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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아리랑’ 문화재 되었다!”
“‘진도아리랑’ 문화재 되었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7.2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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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삶의 경전인 사람들

신명으로 깨달음에 닿는 진도사람들

 

진도아리랑의 민속문학적 자질과 특징을 구술문화의 산물, 삶의 문학, 통속성과 근대성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진도아리랑은 구술문화의 산물이다. 진도아리랑의 기원에 대해 다양한 담론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기록문학과는 달리 확정할 수 있는 기원이 없다는 뜻이다. 진도아리랑은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 쉬운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구술문화에서는 생각해서 말로 표현한 사고를 기억해 두고 그것을 재현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쉬운 구조를 필요로 한다. 진도아리랑은 혼자서 부르는 것보다 여럿이 같이 불러야 더욱 흥이 나는 공동체의 문학이다. 문학의 창작자와 향유자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와 향유자가 공유되는 민속문학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진도아리랑은 삶의 문학으로서 사설에는 애정사, 가정사, 사회상, 자연, 인생 등에 관한삶의 다양한 문제들이 녹아 있다.

진도아리랑에는 젊은 날의 추억이 각인되어 있고 한의정서를 흥의 정서로 바꾸는 치유의 힘이 있다. 진도아리랑은 민중들의 삶과 함께 했던 삶의 기억이자 삶의 표현이다. 진도 아리랑이 다른 지역의 아리랑과 구별되는 속성은 통속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진도아리랑은 해학적인 사설, 남녀의 성을 노래한 사설,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사설의 비중이 전체 노래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진도아리랑 사설은 다른 지역 아리랑에 비해 전통사회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내용들이 많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사랑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대담한 여성들, 전통적 가부장제의 권위를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며느리들의 모습이 진도아리랑 사설 속에서 찾아진다. 진도아리랑의 사설은 민감한 시대감각을 반영하지만 한편으로는 식민지 근대화에 대한 동경을 보여주는 사설들도 존재한다.

일본은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세계관, 문화적 규범, 가치들을 강요함으로써 의식을 식민화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진도아리랑은 지금도 활발하게 전승되고 연행되는 민속문학이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가사들이 새롭게 창작될 것이다. 이때 구비시가의 속성과 삶의 문학으로서의 특성, 시대성을 담아내는 진도아리랑의 정체성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기쁨과 슬픔, 한이 녹아있는 진도 소리는 그들의 삶을 평생 꿰뚫고 있다. 진도의 너른 들녘에 울려퍼지는 구성진 가락에는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진도의 토속민요는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입에서 입으로 혹은 북과 장구, 꽹과리 장단에 맞춰 들썩이는 춤사위를 통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진도 사람들에게는 소리와 춤의 특별한 DNA가 있다. 그들은 숨 쉬고 밥 먹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소리와 춤, 흥에 익숙하다. 핸드폰에서 울려나오는 컬러링 소리에도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수확을 앞둔 드넓은 파밭이나 배추밭에서도 눈빛만 마주하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리랑 가락에 춤사위가 펼쳐진다. 진도사람들에게 소리와 춤은 삶 그자체이다. 이렇듯 민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가사와 곡조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민요는 구비 전승되면서 그 향유자들의 정서와 현실 인식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학 농민군에 얽힌 노래인 '새야새야 파랑새야'와 '가보세' 등이 대표적인 에에 해당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진도에서 ‘거꾸로 아리랑’이라 하여 일본경찰들이 그 뜻을 알지 못하도록 하여 서로 뜻을 나누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진도여성들의 주도적인 시대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현실 비판 정신을 담은 민요가 많이 창작되었는데, 일본에 대한 민족의 저항 의식을 담고 일제 감점이 가져온 슬픔, 분노가 농촌의 정경에 빗대어 표현되어 있다. 또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서방을 ‘논두렁만 타고 있다’로 빗대는 가사가 발전하다 시어머니에게 옮겨가기도 하며 섬처녀 아낙들의 폭발적인 자의식 발현과 사회적 진출 의지를 내보이기도 한다.

