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8:57 (금)
『진도의 깊은 맛과 멋』을 찾아서(1)ㅡLiquo/전통주
『진도의 깊은 맛과 멋』을 찾아서(1)ㅡLiquo/전통주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07.30 18: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드러우면서 강하고, 깊고 깨끗한 맛 자랑

 

 

세방낙조 붉은 노을 걸러낸 방울 모여 이룬 것 같은 천년의 홍주

그 고장의 인심과 사람들의 삶의 철학을 한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대대로 이어오는 전통주가 아닐까? 대동여지도로 잘 알려진 조선후기 지리학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선생이 진도홍주의 아름다움에 반해 읊은 노래가 있다.

진도군농업기술센터(군내면 상가리) 옆 건물에는 이 절창이 큰바위에 새겨져 있다. "홍매화 떨어진 잔에 봄눈이 녹지 않았나 싶고, 술잔에 비친 홍색은 꽃구경할 때의 풍경이로다.”

조선후기 지도 제작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발로 누비다 팔도 각지의 전통주를 접하면서 고산자 선생은 특히 붉은 눈물이 방울방울 모여 술을 이룬 것 같은 진도홍주를 즐겨 흥선대원군에게 대동여지도를 바칠 때 진도홍주도 함께 올렸다고 한다.

이낙연 전 총리는 진도를 찾으면 꼭 진도홍주시설을 살펴보고 운림산방과 팽목항을 들렸다.

진도 홍주는 고려시대부터 진도에 전해져 처음에는 양천 허씨 가문에서 가양주로 내려오다가 점차 민간으로 확대되었으며 개성의 인삼 대신 진도산야에서 나는 지초(지치)를 쓰면서 오늘날의 선홍빛 붉은 색을 얻었다고 한다. 또는 몽골군이 삼별초를 토벌할 때 가져온 초원의 증류주가 진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민가에서 고조리 항아리를 이용한 전통비법으로 빚어온 토속 명주로 전남도는 1994년 12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진도전통홍주 보존회에서 보존하고 있다. 최초 기능보유자는 허화자(당시 76)였으며, 진도에 6개의 면허업체가 있다.

그 연원을 기록으로 찾아보면 『방사십이집(放事十二集)』에서 관서감홍로와 관서계당주를 홍주로 분류하였고 근세의 『조선고유색사전(朝鮮固有色辭典)』의 술 분류와 『조선상업총람(朝鮮商業總攬)』의 상품분류에 홍주가 포함되어있지만 여타 기록에서는 찾기 어렵다.

진도에서 전승되어 온 배경에는 항몽 삼별초군 입도, 양반 유배인의 전수, 함경·평안도 유민의 입도, 남방문물의 유입, 의료처방에 따른 독자발전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뇨작용, 복부팽만 제거, 살균, 태독, 청혈 등의 효과가 뛰어난 토속명주다. 별칭으로 ‘지초주(芝草酒)’라 하여 최고 진상품으로 꼽았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쌀이나 보리에 누룩을 넣어 숙성시킨 뒤 증류한 순곡 증류주로, 마지막에 지초를 침출하는 과정을 거치면 붉은 빛을 띠게 된다. 산삼 버금가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예로부터 지초를 이용해 빚은 술은 음용뿐 아니라 치료의 목적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효능도 효능이지만 무엇보다 지초의 뿌리에서 우러난 붉은 색은 입술을 갖다 대기도 전에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그렇듯 빼어난 맛과 색과 향을 모두 갖춘 만홍의 노을빛 미혹의 술, 진도홍주. 도수가 40%에 이르는 고도주지만 숙취를 유발시키는 퓨젤오일이나 메탄올 성분은 적은 편이다.

