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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진도엔 집집마다 북장구 풍류넘치는 곳-“서울법대 다니다 운명적으로 국악에 빠졌죠”
고향 진도엔 집집마다 북장구 풍류넘치는 곳-“서울법대 다니다 운명적으로 국악에 빠졌죠”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3.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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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석 교수

진도는 인물 특히 예술인 창작소로 자리잡은지 오래이다. 20세기 후반부터는 민속이 그 주류를 이루며 세계인이 즐기는 풍속의 고장으로 알려졌다.

국립창극단의 신작 ‘리어’를 작창한 한승석 중앙대 교수. 작창은 판소리 다섯 바탕을 기본으로 민요 정가 등의 소리를 스토리와 캐릭터에 따라 전통 장단과 음계에 맞춰 새롭게 짜는 것으로 한 교수는 손꼽히는 작창가다. 올해 국립창극단이 작창가를 발굴·육성하기 위해 시작한 ‘작창가 프로젝트’에 멘토로 참여한다. 2010년대 들어 국립창극단은 다채로운 창극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덕분에 노인들이나 보는 고리타분한 장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창극이 공연계의 핫한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새로운 창극을 위해 창작진을 구성할 때마다 국립창극단의 고민은 늘 작창가의 부족으로 귀결된다. 작창은 판소리 다섯 바탕을 기본으로 민요 정가 등의 소리를 스토리와 캐릭터에 따라 전통 장단과 음계에 맞춰 새롭게 짜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작창을 할 수 있는 작창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판소리 민요 무속음악 타악까지 두루 섭렵한 전방위 국악인 한승석(54)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는 늘 섭외 0순위 작창가다. 한 교수는 국립창극단에서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과 콤비를 이뤄 ‘변강쇠 점 찍고 옹녀’(2014년 초연) ‘귀토’(2021년 초연)를 흥행시켰다. 오는 17~2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국립창극단 신작 ‘리어’에서 작창을 맡은 한 교수를 만났다. “작창을 잘 모르는 사람은 ‘노가바’, 즉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처럼 기존 다섯바탕에서 가사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만들면 작품의 분위기나 캐릭터에 맞지 않기 때문에 어색해서 들을 수가 없습니다.” 작창가는 판소리 다섯바탕을 비롯해 다양한 소리를 알아야 대본과 캐릭터에 맞는 음과 박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 아무리 소문난 명창이라도 작창까지 잘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작창에 대한 한 교수의 자부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제로 국악계에서 그는 ‘작창의 신’, 제자들 사이에선 줄임말인 ‘작신’으로 불린다. 별명만 보면 예인 집안 출신 같지만 그는 서울대 법대 입학 후 뒤늦게 국악을 시작했다. 다만 ‘민속문화의 보고’ 진도에서 자라 어릴 때 국악을 접한 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제가 어릴 땐 진도의 집집마다 장구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어요. 대나무 깎아서 장구채도 많이 만들었죠. 우리 집 마당에서 김대례 선생님의 씻김굿이나 조공례 선생님의 입춤을 보고 자랐습니다.” 김대례(1935∼2011) 조공례(1925∼97) 선생은 모두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다. 흔히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이들과 같은 지역에 살며 그는 초등학교까지 다녔다. 신동으로 소문났던 그는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뒤 서울대 법대 87학번으로 입학했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선배 소개로 전통춤 동아리 ‘한사위’에 들어간 게 그를 국악의 길로 이끌었다. “동아리 안에 장구가 있어서 쳐봤는데, 몇 년 만에 채를 잡았지만 꽤 쳤던 것 같아요. 따로 배운 적 없어도 다양한 주법을 구사할 수 있었고, 그게 계기가 돼서 국악에 계속 빠져들었습니다. 제대 후 김덕수사물놀이패를 찾아가 김덕수 이광수 선생님에게 사물놀이와 비나리 등을 배웠습니다.”

법조인의 길 대신 프로 국악인으로 그는 1994년 사물놀이패 ‘이광수와 노름마치’ 창단멤버로 프로 국악인의 삶을 시작했다. 판검사 아들을 기대했던 부모의 실망은 컸지만 국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명창 임방울의 ‘수궁가’ 음반을 듣고 판소리에 매료된 그는 2년간 수천 번 반복해 들으며 판소리를 독학했다. 95년 1월 그의 판소리를 들은 안숙선 명창의 제안으로 안 명창을 사사한 데 이어 명창 성우향에게도 배웠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한국음악을 전공한 그는 2007년 ‘적벽가’를 시작으로 2012년 ‘춘향가’까지 1년에 한 바탕꼴로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완창했다. 그가 작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98년 국립창극단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남자 소리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제가 운 좋게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5년간 활동할 수 있었죠. 당시 신인이라 작은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작품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때 작창이나 국악기 활용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박남인 정리)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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