박병훈 회장이 중심이 되어 전국 최초로 아리랑 보존단체인 진도아리랑보존회를 지난 1985년 조직, 지금까지 4회에 걸쳐 진도아리랑가사집을 발간했으며, 진도 아리랑 경창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매천야록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 찾은 박병훈 옹 살아있는 진도아리랑의 역사인 향전 박병훈 선생은 아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해외와 국내 등 300여회 진도 아리랑 공연을 통해 아리랑 발전에 기여하고 무형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높이 알려왔다. 특히 19세기 말에 집필된 매천 황현의 ‘매천야록’에서 아리랑의 가장 오래된 기록을 발견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외에도 아리랑과 관련된 논문 30여편 발표하는 한편 진도아리랑을 진도군향토사료 지정, 정선·밀양·진도 아리랑 등 대한민국 3대 아리랑 교류전 개최와 함께 진도 아리랑 체험관과 진도아리랑 아카데미 등도 활발히 운영 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진도 아리랑이 등재되는데 많은 기여를 하기도 했다. 박병훈 회장은 “진도 아리랑은 남녀의 사랑과 이별이 가장 많고, 애절함과 한이 담겨 있는가 하면, 익살과 해학이 넘쳐나기도 하는 등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다”며 “진도아리랑의 보존과 함께 세계화를 위해 앞으로도 더욱 더 노력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진도에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진도아리랑비’(의신면 사천리 첨찰산 자락)가 박병훈씨의 주도로 장전 하남호, 학고 김정호 등이 참여 세워지기도 했다. 바로 옆에는 진도아리랑교가 있다. 또한 ‘설이향’이라는 아리랑처녀가 자주 넘어다녔다는 고개가 의신면 하굴과 임회면 광전 사이에 남아있다. 

冬至(동지)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春風(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황진이 시조)

홀로 지내는 동짓달 기나긴 밤과 정든 임과 함께 덮는 춘풍 이불 사이의 거리감에서 소용돌이치는 그리움과 안타까움, 임을 기다리며 한숨으로 지새우는 여인의 애절한 심정이 황진이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표현되었다. 임이 없으므로 길게 느껴지는 '겨울밤'과 임과 함께 하므로 짧게 느껴지는 '봄'이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 임과 오래 있고 싶은 심정이 잘 묘사되어 나타난다.

문경이냐 문전이냐 지엽적 가사논쟁 접어야

아리랑은 고개의 노래이다. 아리랑고개가 실재적 고개이든 심상적 상상의 고개이든…. ‘아리랑고개’는 단순한 지리학적 의미를 넘어 훨씬 넓게 쓰이고있는 말이다. 이런 담론의 중심에서 논의되는 아리랑이 있다. 바로 우리 근대사의 ‘문제적 고개’로 회자되는 문경새재를 노래한 진도아리랑 가사이다. 그러나 문경에서는 지금까지 민속 음악적으로는 메나리조 아라리의 하나라는 정체성 때문에 오히려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고개라는 말이 곡조(曲調)의 곡자(曲字)를 ‘구비’라고해서 고개를 연상하게 하고, 또 자연계의 ‘재’(嶺)라는 말과 통할 뿐만 아니라, 구비와 재는 돌거나 넘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경험적 기억회상작용에서 이별의 한(恨)을 연상하게 함으로써 ‘문경새재’ 같은 험준하고 불상사가 많던 이야기를 빚어낸 자연계의 지리적 고개를 끌어다가 아리랑고개인 한과 정의 정신적 고개와 결부시킨 것은 작시기교(作詩技巧)로써 또 다른 ‘멋’드러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지역의 고개가 왜 또 다른 지역아리랑에 가장 주된 가사로 등장하게 된 것일까에 대한 논란은 오히려 진도 내에서 더욱 치열하게 논쟁이 펼쳐져 왔다.

여기에는 진도에서의 오랜 민속역사에서의 고개 의미와 영호남이라는 정치적 대립, 정서의 이질감 등이 보다 승화된 수용을 거부해 욌다고 볼 수 있다.

