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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X파일, 폐기하려 했는데 민주당이 반대"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국민의힘은 폐지하자 했었다"
 "국정원 X파일, 폐기하려 했는데 민주당이 반대"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국민의힘은 폐지하자 했었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6.1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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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X파일'을 언급해 국정원으로부터 공개 반발을 받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재직 당시 X파일 폐기를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내가 괜히 X파일 언급했다고? 잘하지 않았나?"

박 전 원장은 지난 13일 밤 KBS '더라이브'에 출연해 진행자가 '괜히 국정원 시절 정치인 X파일 얘기를 해서 (곤란에 처했다)'라고 묻자 "괜히가 아니다.제가 국정원 60년을 완전히 개혁했다"며 "과거에는 국정원장이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렸는데, 지금은 제가 걸어가도 새가 안 날아간다"고 말했다. 바람이 뿔어서 불이 붙었을 뿐? 박 전 원장은 "이렇게 개혁을 완전히 했는데, '무엇을 못 했냐'고 묻길래 'X파일이 있다'고 한 것"이라며 "이걸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해 없애려고 했는데, 이게 남아있어서 문제가 된다고 했던 것"이라고 했다. 박 전 원장은 "민주주의와 개인정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라며 "언론에서 '옳다. 이것은 과거의 암울한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없애야 한다', '특별법을 제정하자'고 하는 거 보면 제가 잘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국정원장 때 폐기하려고 했는데 민주당 반대…"

박 전 원장은 '국정원장 재직 당시 X파일 폐기를 추진했으면 되지 않았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국정원에) 있을 때 하려고 했는데, 그때는 민주당이 반대했다"며 "국민의힘에서는 하자고 했는데 어떻게 됐든 법을 개정하는 것은 우리는 제안을 하고 국회에서 할 일인데, 합의가 안 됐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저는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고 했다.

"정치인 등 존안 자료 보관 중"…'파장'

박 전 원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정원 X파일'을 언급했다. 그는 국정원이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등의 존안 자료를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는데, 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가운데 박 전 원장은 "국회에서 '의원님들, 만약 X파일을 공개하면 의원님들 이혼당한다'고 했더니 하태경 정보위 간사가 '자기는 그렇게 안 살았는데 원장님 왜 그렇게 말씀하시나. 왜 내가 이혼당하나'라고 했다"고도 했다. 이어 "제가 그랬다. '의원님, 복잡하게 사신 분 아닌가. 한번 공개해 볼까'라고 하니 '아, 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하 의원은 "정치 활동하면서 가급적 고소·고발 같은 것은 자제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이번 박 전 원장의 발언은 너무 심각했다"며 "저와 나누지도 않은 대화를 날조해서 제가 그동안 쌓아왔던 국민과의 신뢰 관계에 치명적 흠집을 냈다"고 했다. 이어 "공직을 통해 취득한 국가의 기밀을 언론의 관심끌기용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며 "오죽하면 국정원에서 전직 원장에게 경고 논평까지 냈겠나. 박 전 원장은 그런 치욕스러운 지적을 당하고도 공개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한다"고 했다.(박종호 기자)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는 주인공 허생이 조정의 사대부들이 실제로는 의지도 없으면서 말로만 북벌을 내세우는 허위의식에 빠져 있다고 비난한다. 허생은 가공인물이기는 하지만 작가 박지원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것은 박지원이 청의 문물을 실질적으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북학파의 일원이었다는 점에서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허생전>은 박지원 당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 허생전>은 박지원의 문집 『열하일기』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가 알듯이 열하일기는 일종의 사행록(使行錄)으로서 ‘북경–열하–북경’의 노정이 담겨 있다. 박지원이 사신단의 일원이 된 것은 8촌형 박명원이 배려해 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는 사신단의 비공식 수행원이었다.흔히 박지원을 ‘실학파’라고 하는데, 사실 실학이라는 학문은 없었다. 실학이 없으니 실학파도 있을 턱이 없다. 물론 당시 북경에 여행하고 와서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배우자고 주장한 일군의 유학자들을 따로 북학파라고 부를 수는 있는 일이다. 윤정부시대 박지원이 <허생전>에서 문제 삼은 ‘북벌의 허위의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효종이 내세운 북벌은 실현되지 않았다. 효종은 청나라의 요청에 의해 나선정벌(조청연합군과 러시아군의 전투)을 수행했을 뿐이다. 북벌을 내세운 효종과 사대부들이 북벌에 진짜 의욕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그들은 ‘북벌’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정국을 안정시키고 민심을 수습하는 데 성공한 것만은 틀림없다. 1780년(정조 4년) 연암 박지원이 건륭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로 청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여행기다. 본디 목적지는 연경(燕京) 이였으나 당시 건륭제가 열하의 피서 산장에 있였기 때문에 결국 열하까지 여정이 계속되였다.

허베이성 북부의 지급시인 청더에 남아있는 그 이궁과 티베트 불교 사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였다. 황제를 따라 열하까지 간 덕에 <열하일기>란 제목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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