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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수의 역사인식 무관심인가?
진도군수의 역사인식 무관심인가?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7.2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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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녹두관서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 안장 1주기 추모식

진도군, 무기력한 대응으로 ‘내집안에서 수집한 역사유물’ 뺏겼다

전북 전주시는 지난 5월31일 동학농민혁명 녹두관에서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 안장 1주기 추모 행사를 가졌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6월 1일 녹두관에 안치된 유골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에 의해 처형된 무명의 농민군 지도자 머리뼈로, 1955년 일본 북해도대학 표본창고에서 발견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당시 유골 상자에는 '메이지 39년(1906년) 진도(송현고개)에서 효수한 동학당 지도자의 해골, 시찰 중 수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북해도대학과 협의를 거쳐 국내로 봉환한 유골을 지난해 동학농민군 기억 공간인 녹두관에 안치했다.

유골 안장 1년 만에 열린 행사에는 김승수 전주시장과 이종민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역 주민 등이 참석해 폭정·외세와 맞서 싸운 동학농민군의 넋을 기렸다.

행사는 동학농민군 전주 입성 126주년 기념식과 동학농민군 지도자 안장 1주기 추모식,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낸 고(故) 이이화 선생 추모 공연 순서로 진행됐다.

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참석 규모를 축소하는 대신, 온라인을 통해 행사 영상을 공유하기로 했다.

애초에 북해도대학 인류학 수장고에서 발견된 동학지도자 유골은 박맹수 교수 등의 노력으로 귀환시켜 진도출신 동학지도자 박중진으로 알려지면서 진도읍 송현(솔개재) 부근에 기념공원을 조성하기로 진도군이 추진하겠다며 임시로 첨찰산 쌍계사에 안장해놓자는 의견이 대두되었었다. 하지만 이후 진도군의 무관심으로 인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전주시로 옮겨가 벌써 안장 1주기 추모식까지 갖게 된 것이다.

이에 앞서 진도군은 지난 해 5월21일 전주지방법원에 제기했던 '유골 현상변경금지 가처분 신청'이 같은 달 30일 기각된 이후 해남지원에 정식 소송을 제기하였다.

당시 진도군 측은 소장에서 "이 사건의 유골이 진도군 출신이라는 점에 의견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며 "장사 등에 관한 법률상 '연고자' 조항이 적용될 수 있다면, 원고들(진도측)은 피고들(전주측)에 대해 우선적으로 연고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어 "유골이 일본으로 불법반출 됐던 1906년 당시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이 진도군이다"며 "불법으로 해외에 반출된 유골은 원래 위치하고 있었던 진도군으로 반환되는 것이 사회통념에 부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유골은 1906년 목포면화시험장 기사였던 일본인 사토 마사지로에 의해 일본 홋카이도대로 반출됐다. 이후 90년이 지난 뒤인 1995년 일본 북해도대학의 표본창구에서 다시 발견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당시 유골 상자에는 '메이지 39년(1906년) 진도에서 효수한 동학당 지도자의 해골, 시찰 중 수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북해도대학과 협의를 거쳐 이듬해 유골을 국내로 봉환했지만, 신원 확인에 실패하면서 23년 동안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해 왔다.

이후 전주 안장 계획이 전해지자 진도군이 본격적으로 반환 운동에 나섰다. 진도군과 군의회는 유골이 돌아오면 전시관과 역사공원을 조성할 방침이다.

진도군 관계자는 "진도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에서 유골 반환을 적극 요청해 와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며 "유골에 대한 인도청구가 받아들여지면 DNA 검사를 통해 후손을 찾아 그들의 뜻에 따라 안장 등 기념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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