문화의 고고학은 자기가 서 있는 상황을 투철히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려는 태도라고 한국 비평가의 가장 치열한 천재였던, 세상을 다 읽고 간 사람(황지우시인) 고 김현(진도읍 남동 출신)은 밝힌 적이 있다. 민요 진도아리랑을 순수와 참여라는 메스로 2분법으로 파헤치다보면 본질이 죽고 만다. 폐쇄성은 더더욱 아니다. 보존은 박제화가 아니다. 그 어떤 풍속도 알을 깨는 새와 같이 끊임없이 ‘마주치지 않으면 세상은 열리지 않는다’ 고 문학과 예술의 궁극적인 길을 제시한다.

진도아리랑은 끊임없이 시대와 자기의 삶과 밀당을 하는 파도타기로 난파되지 않고 민요의 향기를 더해왔다.

진도군은 진도아리랑을 가장 앞세워 매년 군민의 날 축제의 이름을 아예 ‘진도아리랑축제’로 명명하여 널리 알리고 있다. 진도문화원도 김정호 원장시절부터 박정석 박주언 원장으로 이어지면서도 진도아리랑에 대한 보존의식울 강화하는 대회 개최, 경연대회 등을 갖고 있다. 특히 진도대교에서 열리는 명량대첩축제 때 미리 호남의 각 단체에 아리랑경연 대회 홍보를 하며 연습 참가비 지원을 해주고 있다.

강점기 시절 ‘차라리 피묻은 깃대를 세우라’ 저항민요

흔히 진도아리랑이나 다른지역 아리랑도 ‘이별의 정한’ 등으로 해석하며 여성의식을 축소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강점기시절 차라리 ‘피묻은 깃대를 세우라’며 드높은 님의 저항은 이별은 미의 창조(한용운 시인)임을 강조하였다. 진도아리랑은 진도여성들의 매우 선구적인 자기인식과 변화를 갈망하는 가락으로 담는다. 세마치장단으로서는 도저한 자유정신이 밤마실 이슬을 맞고 길을 가는 사내들에게 돌을 던지며 먼저 수작을 걸게 하였다. 진도의 독특한 풍속은 그렇게 싯김을 타고 피속곳을 흔들며 바깥 것(타자)을 역병의 원인 또는 도깨비로 인식하는 민속놀이로 정착시켰다.(서외리 도깨비굿)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진도·정선·밀양의 3대 아리랑이 진도군에서 울려 퍼졌다. 국민대통합 아리랑 공연은 지난 2013년부터 3대 아리랑(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의 발상지 광역단체인 전남도, 강원도, 경남도가 매년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해오고 있는 합동 공연이다.

전라남도, 진도군이 후원하는 2021 국민대통합 아리랑 공연이 10월23일 오후 2시 진도향토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졌다. 이번 공연은 전 국민의 간절한 소망을 한데 모아 코로나19 극복을 기원하는 특별무대로 꾸며져 화제가 되었다.

진도군립민속예술단 김경호 감독의 기획과 함께 양희경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공연은 정선아리랑문화재단 단원이 참가해 뮤지컬 ‘아리 아라리’로 막을 열었다. 이어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의 거문고와 북놀이 공연에 이어 밀양시 법흥상원놀이보존회 회원들이 소리극 ‘정든님 오실적에’를 들려주었다. 특별게스트로 국립남도국악원 유하영, 지선화, 양혜인 단원이 출연, 육자배기와 흥타령도 선보였다. 또 진도군립민속예술단원들이 출연해 진도아리랑소곡 공연으로 2021 국민대통합 아리랑 공연을 마무리했다.

유네스코 선정, 세계인인 공감 전남 대표적인 민요

쳬계적인 악보 정리, 전승자 지정 보호 학술연구

전남도 진도아리랑 문화재 지정, 한 풀었다.

한편 한국 3대아리랑 중 가장 성행하고 있는 진도아리랑은 문화재 지정이 되지 않아 지금랑보존회. 회장 박병훈)가 50년 가까이 자체적으로 보존 발표 연구로 이끌어오고 있다. 사설단체(진도아리랑보존회)특히 박병훈(82)옹은 노익장으로 지금도 활발히 초청공연 및 행사에 나서고 있으며 늘 그 중심에 서 있어왔다.

