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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인의 진도시론 /팽목항 세월호 추모관 보존 공론화 해야
박남인의 진도시론 /팽목항 세월호 추모관 보존 공론화 해야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07.1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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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바닷바람이, 세상의 모든 숲과 나무와 강물에게 알려준 슬픔을.(도종환 시인)

 

7년이 지났습니다. 진도 앞바다에서 그날 4월 16일 아침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세월호가 맹골바다 수로를 지나다 침몰하여 수백명의 학생 여행객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이에 지구 인류가 함께 울고 함께 기원하며 안전을 위한 소망의 등을 띄우고 수많은 사람들은 팽목항 방파제 끝 하늘나라 우체통으로 간절한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서울 광화문에도 세월호 유가족콰 수많은추모객들 진상규명을 욕구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재학생들은 세종대왕 동상에 올라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진실을 규명하라고 강력하게 규탄하였습니다. 진도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모든 민속공연이 중단되고 관광 여행지는 꽃샘추위만 멤돌 뿐이었습니다. 진도산 해산물은 외면되었습니다. 최근 소설가 김훈(원형의섬 진도. 칼의 노래 저자)씨를 비롯한 유명 문화인사들이 광화문의 그 뜻깊은 장소를 존치하라는 의견을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가 이낙원 후보는 사고 당시부터 진도 팽목항을 찾아 위로하고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출되기를 간절히 기원하였습니다. 팽목항과 진도읍 실내체육관 임시 숙소는 가족들의 아비규환으로 넘쳐났습니다. 나는 그 길을 매일 지나며 그 아픔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헬기가 오르내릴 때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진도사람들과 학생들. 그리고 7년. 지금 진도군은 이곳에  진도항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팽목항 대책위원회와 갈등을 빚으면서 군민들에게 우려를 갖게 하고 있습니다. 곧 제주간 여객선이 취항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도 배후 개발지는 공사가 한창 중입니다. 비록 이제 이곳을 찾는 추모객들이 당시 과거와 달리 북적거리지는 않지만 온 세계인의 가슴 속에 우리 국민 촛불민주혁명의 주체 시민들에게는 결코 잊히지 않는 성소이자 새로운 투명한 세상. 진실이 감춰지지  않는 민주사회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추모장소인 것으로 깊이 인식되어 있습니다. 현 진도군수는 자연스레 내년 12년간 3선 임기를 마치고 명예로운 퇴임을 하게되었습니다. 진도항 개발과 관련한 여러 불미스런 반목과  갈등 그리고 석탄재 매립사건은 극단적인 불신과 대립 반대로 이어져왔습니다.

우리 민족은 기억과 기록에 대해 다른 나라 민족보다 더 치열하게 보존 전승하는데 소홀한 점이 없지 않았다. 물론 고려대장경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문중 중심으로 조상들의 소중한 삶의  궤적들을 분실하지 않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전란을 통해 문화 역사유산을 손실하였으며 때로 사대주의와 식민지 왜곡사 인식이 아직도 잔존하여 우리를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진도에는 오래 전부터 우리민족의 오롯한 정신과 철학이 깃든 민속의례가 전승되어오고 있어 큰 위로와 자긍심을 갖게합니다. 1만년 빙하기 때부터 내려온 마고성의 율려가 진도 내의 여러 굿 행위에 남아있다고도 합니다. 진도군은 이를 바탕으로 상장례를 묶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진도 세월호는 명량대첩 이후 왜군들에 의한 살륙의 현장인  정유재란 순절묘역 유적과 고군면 내동마을 왜덕산의 인도주의는 진도의 또 하나 소중한 유산자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단지 대립과 고립으로 치닫치 않고 외적을 만나 싸울 때는 일기당천 사즉필생으로 목숨을 걸고 나섰으며 지난 7년 전 맹골수도에서 세월호가 침몷하였을 때 동거차도 서거찯 맹골도 관매도 대마도 등 인근 섬 주민들은 바쁜 미역발 작업도 뒤로하고 내 일처럼 나서 수많은 어린 학생들을 구출해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미흡한 대처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조명탄이 쏟아지고 처참한 시신들이 떠오를 때마다 비명과 오열이 터지던 진도 팽목항. 지금 진도 팽목항에는 작은 추모관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 마저도 진도군은 철수하겠다고 전기와 수도를 끊겠다고 예고하기도 해습니다. 시민단체와의 진심어린 대화가 필요합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반드시 왜곡되기 마련입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운 대한국인 안중근을, 여천 홍범도를, 윤봉길의사를 이충무공과 일만의총, 가장 어려운 시대에 의병과 군사들이 된 백성들, 항일운동에 목숨걸고 투신한 수많은 선조들의 피어린 독립운동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아무나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독재와 왜곡이 되었다며 이 정부에 책임을 덧씌우는 이들은 지금까지 누구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해왔습니까?

