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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밭에 꽃을 심으며
내 마음밭에 꽃을 심으며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04.16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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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꽃밭이 있다.

 

“내 집 뜨락 회양목의 아주 작은 꽃과 홍매가 피기 시작하면 왱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겨우내 몸을 숨기고 있던 벌들이 어느새 나타나 이제 봄이 시작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거다. 향기 그윽한 서향과 치자의 늘푸른잎이 동사했을 정도로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이었기에 봄꽃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했는데 울안에서 가장 먼저 피었던 풍년화는 벌써 시들었고 복수초는 거의 꽃잎이 져버렸다. 화란춘성(花欄春城)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한 좋은 계절이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진달래와 목련, 개나리, 명자 꽃이 다투어 피어났고 수수꽃다리, 해당화, 노랑꽃창포 등등이 연달아 꽃을 피우며 함께 사는 주인을 기쁘게 해 줄 것이다.”(오태수 교수)

 

세상 사람 어느 누가 꽃을 싫어할까. 화초들을 마당 곳곳에 듬성듬성 심어 꽃마다의 형태와 색깔, 향기를 즐긴다고 호사를 누린다고 할까. 화초 하나하나에 사연이 담겨져 있어 그 앞에서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조팝나무 꽃을 보면 멀리 평풍바위 산언덕이 생각나고 또 산딸나무 하얀 꽃이 피면 지금 어찌 살고 있는지 소식이 그립다. 꽃마다에 이름 불러주다 보면 지난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남보다 좀 더 꽃을 가까이하며 사는 까닭을 굳이 말해보라 한다면 평소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어 그러노라고 대답하고 싶다. 어린 시절 누나와 함께 봉숭아물을 들이던 기억을 어찌 다 지울 수 있겠는가. 또 색색의 꽃잎으로 책갈피를 만들던 그런 단면들이 내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동화 같은 것으로 간직될 수 있었다.

(봉숭아꽃밭)

살아가면서 꽃밭에 대한 그리움은 늘 떠나지 않는다. 언제나 소망했던 것은 어느 한적한 곳에 나만의 터를 소유하고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 함께했던 화초들을 심고 가꾸며 소일하는 것이었다.

오늘 같이 볕 좋은 날 아버지는 따스한 봄바람 되어 이 막내의 뜨락에 피어 있는 어느 꽃잎에 내려와 계실 것으로 생각하면 그 옛날의 모습들로 인해 가슴이 시리다.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은 아버지에게 나는 몇 개라도 고향집 텃밭 꽃을 보여드리고 싶어 한다. 새잎 나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설렘이 시작되면 산새가 우짖는다.

흔히 홍화(紅花)라고 칭하는 잇꽃 순우리말은 아니지만 ‘잇꽃’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정감이 가는 데다 꽃 자체의 소박하면서도 은근한 화려함에 끌린다. 한 때 우리네 여인의 전통 화장(化粧) 방법 중의 하나였던 연지곤지의 실체와 천연염색 재료로서의 쓰임새이기도 했다.

꽃 자체의 매력도 빼 놓을 수가 없다. 개화할 때는 노란색이었다가 점차 빨간색으로 바뀌어 가는 오묘한 변화가 있고 꽃봉오리가 마치 털모자의 방울처럼 예쁘고 귀엽게 생겨 이리저리 매만지며 촉감을 느껴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봄이 되면 꼭 아내를 위함이 아니더라도 고운 빛깔의 꽃차를 준비해 찾는 이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 아니겠는가. 1년생의 대부분 화초들은 굳이 새로 파종하지 않아도 땅에 떨어진 씨앗들이 겨울을 나고 스스로 싹을 틔워 주인의 수고를 덜어주지만 무성히 번지는 잡초 때문에 옮겨 심거나 제초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예외는 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바람에 실려 와 자리를 잡은 존재들, 이를테면 봄까치꽃, 광대나물, 꽃다지, 제비꽃 같은 야생화들은 행여 밟힐까 조심하며 가능한 대로 돋아 난 그 자리에서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 그런 수고 덕분으로 여전히 벌 나비가 날아 와 반갑고 푸르러지는 꽃나무들에 새들이 찾아와 서로 공존하며 봄날을 구가할 수 있음에 기뻐한다.

요즘 같은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에 한가한 꽃 타령이나 하면서 너무 유유자적하며 사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아니냐는 자성도 없지 않지만 꽃과의 자유로운 생활을 통해 조금이라도 마음 밝아지고 진솔해지며 포용력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한 가치 실현 아닐까. 다만 꽃과의 일상이 내 삶에 뭔가 생산적인 것으로 기여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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