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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수 전남대 명예교수 100번째 책 ‘진도’ 펴내
나경수 전남대 명예교수 100번째 책 ‘진도’ 펴내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1.07.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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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민감했던 역사적 환경…“喪葬문화 발달”

 

                                                                    <상장:장사와 관련된 예식> (나경수 진도학회장. 전남대 명예교수)
 “전란·해난사고 많이 겪어 보수·개방·창조성 복합문화 집약”
 “진도의 문화는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자연환경은 아름답지만 역사적으로 전쟁과 해난 사고를 많이 겪었다. 다시 말해 죽음과 관련된 상장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맥락이 있었다.” 진도 출신 나경수 전남대 명예교수는 고향을 떠올릴 때면 “늘 애달프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죽음’에 훨씬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상흔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나 교수는 “가깝게는 세월호 침몰이 있었고 동학의 마지막 전쟁도 진도에서 벌어졌었다”며 “구 삼국시대에는 왕건의 점령을 비롯해 고려시대 때는 몽골군에 맞선 삼별초의 항쟁이 있었다”고 부연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예술의 고향, 민속의 고장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다. 진도를 많이 연구한 이가 아니면, 직접적으로 진도가 탯자리가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는 ‘한’과 트라우마에 대한 요인들을 명징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나 교수가 100번째 저서 ‘珍島’(민속원)를 펴냈다. 현재 진도학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금까지 연구와 교육 그리고 현장을 누비며 다양한 연구 논문과 책을 발간했다. 이번 100번째의 책은 그러한 연장선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책 표지에 이름이 들어가는 100번째 책으로 고향을 담고 싶었다. 용기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간에 써놓은 글을 정리하는 정도지만 교정을 보면서 느낀 것은 참 시야가 좁았다는 자책이다.” 학계에서 인정받는 ‘민속학의 권위자’인 그가 스스로 “시야가 좁았다”는 자책을 하는 것은 그만큼 진도 문화와 예술을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일 게다. ‘진도지역의 지정학적 배경과 민속문화적 대응’이라는 부제처럼, 이번 책에는 오늘날의 진도문화를 형성하게 된 자연적 배경과 그것과 맞물려 민속문화가 달하게 된 연유 등이 담겨 있다.

나 교수가 생각하는 진도의 문화는 “보수성, 개방성, 창조성으로” 집약될 뿐 아니라 “수많은 문화 요소의 복합적 총체”이기도 하다.  먼저 보수성에 대한 사례로 상가집에서 펼쳐지는 ‘다시래기’를 들 수 있다. 전통적 규범으로 보면 다시래기는 야만적 문화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다른 측면에서는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풍속으로서 타당성을 지닌다”며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춘 민속문화가 유독 진도에서는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이 보수적 특징과 연관된다”고 말한다. 

진도 문화의 특징인 개방성의 관점에서는 대표적 민속 놀이인 진도북춤을 든다. 전국적으로 두 손에 북채를 들고 양북을 치는 곳은 흔치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부분은 전문적 유랑연예집단인 남사당패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며 “양북을 치면서 멋진 춤사위를 구사하는 진도북춤은 진도 고유의 창안이라기보다는 예능적 감수성이 예민한 진도인들의 수용적 능력과 직결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창조성의 사례로 서화적 전통을 꼽는다. 서화는 예술의 반열에 들기 위해서는 “습작이나 모방이 아닌 창조의 세계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 교수가 지금까지 민속학을 공부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휴전선 부근에서는 새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새들처럼 자유롭게 남북을 오갈 수 있는 비결을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국토통일도 있고 민족통일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문화통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웃 해남출신 시인 황지우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면서 유신시대를 풍자하던 시절이었다.
 제대 이후 민속학으로 방향을 틀게 된 이유다. 당시에 지금은 고인이 된 ‘민속학의 대부’ 지춘상 교수가 국문과에 재직하고 있었던 덕분에 자연스럽게 민속학을 공부하게 됐다.

오랫동안 민속학을 연구하고 가르쳤지만, 지금의 민속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분히 ‘서양적’이라는 점은 못내 안타깝다. 학술적으로 19세기 영국에서 태동한 포크(folk)가 민속학이다. 그러나 동양의 관점에서는 민속학은 ‘현재의 학문’이다. 그에 따르면 ‘예기’에는 벌써 2500년 전에 동양의 민속과 문화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는 것이다. 나 교수는 “동양의 전통적인 민속 개념을 살려 과거의 문화가 아닌 현재의 관점으로 민속학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며 대부분의 문화가 서양 위주로 돼 있는데 민속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지금까지 민속과 관련된 무형문화재에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앞으로는 문화재보호법상 민속문화재에 관심을 더 가질 예정이다. 유형문화재는 고유명사적 성격이 강한데 반해 민속문화재는 보통명사적 성격이 강하다는 얘기다. “옛 조상들이 썼던 호미, 온돌, 지게, 장독대 등은 우리를 먹여 살린 보통명사적 성격이 있지 않는가. 민속문화와 관련된 우리의 호미와 온돌이 다른 유형문화재에 비해 위대하지 않다는 생각은 선입견일 뿐이다.”(박남인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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