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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문학상에 정성숙 소설가 선정
신동엽문학상에 정성숙 소설가 선정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08.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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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첫 소설집 ‘호미’

출판사 창비는 제40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자로 최지인 시인, 정성숙 작가, 김요섭 평론가를 선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수상작은 최지인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정성숙 소설집 '호미', 김요섭 평론 '피 흘리는 거울: 군사주의와 피해의 남성성'이다. 상금은 시·소설 부문에 각 2000만원, 평론에 700만원이 수여된다. 심사위원회는 선정 이유에 대해 "동시대 청년들의 고단한 삶의 비애와 항의를 독특한 다변의 시적 어법과 리듬으로 담아낸 시집, 오늘날 한국문학에서 보기 드문 농촌의 삶을 실감 나는 전라도 사투리와 인물들로 생생하게 그린 소설집, 분단체제 속의 남성성 왜곡과 군사주의의 폐해를 궁구한 평론을 수상작으로 결정하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신동엽문학상은 신동엽 시인의 문학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신동엽 시인 유족과 창비가 공동 제정한 상으로 등단 1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2년간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선정하고 있다.

“너 시방 뭔 말을 하고 자빠졌냐! 이잉! 니 새끼덜이 끄니를 굶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메! 샛바닥은 짧은데 침은 멀리 뱉고 잡은 모양이구마이. 쌍놈이 갓을 쓰믄 머리가 빗겨진다고 했어야. 이 썩을 놈아. 그 땅이 으떤 땅이라고 터진 주둥아리라고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된닥하든. 엉! 행여 넘덜이 그 밭을 꿩 이마빡 같은 산전밭이라고 씨부렁거리드라도 너는 그라믄 안 되제. 아아믄! 집은 험해도 살제마는 땅이 없으믄 끄니를 굶는 것이라서, 느그 삼 형제 주둥아리에 풀칠이라도 시캐줄라고 느그 성… 느그 성 생목심하고 맞바꾼 것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겄제. 아믄, 아믄! 인두겁을 쓰고 그랄 수는 없제! 그랄 수는, 그랄 수는….”(「호미」 중) 비 오는 날에 심심풀이로 컴퓨터에서 화투 놀이를 하면서부터 미애는 변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에 나타난 전화선 너머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농사 외의 다른 세계를 봤다고 했다. 가꿔놓은 농사와 함께 밟히기만 했던 지난날은 놔두더라도 빚더미에 눌려 숨이 막힐 것 같다고,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잡혀서 내동댕이쳐질 것같이 조마조마하기만 한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다고도 했다. 땡볕에 고추 따며 사는 고달픔만큼 덤으로 따라오는 억울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배 터지게 애쓴 만큼 빚만 늘어나는 농사에서 발을 빼고 다른 것을 해보자고 창선한테 말했다가, 허파에 바람 들어서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이는 주둥이는 맞아야 정신 차린다며 입을 주먹질당했다고 했다.(「기다리는 사람들」 중) 태풍이 김장 배추를 거의 휩쓸어간 덕분으로 겨울 배추 심을 때는 산지 거래 가격이 평당 만 원까지 치솟았다. 기회를 잡은 농산물 수입업자들은 중국산 배추를 들여오기 시작했고 농사꾼들은 비어 있는 땅 곳곳에 배추를 심었다. 더군다나 9월 말까지 날씨도 협조를 해줘서 물이 고여 있던 논에도 배추를 심을 수가 있었다. 하늘은 인심을 더 써서 10월까지 춥지 않은 늦가을 날씨를 만들어줬다. 예년 같으면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심으면 결구가 되지 않던 배추까지 배가 댕댕하게 불러서 그야말로 배추가 풍년이었다(「백조의 호수」 중) “아따아! 집구석에서 하던 꺽정을 집구석에 놔두고 나오제 뭣 났다고 천리만리까지 �쉼� 와서 술맛 떨어지게 하고 있으까이. 우리덜 당면 과제는 장개를 가는 것이고, 농촌 총각이 장개를 가야 농촌의 인구를 늘려서 애국하는 길이랑께에.” “애국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정치하는 것들이 우덜을 홍어좆으로 보고 의붓새끼로 아는데 뭔 놈의 애국은 애국이여! 그런 것 있으믄 개나 줘서 뜯어 먹으라고 하제!” “그것보담도 농사꾼이 살라믄 미국 놈덜 모가지를 틀어부러야 한다고오!”(「복숭아나무 심을 자리」 중) “막걸리 한 사발에 안주로 시발낙지 한 마리랑 요놈하고 바꿔 먹어도 막걸리 한 사발 값...은 더 내게 생겼시다!” 하는 노인네를 뒤로 한 귀숙은 튀밥 튀기는 곳으로 돌아와 쪼그리고 앉았다. 머리가 메추리알만 한 세발낙지들이 온몸에 달라붙어서 꿈틀거리는 것 같아서 몸서리가 쳐졌다. 귀숙은 세발낙지들을 피해보려고 벌떡 일어섰다. 눈에서 세발낙지가 핑그르 돌더니 무릎이 탁 꺾였다.(「이른 봄」 중)

이제는 아예 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 현실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리지 않고 힘들게 하지만, 여성 농민은 이중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는 작가 스스로가 여성으로서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아울러 도시와 도시의 문화가 농촌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농민은 그저 예능 프로그램의 우스갯거리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베트남 여성과 국제결혼을 하기 위해 도착한 인천공항에서 농촌의 늙은 총각들이 처한 상황을 묘파한 장면에서는 슬픈 희극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제 농촌과 농민의 삶은 ‘찬란한’ 도시 문화의 웃음 제공자로 추락하기까지 했다. 작가는 소설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십수 년 전 쓴 소설이라 변화무쌍한 요즘과는 시대성이 맞지 않는 것 같아 출판을 포기했었지만, 농민들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며 “드론이나 자율주행트랙터가 등장했지만 호미로 풀을 뽑아야 하는 원시적인 고달픔은 여전하다. 천한 일은 여전히 호미를 쥔 자들의 몫이다”고 밝혔다. 첨단 문명이 제 아무리 날뛰는 시대라 할지라도 ‘천한 일’은 사라지지 않고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존재들은 변함이 없으며, 그 존재들은 바로 여성이다. 하지만 농촌에서도 도시에서도 이런 현상은 한결같다. 하지만 반대로 그 천한 일을 하는 ‘호미를 쥔 자들’이 없다면 이 세계도 없을 것이라는 것도 확실하다.(박남인 예향진도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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