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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작은 항구 “쉬미항에는 엄마가 있다”
진도의 작은 항구 “쉬미항에는 엄마가 있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2.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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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작은 항구 ‘쉬미항’, 이곳에 부지런히 미명을 밝히는 가족이 있다. 어부로는 아직 “유치원생”이라는 아들 강수범(39) 씨와 40년 넘게 배를 탄 베테랑 강의만(79), 김옥순(74) 씨 부부가 함께 고기를 잡는다. 아들 수범 씨는 8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식당을 운영하는데 엄마와 큰누나 강선아(51) 씨가 수범 씨를 도우려 식당에 일손을 보탠다.

사실 수범 씨가 운영하는 식당은 40년 전 일찌감치 어머니가 터를 잡은 곳. 옥순 씨, 어린 육 남매 키우려 쉬미항에 선술집 열고 남편과 고기 잡느라 억척 엄마가 되었다. 고기 잡다가 남편의 손가락이 롤러에 끼여 가슴 철렁한 적도 있었고 40년 넘게 배를 타니 안 아픈 곳이 없으나 이젠 저마다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는 자식들은 부부의 보람이었다.

그런데 “바다가 싫다”라며 떠났던 막내아들이 돌아와 곁에서 식당 일은 물론이고, 부모님을 도와 바다에서 힘쓰는 일을 도맡는다. 옥순 씨, 그런 아들이 마음 쓰여 종일 아들 곁을 맴돌며 일을 찾아내는데…. 아들 식당의 수조를 청소 해서 고기 잡아 넣어주고 전복장, 게장에 된장까지 담그고도 다음날이면 새벽잠을 깨우고 일어나 아들 식당의 장사 준비를 돕는다. 그러면서도 옥순 씨, 자나 깨나 아들이 힘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옥순 씨는 가난했던 집안의 8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었다. 시집가기 싫어 봤던 맞선만 무려 스무 번, 스물셋에 중매로 진도 총각 강의만 씨와 결혼했다. 이듬해 큰딸 강선아 (51)씨를 낳았을 때 옥순 씨는 ‘딸 둘에 아들 하나 낳으면 딱 좋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줄줄이 딸 넷을 더 낳았고 다섯째 딸을 낳고는 눈물도 안 나왔더랬다. 그렇게 자존심 때문에 오기로 낳은 아이가 막내아들 수범 씨이다. 그런데 옥순 씨에게 아들 수범 씨는 유달리 아픈 손가락. 보기만 해도 닳을까 아까웠던 막내아들이 열아홉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오른팔에 있는 신경이 세 개나 끊어지고 쇄골은 으스러졌었다. 수범 씨는 병실을 지키며 남몰래 눈물 훔치던 엄마를 위해서라도 힘을 냈고 의사도 혀를 내 두를 정도의 독한 재활 끝에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수범 씨, 회복 후엔 쉬미항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이 알고 싶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도 갔었고 도시에서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요리사로, 커피숍 사장으로도 일했었다.

늘 쉬미항을 떠나고 싶었던 수범 씨가 ‘배’라면, 엄마는 아들을 기다리는 ‘항구’였다. 옥순 씨는 객지에 나간 아들이 다쳤던 팔 때문에 힘들까 또 팍팍한 도시 생활에 상처받지는 않을지 항상 걱정이었다. 그런 엄마가 마음에 걸렸던 맏딸 강선아(51) 씨“어머니의 식당을 네 것으로 만들어봐라”라며 막내 남동생을 쉬미항으로 불렀다. 마침 인천에 있던 가게를 정리하고 큰누나 말을 듣고는 고향에 숨돌리려 내려왔었다. 그런데 쉬러 왔던 것이 한 달, 두 달 흘러가더니 어느새 8년. 고향으로 돌아와 연로해진 부모님 모습을 보니 떠날 수 없었다. 그렇게 엄마의 바다에 닻을 내리게 된 아들. 수범 씨는 어머니의 선술집 자리에 파스타 식당을 열고 쉬미항하고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커피머신도 가져다 놓았었다. 해만 지면 암흑천지로 변하는 항구, 깜깜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화려한 네온사인과 매일 만나던 친구들이 그리웠다. 그럴 때면 홀로 쉬미항을 탈출해 목포 시내로 달려나간 적도 있고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식당 문을 닫고 두문불출했었다.

그래서 보다 못한 엄마와 큰누나가 의기투합해 “양식집 말고 한식집을 열어 같이 가게를 꾸려보자”라며 수범 씨를 설득했고 2년 전, 과감하게 파스타 대신 한식으로 업종 변경을 했다. "반찬 만드는 것은 자신 있으니 우리가 도와주마"하고 소매를 걷어붙인 모녀 그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수범 씨의 좌청룡, 우백호다. 그렇게 엄마는 새벽 4시면 출근해 아침 장사 준비를 하고 큰누나 선아 씨는 “설거지 아줌마”를 자처하며 동생의 일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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