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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친절한 작가들 장근헌의 시화전시 ‘돋보이네’
매우 친절한 작가들 장근헌의 시화전시 ‘돋보이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7.1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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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친절이 부담스러워질까? 예술은 본질적으로 친절보다는 거북스러운 것이다. 현실을 뛰어난 통찰과 무한 자유를 질주하는 표현 앞에서 형상은 때로 거추장스러워 지는 것이 당연하다. 회화성이라는 본절적 기능까지도 표피에 불과하다.

시인들을 만나는 것은 축복이지만 때로 저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시인은 꿈을 꾸지만 그 꿈 속의 이상향에 닿기 위해서는 현실의 항구를 파괴해야 한다. 붓은 늘 창조와 거부라는 레일 위에서 망나니처럼 춤을 춘다.

태연과 자족을 가장한 저 치열한 담박화. 화두는 꽃처럼 지고 말 뿐.

시가 있었고 그림이 있었던지 그림 속에서 시가 한 모금의 차와 같이 우려나온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우주는 본디 물방울의 인장력을 갖고 있다고 했던 이는 누구였던가.

항산 장근헌 화백의 시화집 그림들은 소네트와 같은 시구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라고 했던가.

피를 토하듯 장구를 치는 시인. 그는 벽이 아닌 물을 바라봅니다.

수행이 바르지 못하면 썩은 소나무 뿌리만도 못하다고 어디서 주장자가 날아올지 모릅니다.

그림속에서 이상주의는 없습니다. 아무리 모던하게, 아무리 포스트하게 선묘에 취한다해도 ‘이상은 현실’이라고 한 헤겔의 서문은 기어코 21세기의 문턱을 건너왔습니다. 현실과 이상은 대립각이 아닙니다. 모든 이상은 현실에서 출발하기 마련입니다. 현실 또한 그 자체가 하나의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대장경의 판각 맛을 담은 사화집. 낱장이어도 상관없을 것입니다. 어느 퇴락한 선방에 잠시 다녀온 글씨들. 그 스님이 새벽 달빛을 길어 북북 긁어 먹었던 바리떼 결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예술의 꿈은 무엇일까? 우문에 무슨 답이 하나일 수는 없겠지. 인생이 곧 한바탕 꿈이라 하였으니 예술을 하는 자 무엇을 서두를 게 있는가. 초조심은 오히려 붓끝은 무디게 하고 뜰 앞의 나뭇잎을 쫒지 못한다.

오직 간결한 것만이 남아 풍화(風化)를 기꺼이 체화하고 각인함으로써 흔들림을 붙잡는다.

누군가는 장강(長江)의 흐름같은 서사시를 세상에 풀어놓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일촌광음을 붙잡아 오천년의 향기를 새긴다. 누가 더 나은 것을 견주려 하는 것은 어리석다.

세상에 사연은 많다. 버려야 할 사연과 좀 더 정성드려 닦아야 할 사연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 달려있다는 그 마음까지 가을 아침 오동잎으로 지게 하고 비를 들어 짐짓 제 그림자를 쓸고 있는 선사의 뒷 모습 위에 홍염의 달을 던진다.

이팝나무 꽃이 집니다.

산골 어느 저녁시간

밥 흔 그릇이 금방 비어집니다.

먹어도 한 그릇

안 먹어도 배부른 한 그릇

빈 그릇을 들고

일어선 어머니 얼굴

산마루에 차려진

밥 한 그릇

둥근 얼굴이 휘청거립니다.

이팝나무 꽃이 피었다

날마다

이팝나무꽃이 집니다.

-산 골 오월

어린이들은 쉽게 용서합니다. 그래서 쉬이 다치지 않는 듯합니다. 어른들은 제가 스스로 상처를 새기며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보는 것 만으로 용서가 다 되어버리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모음자로 어깨동무를 한 시 한 구절.

아무리 깊은 산속이라도 그래서 물이 마르지 않는 건가요. 새들이 다 쪼아먹었을 것이란 첫 샘물에 고이는 화두를 조심스레 길어온 시인이 스님께 공양합니다. 그 안에 목어가 살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요. 지난 겨울에 더 정정해진 동백나무는 슬며시 구실잣밤나무 꽃그늘로 걸어갑니다.

사천리에 솟대를 세웁시다. 마을청년들의 키큰 꿈이 담긴 솟대를 세웁시다. 운림산방으로 가는 길이 너무 쓸쓸합니다. 장승거리 구르마길은 험상궂은 대장군들이 힘없이 쓰러져가고 있습니다. 여장군도 자꾸 주저 앉아 오줌이나 쌀 요량입니다.

이곳은 본디 벅수 거리입니다. 돌로 만든 벅수를 복원합시다. 쌍계교도 더 운치있는 이름을 얻어야 합니다. 물이 합수되는 곳은 ‘작은 냇가 다리’ 쪽입니다. 내 아비가 유월 염천에 멱을 감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 많던 가재와 다슬기도 좀체 보이지 않습니다. 하천은 자꾸 물길을 바로잡고 손을 댈수록 물은 더 빠르게 흘러가버립니다. 고일 곳들은 다 석축이 가로막았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시냇가를 찾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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