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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교사’에서 시대의 거리교사로 / "죽을 때까지 해야제"...
‘촌지교사’에서 시대의 거리교사로 / "죽을 때까지 해야제"...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6.1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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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아픔'과 함께하는 진도 활동가 고재성씨 "저는 1989년 전교조 해직교사입니다. 전교조는 1989년 5월에 가입했는데 탈퇴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해 8월 19일자로 담양 창평고에서 해직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전교조에서 상근하게 됐습니다. 33년 전에 4년 6개월 해직 기간을 인정받지 못하고 94년에 신규채용 형식으로 복직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국가유공자로 인증서를 주었지만 달랑 종우때기(종이) 한 장 뿐이어서 원상회복(밀린 임금 지급과 호봉인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교육을 망치고 있는 현장실습제, 수능 폐지를 주장하고 있고요. 수능폐지 대신 대입자격고사제 도입, 대학평준화, 대학무상교육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고재성. 그는 진도국악고등학교 국어교사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2014년, 진도 체육관으로 바로 달려간 이후 진상규명을 위해 항상 유가족 곁을 지켰다. 그런 그에게는 주제가 많다. 광주 오월항쟁의 목격자, 전교조 초기멤버,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발걸음, 그는 항상 근현대사의 아픔과 함께했다. 세월호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종료된 지난 10일 진도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구수한 사투리를 그대로 옮긴다. 

- 세월호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어요. 얼마 전에 사참위도 끝났는데 어떤 평가를 하시나요? "수사권, 기소권이 없는 식물 사참위의 한계에 대해서 그렇게 문제제기를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침몰 원인도 확정 지을 수 없고, 책임자 처벌도 하지 못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야 했을 일인데, 끝까지 직접 해결하지 못하고 퇴임해버리고.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도 사면해 버리고. 좌절하면서도 화도 나고 합니다."-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에 함께 하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바로 흑산도 동생한테 전화했지요. 언론에서 보도하는 대로 바람이 불어서 파도가 높았다거나 안개가 끼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나자 바로 체육관으로 갔습니다. 목에 명찰을 걸고 있는 사람 두 분한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두 분 다 꽝하는 소리에 놀라 탈출했다고 합디다. 저는 이것은 필시 학살이다고 단정지었습니다."    - 학살이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요. "일단 구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학살이라고 할 수 있고요. 박근혜 정부에서 밝히지 않고, 문재인 정부는 사참위와 검찰 뒤에 숨어버리고 심지어 문재인 정부시절 검찰 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세월호 책임자들을 모두 무혐의로 풀어줬어요. 국민은 먹먹하고 권력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만 봐도 학살 아닌가요?"  

- 전교조 활동은 언제 시작하신건가요? "89년 7~8월 명동성당에서 단식투쟁에 참가해서 8월 19일자로 담양 창평고에서 해직되고 전교조 상근을 시작했지요. 그 전 87년 유월항쟁 때 아침에는 학교로 출근하고 학교가 끝나믄 학교 선생님들 몇 분과 금남로로 출근했지요. 거기서 막걸리도 많이 마시고 최루탄도 맹씬 마셨답니다. 한 번은 전일빌딩 근처에 있다가 백골단한테 쫓겨 도망가다 넘어져 오른쪽 구두 잃어불고 양복바지 물팍께는 찢어지고.... 제가 사실 처음에는 문제 많은 교사였습니다. 담양 창평고에 87년에 처음 가서 첫해는 폭력교사였고, 둘째 해는 촌지 교사, 89년에는 제 손으로 학생을 제적시킨(학교를 거의 나오지 않아 교감이 정리해라고 압력)적도 있었지요. 촌지도 받아봤어요. 그러다보니 아이들을 편애하는 모습에 엄청난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그때 아이들에게 고백을 했어요. 내가 작년에 돈의 노예가 되어 촌지를 받았다고. 절반은 제가 쓰고 절반은 아그들한테 써묵었거든요. 올해는 절대 안 그럴 테니, 그러지 않게 부모님한테 가서 말하라고. 그리고는 안 받았습니다. 아 딱 한번 받았습니다. 중남이 할아버지가 소주 한 잔 걸치시고 만 원 주시면서 나 무시허요? 받으시오. 하시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서 중남이 영한사전 사줐어요.“

8년동안 세월호에 대해서만 이야기 나누다가 처음으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 한사람 마다 그 안에 우주가 있다는 이야기처럼 그의 인생에는 흥과 분노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 별과 같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낡은 자동차 트렁크에서 교육, 사회 국가의 문제에 해결을 요구하는 이야기가 담긴 피켓을 꺼내들고 진도 작은 거리에서 피케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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