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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세월호와 진도, 그리고 나
4·16 세월호와 진도, 그리고 나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7.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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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보건소 죽림보건진료소 김명수 진료소장

진도는 섬이다. 비록 다리가 해남과 놓여있지만 여전히 바깥 사람들에게는 섬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난 2015년 4월 16일 아침 세월호는 인천을 출발하여 제주도를 향해 가던 중 진도 앞바다(정확히 조도면 맹골수도 앞)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해 수많은 인명이 수몰되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 배에는 당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수백 명이 수학여행을 가던 중으로 꽃다운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였다. 전국의 국민들은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TV로 생중계 되는 가운데 배는 속절없이 맹골바다 깊은 물결 속으로 거대한 선체가 뒤집어 침몰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날 진도 연안의 수많은 어선(서거차도 동거차도. 맹골도. 대마도 신전리 등)들이 달려가 인명구조에 매달렸다. 그나마 이로 인해 많은 인명들이 소중한 목숨을 구할 수가 있었다.

팽목항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통곡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진도군은 즉각 세월호 인명구조 비상대책반을 꾸려 현지 팽목항과 가족들이 속속 모여드는 진도읍 공설운동장 실내체육관에 봉사단체를 배치해 적극 구조에 나섰다.

나도 진도군보건소 소속 공직자로서 당연히 임회면 팽목항에 다른 동료들과 함께 배치되어 봉사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 해 봄에는 유난히도 추웠다. 4월 16일이면 진달래가 한창 피어날 때쯤이었다. 하지만 꽃게 파시로 유명한 서망항과 팽목항 뒷산은 아직도 동백꽃이 그대로 맺혀 있다가 소리없이 툭 툭 떨어지곤 하였다. 밤 중에는 더더욱 바닷바람이 귀를 시리게 하였다. 전쟁터처럼 장죽수로 건너 캄캄한 바다 위로는 조명탄이 연속 터트려지며 구조대원들을 독려했지만 생존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날마다 늘어나는 것은 실종자 미수습자 시신들 뿐이었다.

진도군은 3만 여 명의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들어 구호봉사 활동에 나섰다. 각종 종교단체, 사회단체 소속원들은 교대로 밤을 지새우며 진정어린 헌신하는 모습을 흐트러지지 않고 내보였다. 전국에서 몰려온 봉사단체도 마찬가지였다.

진도군에서는 진도읍과 팽목항을 왕복하는 버스를 무상으로 배차 운영하였으며 누가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진도 택시기사들은 안산지역 주민들, 가족들에겐 무료로 팽목항은 물론 안산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다. 이런 봉사 활동에 적극 나섰던 진도사랆 중에는 극심한 과로로 인하여 문명수 목사와 정성도씨가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가 문 목사는 제대로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소설가인 곽의진씨도 그 와중에서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진도는 예로부터 의향으로 불렸다. 비록 섬사람들이지만 호국 자주정신이 드높아 고려시대에는 삼별초 항쟁이 진도 용장산성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며 1597년 정유재란 당시에는 진도의 관문이었던 벽파와 녹진 사이 바다에서 불멸의 명량대첩을 이뤄 백척간두에 선 조국을 수호하기도 했다. 지금도 벽파항에는 이충무공 전첩비가 거대한 비석으로 세겨져 일본 대마도를 바라보며 이 바다를 지키고 있다. 노산 이은상 시인은 “이 바다 지나는 이들 이마 숙으시옵소서”라며 그날의 믿지 못할 승전을 노래하고 있다.

이 대 진도사람들은 아낙네들은 의병전술로 녹진 망금산에 올라 군복을 입고 강강술래를 하였으며 남정네들은 자진하여 싸움에 나서 지금까지 진도 고군면 도평리 산 북향에 수많은 무명용사들이 정유재란순절묘역에 누워 있어 매년 초가을이면 진도문화원은 이곳을 찾아 제례를 모시고 있다.

벌써 5년이 지났다. 학생들은 헬리콥터가 뜨면 공부를 하다 귀를 막고 또 다른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하였으며 많은 상가들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파산에 이를 지경이었으나 아무런 호소도 하지 못한 채 냉가슴을 쳐야만 했었다.

구조활동에 나섰던 조도 연안 어민들은 고기도 잡지 못하고 기름유출에다 조명탄 발사로 고기들이 다 도망간 바다 수면에 미역, 톳, 전복양식이 망쳐버려 수년 째 한숨만 쉬고 있는 가운데 세월호가 인양되어 목포신항으로 옮겨가자 정부도 국민들의 시선과 관심도 사라져 더욱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다고 한다.

저는 다시 지난 5년 간을 되돌아보니 이 또한 시대의 모순과 적폐를 청산키 위한 운명의 과정은 아니었는지 되새겨 보기도 한다. 이제 눈물과 울음이 그치지 않던 팽목항은 추모관 설립과 해양안전시설이 들어설 계획 아래 진도항으로 새로운 동북아시아 허브항으로 발돋움하는 작업이 시작되고 있다.

진도는 세 개의 바다가 존재한다. 해마다 수십만 명이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만남의 기적을 일으키는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열리는 회동바다와 대한민국의 승리가 시작되는 곳 명량의 바다에 이제 왜 우리 민족이 한 몸으로 한 마음으로 공동체의식이 살아있는 저 세월호 팽목바다 그것이다.

바다는 생명의 시원이다. 섬은 그 자체로 그 나라의 영역을 굳건히 표시하는 부표의 역할을 한다. 진도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금새 망각의 바다에 잠기고 말지만 진도사람들은 스스로 원하지 않은 상처를 달빛에 물들이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2019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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