경성방송국에서 연주가 되고, 대금에 한해서 '산조'라는 음악이 박종기에 의해 출발하게 된다.

​박종기는 '대금산조'의 창시자로 지금도 인정받고 있다. 대금으로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이미 있어온 전통이나 '진양조'를 시작으로 해서 산조의 틀을 완성하여 처음으로 연주한 것은 박종기가 처음이다. 또한 그는 '봉장취'와 관련해서도 주요한 인물이다. 봉장취는 산조음악의 전신이라고도 하지만 동시대에 봉장취와 산조가 모두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이런 접근을 통해서 박종기 음악의 진정한 스펙트럼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진도아리랑'의 탄생 배경도 풀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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