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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과 한국사회
기생충과 한국사회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4.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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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호(전남민주교육포럼 공동대표)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이사벨라 비숍 여사의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란 책 구절은 늘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비숍 여사는 당시 구한말 지도층, 소위 사대부들에 대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양반은 생업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친척들의 부양을 받는 것이 전혀 수치가 되지 않으며 담뱃대조차 자기 손으로 가져오지 않는 기생충 같은 자들이다.”라고 기술했다. 그녀는 땀 흘려 일하고 밥을 먹는다는 청교도적 자본주의 사고를 가진 서양인이다. 그녀의 시각으로 볼 때, 책 전체에 분명 편향적 사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사대부는 이상한 존재였을 것이다. 한말 정부의 외교고문으로 와 있던 미국인 데니 역시 당시 사대부는 경이로운 대상이었나 보다. 그는 “노동을 불명예스럽다 생각하기 때문에 무위도식하며 노동을 소모시키는 양반계급도 자신들이 먹을 것은 자신들이 벌어야 할 것이다”라고 일갈하였다.

조선의 건국이념과 그 지배구조를 보면 사대부들을 다소 이해할 수 있다지만 현대의 시각에서 볼 때 여전히 의아스럽기 그지없다. 신진사대부 정도전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줄 주군으로 일찌감치 이성계를 지목하였다. 그리고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삼아 이 학문을 신봉하는 사대부의 나라 조선을 세운 것이다. 군역과 납세와 부역을 면제해주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되 과거에 응시하고 출사하여 조정을 이끌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차지할 관직 숫자가 너무 적은데 있었다. 필자가 알기로는 조선의 중앙정부 관직은 350개 남짓에 불과했다. 물론 중인계급에게 주는 잡직이 아닌 양반들이 차지하는 문관 자리이다. 지방관직을 감안하더라도 몇 안 되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 즉 사화와 환국이 조선 전체를 관통한 이유이다. 과거시험은 자주 실시하여도 관직은 다 주지 못하니 이러한 정변발생은 필연이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체면 때문에 하지 못한다. 아니 안한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런 양반사회에 안빈낙도는 최고의 수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본디 안빈낙도는 공자가 제자 안회의 학문하는 자세를 칭찬한데서 유래한다. 그런 연유인지 조선 사대부들도 유난히 안빈낙도를 읊은 글이 많다. 송순의 면앙정가도 그 하나이다. 고귀한 사상과 자연이 초가삼간에 어우러져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나무 잎이 시원한 바람줄기에 소스락 거리고 그 속에서 청빈을 즐기는 사대부가 멋있지 않은가? 그러나 어마어마한 재산을 상속해주는 송순의 분재기(재산상속문서)를 보면 표리부동과 사기극의 극치라고 할만하다. 그러면서 ‘농자 천하지대본야“라는 위장 슬로건으로 모든 의무를 다하는 백성을 기만하였다. 참 웃기는 세상이 따로 없다. 자본주의 계급이 싹트는 줄 모르고 세월을 허비하다 신생 부르주아 계급에게 지도층 자리를 내준 서양의 중세 봉건영주가 떠오른다. 조선사대부도 닮은꼴이다. 진보와 혁신은 가차 없다. 민초를 위하기는커녕 그들에게 기생해서 자신들의 안위만을 추구하던 양반들은 결국 나라를 송두리째 넘기고 말았다. 넘어간다는 사실 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면서! 이들을 기생충이라 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일컬어 기생충이라고 하겠는가?

요즘 한국사회가 기생충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르면서 한국영화 100년사에 전무후무할 금자탑을 쌓았다. 작년 5월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때부터 주목해온 영화이다. 당시 이 영화를 제작한 바른손이엔에이에 대해서도 턴어라운드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었다.

영화 한 편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하다. 단기적으로 보더라도 이미 수천 만 명이 이 영화를 관람하였고 수상 후광으로 재개봉을 하거나 개봉관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도 향후 상영할 미개봉 국가가 150국에 달하고 부속콘텐츠로 발생하게 될 수익창출은 가늠조차 어렵다. 한국형 디즈니 또는 파라마운트의 탄생을 알리는 전주곡이 아닐까? 이것이 문화의 힘이다. 조선의 마지막 현군 정조대왕께서 좀 더 사셔서 기생충 같은 썩은 사대부들을 정리하고 새 시대를 열었더라면 이런 날이 진즉 도래했을 텐데. 아쉽지만 이제부터이다. 기생충이 뿜어내는 힘이 참으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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