이제 와서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내세우는 이들.

내년 진도군수에 나설 예비후보들도 때가 되면 팽목항과 관련해 자신만의 소신과 해법을 밝혀야만 할 것입니다. 대통령이, 지자체 군수가 흘러간 조폭영화 제목을 닮은 ‘가문의 영광’이나 입신양명으로 치부하거나 비전을 갖지 못하는 후보는 엄혹한 진도군민들의 선택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로부터 하늘이 큰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련을 겪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시대의 문화나 사회경제는 새로운 상상력과 독창성을 절대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공연도, 먹거리문화도, 스포츠분야, 미술전람회 등 이 모든 것도 입고출신(入古出新) 정신을 바탕으로 진도만의 대동세상 전통을 이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한시라도 주저하면 침몰히게 됩니다. 슬픔도 분명 역사인 것입니다. 진도군에서 수집 발행한 진도 세월호 백서에 실린 여러 자료들을 정리하여 전시해야 합니다. 진도군의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노력도 잊지않아야 합니다. 그 많은 추모시들은 어디로 가 있는가? 세월호가 인양되고 진도를 떠났다고 해서 기억과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1597년 가을의 빛나는 대첩, 그 의연한 명량의 노호같은 물결이 단 하루도 그친 적이 있었는가요? 서망항에 국립해양안전관 설립도 필요하지만 작은 공간 하나를 마련할 줄 아는 진도인의 휴먼사상 대동세상 해원과 서로  나눔 씻김정신이 명륜의 높은 민중의식이 전세계적으로 발현된 장소로 길이 남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진도호는 끊임없이 항진해야 합니다.

진도만의 의례가 해마다 그 현장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추모관은 결코 햠오시설이 아닙니다. 진도군민들의 중지를 모으고 미래지향적인 장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박남인)

*진도말에는 오래 전부터 사림 인칭에 ‘바;와 ’단이‘라는 접미사를 즐겨 썼습니다. 50대 이후 진도사람들은 어린시절 그런 애칭으로 불렸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바는‘ 사내들에게, ’단이‘는 여자아이들에게 붙여 불렀습니다. 언어연구자들은 진도말이 고어에서 상당한 존칭어에 속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춘향전 판소리에도 단이가 춘향이 몸종 향단이로 나온다.

큰놈 작은 놈, 시바 니바 오바 등으로 불려 유독 오바가 많았습니다. 다산의 결과일 것입니다. 단이는 다양하게 쓰였습니다. 꽃단이, 시단이, 둘째는 ’장가‘라고 불렀습니다.

떡을 잘 먹으면 ’떡바‘, 소포리에서 온 여자에게서 난 아들은 소개바라고 했습니다. 비끼내바.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그 부모님들로부터는 소중한 바와 단이였을 것입니다. 여학생들은 말 그대로 꽃단이.

세기의 배우였던 오드리 헵번의 아들과 가족이 진도 팽목항을 방문하고 백동 3거리에 평화의 나무.

세월이 흐르고 그 벤취 아래 낙엽이 떨어지고 우리들의 사랑마저도 사라진다해도

나는 잊지 못하네.

진도는 늘 이상향이었다. 삼별초가 허균의 혁명장군 홍길동이 찾았던 율도국이었다. 여귀산은 마고성이었다. 회동앞바다는 바이칼호였다. 명량은 거대한 해자였다.

80년대 박노해가 어두운 공장의 뒤뜰에 달빛과 소주에 씻어 묻던 손, 가진자들의 탐욕의 칼날 프레스에 잘린 푸른 손. 팽목항에 오늘도 달은 떠오르지만 아무런 진실도 드러나지 않고 그들만의 카르텔은 여전히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그들만의 쿠데타를 음모한다.

아파트의 지식인들은 교수들은 매우 수사적인 발언과 해석으로 가면을 쓰고도 동요한다.

촛불은 아직도 꺼지지 않는다.

장죽수로 무인도마다 후박나무들이 푸른 손짓을 하던 그날. 서망 관제탑은 제 스스로 취해 기록을 멈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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