이미 국가지정중요문화재로 강강술래(제8호), 남도들노래(제51호), 진도씻김굿(제72호), 진도다시래기(제81호) 등이 있고 전남무형문화재도 진도북놀이(제18호), 진도만가(제19호), 남도잡가(제34호), 진도소포걸군농악(제39호), 조도닻배노래(제40호) 등 5종에 이른다. 시(詩), 서(書), 화(畵), 창(唱) 등 다양한 무형 문화유산을 간직한 남도 예향이다. 진도군은 1년 내내 신명나는 가락과 놀이, 굿판이 끊이지 않는 민속문화의 보고다. 강강술래, 진도아리랑, 소포걸군농악 등 전국에서 가장 많은 3개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진도는 진돗개, 구기자, 돌미역 등 세 가지 보물과 진도민요, 서화, 홍주 등 삼보삼락(三寶三樂)의 눈과 귀, 입이 즐거운 남도의 대표 문화예술 여행지이다. 전남도는 오는 2022년까지 100억 원을 들여 진도에 ‘아리랑 굿(GOOD)거리’를 조성키로 했다. 굿거리 공원, 장터 굿 공연장, 시장점포 80여 곳 리모델링, 갤러리 콘텐츠 개발 등을 통해 진도의 전통문화·예술자원을 특화하고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소포리 전통 창극 '철야'는 마을주민의 죽음과 장례의식을 바탕으로 소포리만의 소리와 춤, 이야기 등을 재구성한 창극이다. ‘소포리에 다 있어라~’ 흥과 끼 넘치는 소포마을은 -마을주민 모두가 소리꾼이자 춤꾼-공연 있는 날은 이웃마을까지 들썩들썩 소포리 마을 주민들이 고추밭에 모여 힘든 농사일 중간 불렀던 진도민요를 재현해 보이고 있다. “우리 엄니(어머니)들은 술도 곧잘하고 소락지(소리)도 아주 잘 질러”(김병철 전수관장) “예전에는 배도 안 좋고 물살도 세고 그라서 남자들이 바다에서 고기 잡다가 많이 죽었어. 농사짓다가 힘도 들고 바다에 나간 신랑 걱정도 되고 하니 엄니들이 소리로 시름을 달랠 수밖에 없었지라, 그러니 소리를 잘 할 수 밖에 없어라” 올해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함께 식사를 나누며 소줏잔를 기울이던 박미정(75) 어머니의 말에 같은 자리의 이옥희(78) 곽순경(78) 김영임(74) 어머니가 건배를 외치며 환하게 웃는다. 모두 70세가 넘은 소포리 주민이자 공연배우들이다.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 소포전통민속전수관 공연무대에서는 올해 마지막 소포리 전통창극 ‘철야’ 공연이 펼쳐졌다. 공연 ‘철야’는 소포리 주민이 모두가 주인공으로 소포리 마을 주민들의 삶을 배경으로 이 마을에서 유래된 소리, 농악, 풍속을 서정적 미학과 해학으로 보여주는 마을 창작극이다. 예전 같으면 진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말 그대로 요즘은 마을 잔치다. 진도사람들은 민속음악을 통해 아픔이나 슬픔을 승화하고 새로운 시작으로 재해석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관객도 없고 조명이 어두워 자동차 불빛을 보조 조명으로 사용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신명나는 놀이마당이 이어졌다. 공연은 육자배기를 시작으로 이 마을의 대표 소리꾼이자 마을주민의 소리 스승 한남례(89) 명창의 흥그레타령에 이어 신민요인 해방가, 소포걸군농악의 설북과 상모돌리기로 흥을 이어갔다. 서툰 듯 아닌 듯 자연스런 춤사위에 기자의 어깨도 덩달아 들썩인다. 소리와 춤이 주민들의 삶이요 생활이다 보니 그들의 공연은 늦은 시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진도는 섬에도 불구하고 어업보다는 농사가 발달한 지역이다. 농사일에 지친 농민들은 삶의 희노애락을 소리에 담아냈다. 생활력이 강하고 억척스러운 진도의 여인들은 들일에다 가사 일까지 도맡아 하면서 노동의 피로를 소리와 춤으로 절절하게 혹은 해학적으로 표현하며 스스로를 위로해왔다. 진도는 그림과 노래와 민속이 살아 숨 쉬는 보배로운 섬이다. 진도 서쪽 해안가 소포만 어구에 자리한 소포리는 진도 들노래, 육자배기, 흥타령, 둥덩애타령의 발생지로 알려져 있다. 또한 소포마을에는 걸군농악, 명다리 굿, 강강술래, 베틀노래 등 소리와 가락, 민속놀이가 옛 모습그대로 전승보존되고 있다. 예로부터 염전이 있어 ‘하얀 포구’ 혹은 ‘소개나루’ 등으로 불렸던 이 마을은 진도대교가 건설되기 이전만 해도 목포에서 진도를 잇는 유일한 나루터로 많은 소리꾼과 춤꾼들이 모여들었다. 자연스럽게 소포리 주민들은 명창들의 소리와 춤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온갖 정한을 담은 여인들의 경전 진도아리랑 진도의 여인들은 시어머니, 남편, 자식의 속 끓는 이야기, 고된 농삿일과 가사일을 아리랑 가락에 주거니 받거니 풀어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창고 벽면에 강강술래를 하거나 밭을 매는 아낙들을 그려 넣은 소포리 전통 민속 체험관과 전수관, 전국 최초 노래방을 자랑하는 ‘소포어머니노래방’이라는 세로 현판도 눈에 들어온다. 소포노래방은 이 마을 명창 한남례 할머니가 마을 주민들에게 소리를 가르치기위해 만든 사랑방 민속노래교실이다. 소포마을 김영임(74·) 씨는 “이 마을 사람들은 정말 우애가 좋아. 소리공부도 같이 하고 공연도 같이하니 자연스럽게 친할 수 밖에 없어. 늘 마을에서 웃음소리가 넘쳐나니까 좋지. 자식들도 모두 잘됐고 부자 마을이야”라며 “우리 딸과 사위도 서울에서 모두 검사로 일해”라며 은근히 자식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소포리걸군농악

