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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유필’의 재고찰 주장 박병훈 전 진도문화원장
은파유필’의 재고찰 주장 박병훈 전 진도문화원장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4.0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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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더 구체적 서술 책자 발견했다” 발표

 

조선후기 진도에 유배되어 왔던 무정 정만조의 저술 책자 ‘은파유필’이 “또 다른 이본이 있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강강술래에 관한 기록을 보면 1896년 진도로 유배된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가 12년간 머물면서 남긴 은파유필 恩波濡筆에 써놓은 글 중 각종 풍습 및 놀이에 대한 기록에 강강술래도 포함되어 있다. 무정의 대표적 저서인 은파유필은 그가 진도에서 접한 인물, 풍속, 고적 등을 시와 부賦로 표현하고 일기체 형식으로 엮은 것인데 350여 수의 시로 진도의 풍습을 기록한 책이다.

여기에 기록된 강강술래强强須來라는 명칭의 사용과 뜻풀이는 강강술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인정되고 있다.

당시 무정은 한시를 통해 <높고 낮은 소리 내며 느릿느릿 몰고 돌아/ 한동안 서 있다가 이리저리 움직이네/ 여자들의 마음에는 사내들 오기를 기다린 것/ 강강술래 부를 때 사내들역시 찾아드네>라고 표현, 강강술래의 어원이 사내들을 부르는 뜻이라고 보았다.

정만조는 여기에 주를 달아 이날 밤 여러 집안 여자들이 달을 밟고 돌며 노래할 때, 한 여자가 선창하면 여러 여자들이 느릿느릿 받는데 이 놀이를 강강술래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강강술래가 1966년 2월 15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술래라고 발음을 하던 수월래로 소리가 나든,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민요들이 그러하듯 무의미한 음의 반복이나 후렴을 관습적으로 쓰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놀이의 특성을 보면 처음에는 느리게 나가다가 자진모리 장단으로 바뀌면서 흥을 돋군다. 강강술래의 노랫말을 보면 지방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고 선소리(앞소리)하는 사람에 의해 즉흥적으로 불리어 지기도 한다.

박병훈 전 진도문화원장(현 진도아리랑보존회장)은 “전문가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해석으로 이전 책자와의 차이와 추가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국 연경 사절단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미경씨에게 번역을 의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김미경(문학박사.한문학 전공)씨는 “향전(鄕田) 박병훈(朴秉訓) 선생이 기존에 『은파유필(恩波濡筆)』과 필체(筆體)도 내용(內容)도 완전히 다른 『은파유필(恩波濡筆)』을 가지고 와서 검토를 의뢰했다. 얼마 전, 서울에 사는 모 서지학자로부터 입수했다는 『은파유필(恩波濡筆)』은 기존의 것과 내용은 모두 달랐지만, 공통점은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1858~1936]가 자신이 유배오게 된 상황을 짤막하게 설명한 “正月十一日直 宮內府被拿”라는 부분의 내용만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기존의 『은파유필(恩波濡筆)』에서 맨 처음 부분에 “恩波濡筆卷之一”이라고 쓴 것과 “茂亭鄭萬朝著”라고 쓴 부분은 없다. 그리고 기존의 『은파유필(恩波濡筆)』과 필체도 완전히 다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새롭게 발굴된 『은파유필(恩波濡筆)』은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제자 또는 친지가 필사(筆寫)한 필사본(筆寫本)일 가능성이 높다.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는 1896년부터 1907년까지 금갑도(金甲島)로 유배 와서 12년간 지내면서 『무정시고(茂亭詩稿)』와 『은파유필(恩波濡筆)』을 집필했다.

그 중에 이번에 향전 박병훈 선생이 새롭게 발굴한 기존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은파유필(恩波濡筆)』은 앞으로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의 진도 유배 생활을 연구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밝혔다.

                                                                                                           김미경 문학박사

새롭게 발굴된 『은파유필(恩波濡筆)』에 대한 소견(所見)

김미경(문학박사:한문학·민속학전공)

향전(鄕田) 박병훈(朴秉訓) 선생이 기존에 『은파유필(恩波濡筆)』과 필체(筆體)도 내용(內容)도 완전히 다른 『은파유필(恩波濡筆)』을 가지고 와서 검토를 의뢰했다. 얼마 전, 서울에 사는 모 서지학자로부터 입수했다는 『은파유필(恩波濡筆)』은 기존의 것과 내용은 모두 달랐지만, 공통점은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1858~1936]가 자신이 유배오게 된 상황을 짤막하게 설명한 “正月十一日直 宮內府被拿”라는 부분의 내용만 일치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기존의 『은파유필(恩波濡筆)』에서 맨 처음 부분에 “恩波濡筆卷之一”이라고 쓴 것과 “茂亭鄭萬朝著”라고 쓴 부분은 없다. 그리고 기존의 『은파유필(恩波濡筆)』과 필체도 완전히 다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새롭게 발굴된 『은파유필(恩波濡筆)』은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제자 또는 친지가 필사(筆寫)한 필사본(筆寫本)일 가능성이 높다.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는 1896년부터 1907년까지 금갑도(金甲島)로 유배 와서 12년간 지내면서 『무정시고(茂亭詩稿)』와 『은파유필(恩波濡筆)』을 집필했다.

그 중에 이번에 향전 박병훈 선생이 새롭게 발굴한 기존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은파유필(恩波濡筆)』은 앞으로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의 진도 유배 생활을 연구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사료된다.

※ 김미경 박사는 고려대학교에서 『東華 李海應의 薊山紀程 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珍島 祝祭式 喪葬禮 民俗의 演戱性과 스토리텔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정 정만조에 대해서는 2006년에 한국도서(섬)학회 학술지에 「진도(珍島) 유배문화(流配文化)의 일고찰(一考察)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과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를 중심(中心)으로- (한국도서연구 18권 1호)」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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