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8:57 (금)
특별기고 / 아리랑의 산 여귀산에 돈사가”
특별기고 / 아리랑의 산 여귀산에 돈사가”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0.11.27 13: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을이 끝자락에 걸렸다.

여귀산은 11월 중순에야 비로소 완연한 가을빛에 눈이 부시다. 나뭇잎 하나하나에 지난한 세월의 흔적들을 느끼며 그들과 동체가 되어 사유의 시간을 가진다.

오늘은 목포대학 조기정 교수 일행과 산행에 나섰다. 여귀산은 유년시절 내게 자연학습장이기도 헸지만 예술적 상상력을 길러준 산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산보다 입산할 때 늘 설렘이 크다.

진도에는 첨찰산(해발 485.6m) 여귀산(458m) 등 명산 이 있다. 첨찰산은 남성적 기운이 드러나며 천년고찰 쌍계사와 남종화의 대가 소치의 운림산방이 자리한 인문적 성질의 산이라면 여귀산은 골마다 부드러운 선이 선율처럼 흐르는 아리랑 산이다.

풍수 하는 사람의 얘기를 빌리자면 예향(藝鄕)이라는 곳일수록 음 기운이 강한 땅이라고들 하니 지명 그대로 여귀산은 예술의 기운이 흐르는 산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골골에 끊이지 않고 예인이 태어났고 물길 따라 흐르는 소리소리는 새로운 국악의 한 장르가 태동하여 전승 계승되어 흐른다.

여귀산 주봉에서 흐르는 정기는 동쪽 끝자락 마을 의신면 명금리(송정)에 명창 박동준이 태어났고 그의 두 딸 박보화 박옥진 명인의 육자배기, 흥타령 남도잡가, 단가는 암울했던 시대의 애환을 달래주었으며 박옥진의 딸 김성녀(전 중앙대학교 교수)는 마당놀이 창극으로 한 획획을 그었다.

임회면 삼막리 박종기(1879-1941) 대금국수는 일제강점기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악계의 대 명인으로 남도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을 편곡하여 오늘날 우리들이 즐겨부르니 그의 발자취는 깊은 향기를 전한다. 임회면 봉상리(송정) 김귀봉선생은 진도씻김굿의 악사 그리고 다시래기(국가지정 무형문화재 81호)로 상주들의 슬픔을 어루만지며 불꽃처럼 살다 갔으며 남도에서 가장 큰 샛별을 볼 수 있다는 귀성리에는 남도국악원이 자리하여 별들처럼 빛나는 예인들이 모여 한국 민속예술특구 진도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공연 관람과 체험학습, 숙박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민속문화의 정수를 널리 알리고 있으며 석교리 진도국악고등학교에서는 국악 꿈나무들이 혼불을 피워내 골마다 울림이 가득하다.

서럽도록 아픈 가난의 한을 가락으로 풀어내며 살아온 내 부모 우리의 조상을 굽이굽이 흐르는 여귀산 예맥이 보듬어 키워냈다. 여귀산은 국악의 성지이며 역사다.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태옹된 기층문화의 가락들은 유우리 인생의 희노애락을 부등켜안고 위로하며 살아온 정(情)의 문화는 곧 여귀산 문화이며 진도의 문화정수이다.

                                                               임회면 용산리(도장기미)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소리 없이 여귀산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임회면 용산리(도장기미)에 기업형 대형돈사가 들어서려고 있다. 그들은 전남도청에 행정심판을 요청했으나 최근 기각됨은 당연스런 일이지만 몇몇 이들은 돈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라 행정소송을 준비할 듯하다.

여귀산은 백악기 시대에 활화산이 활동을 멈춰 억겁의 세월을 거쳐 조성된 천연자연림은 계절의 변화와 무관하게 산과 숲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난대식물의 보고로 후손에게 물려줄 가치있는 곳으로 유전자 보호지역으로 서부지방산림청 영암국유림관리소에서 관리 보호하고 있지만 모든 주민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가꾸고 저켜야 할 이곳에 대형돈사를 짓겠다는 야만적인 행동의 끝은 파멸 뿐이다.

악취와 토양오염 등으로 생태계 교란과 파괴로 인해 수백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토착미생물들의 면역체계가 무너진다면 이토록 다양한 수종과 식물 그리고 곤충들은 자멸하게 된다. 이 엄청난 사실을 알면서도 자행하는 인간의 교만과 이기심 앞에 들꽃 한 송이 대하기가 민망하다.

문화를 통해 심리적 안정과 평온을, 힐링하겠다고 오는 여러 관광객들을 몰아내고 똥파리들을 불러 드릴 모양인 듯하다.

자연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상생하는게 이치다. 우리가 사는 곳도 자연이요,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도 자연이다. 건강한 자연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도 건강하게 질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오늘 산행길은 이른 동백꽃들이 피어 환하게 맞이해 준, 가슴 깊이 파고드는 신선한 바람결은 묵은 스트레스를 씻어주고 본디 청정한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켜준다. 입산을 함께 한 일행들은 자연에 감탄하며 자연 앞에서 겸손과 경외감을 표했다.

긴 세월 거친 해풍 맞으며 우리를 품어 예술혼을 심어준 고마운 산 이 거룩한 여귀산에 느닷없이 대형 돈사라니, 추악한 욕망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결코 내어줄 수 없다.

이 땅의 선인들이 지키고 만들어낸 소중한 문화의 정신적 가치를 많은 분들과 나누며 물려주어야 할 너무나 소중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보배로운 섬 진도를….(여귀산 김양수 올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