김병철(60) 소포전통민속전수관장은 “소포리 주민들의 소리는 전문 국악인들과는 학습을 통해 익힌 소리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들의 소리가 조금은 부족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그들의 선조로부터 대대로 익힌 몸에 배인 생활의 애환을 몸 밖으로 토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어메 어메 우리 어메, 칠월 가뭄에 눈비 같은 우리 어메, 동지섣달에 호박꽃 같은 우리 어메, 뭣 할라고 날 낳았는가, 나를 낳아서 공부시킬라믄,글공부나 시켜주제 일공부를 시켜서 이 고상을 시키는가" 진도민속문화예술단 단원들이 박을 두드리며 부르는 흥타령의 한 소절이다.

남도소리 지키고 이어가는 ‘진도민속문화예술단’ “날마다 여기 와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소리배우고 같이 웃고, 그러니 아플 새도 없어,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는 걸 우리가 다 못 따라가서 그렇지 열심히 가르쳐 줘”라며 “우리 단원들은 치매 걸린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늘 재미있게 살아” 40년 넘게 소리와 악기를 배우고 있다는 진도민속문화예술단원 이유복(88) 할머니가 씩씩하게 대답한다.조도닻배노래 예능보유자인 ‘진도민속문화예술단’의 조오환 대표(사진 우)가 제자 강릉원(68) 씨에게 엿타령을 전수하고 있다.2006년 사라져가는 진도의 민속문화예술을 보존하고 계승하고자 설립한 ‘진도민속문화예술단’은 진도의 전통민속공연과 민속예술교육,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단원들의 대부분이 60세가 훌쩍 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은 연습을 통해 진도 전통의 소리와 춤을 지켜내고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매주 일요일에는 강강술래를 비롯해 진도아리랑, 북춤, 진도만가(晩歌), 진도 엿타령, 남도민요, 뱃노래 등으로 알차게 짜인 공연을 체험할 수 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공연이 잠시 중단 된 상태다.(박종호 김권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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