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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침략자들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침략자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2.12.1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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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숙(전남 진도)

논 옆 담수호에 수백 마리의 오리 떼가 물 위에 떠 있다. 아침 햇살을 맞이하듯 동쪽을 향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찍는다. 아름다운 풍경은 딱 거기까지다.

잠시 후에 6마리의 오리가 우리 논 위의 공중에서 배회한다. 정찰병이다. 곧이어 수십 마리의 오리들이 몰려오고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오리 떼가 논바닥에 시커멓게 앉는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보리 싹을 뜯어먹는다. 트럭 크락션을 울리며 내가 쫓아가면 수백 마리의 오리 떼가 일제히 날아올라 반대편 논에 내려앉는다. 나는 반대편 논으로 트럭을 몰고 달린다. 다시 오리 떼가 날아오른다. 오리 떼는 잠시 공중에서 의논을 하는지 빙빙 돌다가 건너편 담수호에 앉는다.

나는 자리를 뜨지 않고 밥을 안쳐서 뜸 들이는 시간(<임꺽정>, 홍명희 표현 빌림) 정도를 차 안에서 대기한다. 역시나 5마리의 정찰병 오리들이 논 위에서 살피고 6마리의 또 다른 정찰병 오리들이 뜬다. 이윽고 건너편 담수호에 있던 오리 떼가 논 쪽으로 날아온다. 나는 트럭을 이동하면서 크락션을 울려 경고를 한다. 내가 지키고 있다고.

논에 보리를 갈고 곧바로 말뚝을 박고 고추 지주 끈으로 사방을 그물처럼 쳤다. 그렇게 하면 오리가 자신들을 잡으려는 그물로 여기고 오지 않는다 해서 수년째 하고 있지만 오리들이 와서 보리를 뜯어 먹었다. 조류는 인간보다 시력이 몇 배로 좋아서 수십 미터 상공에서 땅에 있는 볍씨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깟 끈이 방어막이 될까 싶으면서도 차선책 삼아 해왔다. 해를 거듭하면서 오리들도 학습이 된 모양이다. 끈을 치고 있는 나를 오리들이 내려다보며, 애쓴다,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모르냐? 그렇게 코웃음 쳤으리라.

나는 남편한테 다른 대책을 찾아내라고 재촉했고 결국 남편이 새총이라는 폭음기를 설치했다.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조차 펑! 하는 소리에 놀라 주저앉을 것처럼 위협적이다. 하물며 몸집이 작은 오리에게는 가히 공포가 느껴지리라. 지축을 울리며 펑! 하는 소리에 몸을 움찔하게 되는 폭음기에서 인류의 침략자들이 보였다.

13세기에는 징기스칸이 이끄는 말발굽이 전 세계 절반 이상을 도륙했다. 몽골인들은 징기스칸을 위대한 영웅이라 칭하겠지만 그는 무자비한 정복자였다. 14세기에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깃발을 꽂으면서 원주민들의 비극이 시작됐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의 발견과 모험에 투자한 사람들을 위해 이윤을 남겨야 했다. 그래서 아라와크 인디언을 유럽으로 내다 팔았고 황금 채취로 착취했다. 15세가 넘는 모든 인디언들에게 일정한 양의 황금을 가져오도록 명령했고 황금을 가져온 인디언들에게는 구리 장식물의 목걸이를 달게 했다.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못한 인디언들은 두 손이 잘렸다. 공포에 질린 인디언들은 사력을 다해 도망쳤으나 사냥개에 쫓겨 붙잡힌 뒤 교수형 혹은 화형을 당하거나 자살해야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탄생해서 지금도 온갖 잔인한 행위로 조상들의 업을 이어가고 있다. 선교사라는 정찰대를 앞세우고 뒷짐으로 잉여농산물이라는 시혜를 베푸는 척하면서 식민지를 건설했고 여전히 개척 중이다.

우리 논 일대는 간척지다. 철새나 텃새들의 서식지였던 셈이다. 인간인 내가 그들의 터전을 빼앗고 새들을 쫓아내려고 갖은 도구를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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