 

(진도군에 따르면 대대로영농조합법인의 진도홍주가 세계 유명 주류품평회인 ‘2019 벨기에 몽드셀렉션’에 참가해 금상을 수상했다. 대대로영농조합법인은 한국과 일본의 주류 전문가가 추진한 홍주의 첨단 주조기법 연구 용역을 통해 재래식 비법을 접목, 세계적 명주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진도홍주를 다양하게 상품화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진도는 중앙에서 가장 먼 남쪽 뭍에서 떨어진 섬인지라 유배지로도 적지(適地)였다. 귀양살이 내려온 선비들의 학문과 풍류가 자연스레 지역사회에 이전되거나 서로 동화되었을 것이다. 문장, 글씨, 그림, 등 수준 높은 중앙의 문화에 진도사람들의 앵환 가득한 노래와 술이 빠질 리 없었다. 시 한 수 짓고 읊으며 한 잔, 붓 한 획 그림 한 점에 또 한 잔, 높고 낮은 노래 한 가락에 화답하느라 다시 한 잔. 그럴 때 잠시나마 천리길 유배지의 시름을 잊게 했던 술이 바로 진도홍주가 아니었을까.

도성에서의 소식은 감감하고 이른 아침 개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타들어가는 마음, 녹아드는 애간장에 술잔 건네는 이도 술잔 받아드는 이도 눈가에 방울방울 붉은 눈물 맺히지 않았을까.

                                                                         (진도에서 27년간 홍주를 빚고 있는 김애란 대표는 시인이기도 하다)

진도홍주의 맛은 한마디로 반전이 있는 술. 부드러우면서 강하고, 강인하면서 깨끗하고, 단아하면서 견고하다. 황홀한 서방정토 노을빛 또는 다홍치마 색깔 아래 바다를 다스리는 건강한 남성성이 숨어 있다. 화끈하면서도 묵직한 맛이 젊음과 노련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단맛이 짧은 대신 향의 여운은 오래 간다. 술이 약한 사람은 맥주나 탄산음료에 타서 칵테일로 음미해도 좋다. 홍주 속에는 궁상각치우 5음률이 담겨있다. 세마치의 진도아리랑은 물론 남도들노래와 구음 살풀이가 언제든지 맥놀이를 칠 뜨거운 침묵으로 자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풍미가 좋아지므로 햇빛이 들지 않는 서가 한 귀퉁이에 놓아두고 첫눈 내리는 날 멀리서 반가운 벗이 찾아올 때, 자식이 한국화 국전에 특선에 올랐을 때, 옥주벌판에 황금빛 풍년이 들면 잘 숙성된, 시와 같은 홍주 한 잔을 나누면 여기가 바로 몽유진도가 아니겠는가.

1백세를 훌쩍 넘도록 장수하였던 곽학암(소설가 곽의진 작가 부친)씨는 생전에 임회면 탑립마을 오봉산 자락에 기거하시면서 식사 때마다 진도홍주 반주를 빼놓지 않았다. 팔순을 넘은 이평은(86) 전 진도부군수나 서예가 고산 김민재(83)선생 등은 진도홍주 애호가로 잘 알려진 분이다. 금봉 박행보 화백도 고향 진도를 찾게되면 제자 지인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며 홍주를 드신다. 모두 언제나 얼굴에 화기가 넘친다. 자작시를 선지에 옮기는데 어떤 흔들림도 허하지 않는다. 한 없이 부럽기만 하다.

진도 홍주와 어울리는 음식으로는 육류나 생선을 꼽을 수 있다. 진도에서 나는 서촌간재미나 천중어, 채배기, 장어구이도 권할 만 하다. 다만 도수가 높고 향이 강해 위에 부담스럽지 않게 조리한 음식이면 더욱 좋다. 진도의 무병장수 특산물 구기자를 이용한 구기자갈비찜, 참전복탕 등은 최고의 안주. 부드럽고 기름진 중화요리를 곁들여도 부드럽고 알싸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진도군 농업기술센터에서는 2003년부터 홍주를 상품화하기 위한 표준화작업을 마쳤으며, 2005년도 지역혁신 신활력사업으로 선정되어 본격적인 ‘홍주 브랜드화’를 시도하고 있다.

(박남인 작가) *안주류 일부 자료 쿡엔세프 인용.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