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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학계의 전설 학고 김정호
향토학계의 전설 학고 김정호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19.09.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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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한국 섬의날 공로 1순위
향토사 관련 강의요청 쇄도

올해 정부는 처음으로 섬의날을 제정하였다. 오는 8월8일이다. 그 공을 서로 다투지만 그 근간을 이룬 연구업적과 섬의 가치를 세상에 가장 먼저 알린 분은 학고 김정호선생일 것이다.

향토학계의 전설, 민학도사 등으로 불리우는 선생은 언론인이면서 평생 향토문화사 연구와 집필에 몰두해온 영원한 ‘문화꾼’이다. 저술은 공저를 포함해 무려 90여 권에 달한다. 하나같이 사실에 기초하여, 발로 뛴 현장의 결과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선생은 지난 5월 30일 대동문화재단의 제1회 대동전통문화대상을 받았다.

학고(鶴皐)는 언덕 위의 학이다. 한의학자이자 명리학의 대가였던 지인이 지어준 이 호는 천생 언론인의 삶을 살면서 언덕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라는 뜻을 지녔다. 선생은 그 뜻대로 향토학의 노래를 외롭게 그러나 진득하게 불러 왔다. 그리고 그 노래는 이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저기서 선생을 초빙해 향토사 관련 특강 듣기를 즐겨한다. 어디 그 뿐이랴, 원고청탁도 끊임없이 이어져 팔순을 넘어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현역’으로 왕성하게 뛰고 있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선생이 천착해온 주제는 전남 지역의 인물, 족보, 명당, 특산물, 인문지리, 섬, 유적지 등이다. 신문기자로서 발로 뛰며 연구한 분야다. 그중 첫 번째는 1970년대 초 <섬, 섬사람>이다. 진도 섬놈(?) 출신으로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광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일보 지방주재기자를 거쳐 서울본사로 자리를 옮겼었다. 섬사람이라며 하시하는 풍토가 광주에서도 있었지만 서울은 더 심했다. 섬사람에다 하와이 출신이었다. 당시 조선일보에서 조사부장이었던 이규태 선배가 하와이 출신에 지방대학 학벌로는 이 신문사에서 장래가 밝지 않을 것이라며 지역 신문사로 이직할 것을 권유했다. 선배는 선생더러 특수 분야의 전문기자가 되라고 충고해주었다. 선생도 봉황의 꼬리가 되느니 닭의 머리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해 서울 본사 근무 6개월 만에 광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섬연재 기획안을 제출해 승인받자마자 카메라와 미숫가루를 배낭을 짊어지고 바다로 떠났다. 영광 법성항을 출발해 2개월간 해외(?)취재를 하는 동안 무려 156척의 배를 갈아탔다. 여객선이나 민간 배가 드나들지 않는 칠팔도 등대나 홍도 등대 등은 목포항만청 급유선을 이용해 들어갔다. 그렇게 등대수들의 애환을 취재했고 온통 바위인 칠팔도 등대에도 접근했다. 갈매기 떼가 산란장으로 이용해 섬을 뒤덮고 있었다. 갈매기 똥이 30cm 이상 뒤덮고 있어 섬이 하얗게 보일 정도였다.

 

섬사람들이 섬사람을 핍박하는 섬문화

정작 고향에서는 터부시하는 경향 버려야 진정한 섬

2개월간의 낙도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섬, 섬사람>을 1년간 50회 연재한다. 선생은 섬을 소개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공통된 특성을 골라 쓰되 섬이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섬사람들의 삶의 터전임을 일깨워 주었다. 선생이 이 취재를 통해 또 실감한 것이 있다. 섬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 국토의 보루이고 미래자원 개발의 전진기지라는 사실이다. 또 완도 장도의 청해진 유적과 장보고 전설을 캐내었다. 그 결과 한국 신문상을 수상했다. 역사란 잔족한 민속, 전설 그리고 현장의 총합으로 완성된다는 나름의 철학을 갖게 되었다.

섬 취재에 이어 선생의 향토사 관련 취재는 쉼 없이 진행됐다. <전설의 현장> 200회 연재, <민속의 향기> 50회 연재, <옛터> 136회 연재, <전남의 토박이와 전남 본관성씨> 90회 연재 등이 그것이다. 또 <다도해> 등 연재물에 공동 집필자로 참여해 섬 연구와 자료 수집을 지속했다. 1990년대 초 장보고 대사를 국민의 미래상으로 내세우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중국 발해만 일대 섬을 답사하기도 했다.

1987년 발족한 섬 연구회가 (사)한국도서학회로 발전했고 섬 답사에 참여해 <전남의 섬> 간행에 참여했다. 또 개인적으로 <태인도와 금호도>, <가거도>, <하의도> 등 섬 단행본도 출간했으며 섬 전문잡지인 <바다의 오아시스>를 창간했다. 전남의 섬 자원을 홍보하는 길은 히로시만의 바다와 섬 박람회 같은 엑스포를 유치해야 한다며 기획한 것이 여수 엑스포였다. 섬과 바다에 집착한 나머지 하나뿐인 아들을 서울대학교 해양학과에 진학시키는 억지를 부렸단다.

섬 연재를 시작으로 향토학 연구에 나선 지 22년, 언론계에 입문한 지 27년 되던 해, 선생은 새 길을 개척한다. 1990년 (사)향토문화진흥원을 설립해 향토학 조사 연구 정리를 체계적으로 했으며 1993년 초대 전남 영산호관광농업박물관장(6년간), 2003년 진도문화원장(8년간)을 지낸다. 광주를 떠난 지 25년 되던 해인 2011년 광주로 돌아온다. 그동안 광주는 많은 변화를 거듭했다. 58년 25만 명에서 2012년 1백 50만 명이 되어 있었다. 광주라는 도시의 뿌리를 알아야 했고, 이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를 지역신문에 연재했다. 선생은 이 책의 지적재산권을 광주문화재단에 기증함과 동시에 재단의 지원을 받아 <광주산책> 상·하 단행본으로 엮어냈다. 상권이 ‘광주의 뿌리’, ‘조선시대의 광주’ 등 광주 역사 형성의 근원을 탐색하는 흐름을 담았다면 하권은 ‘광주의 무등산’, ‘광주의 명품’, ‘광주인문’, ‘광주의 문화예술’ 등 광주 근현대사를 담았다.

건재한 강연일정 아직도 청년수준

진도군청 초대 강연으로 미래 동력 삼아야

지난 6월 30일, 제1회 대동전통문화대상 수상에 앞서 1992년에는 광주광역시 시민대상, 2010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는 등 선생은 광주에 대한 애착과 열정을 몸소 실천해 왔다. 늘 현장을 발로 뛰며 써온 글은 단순 소개가 아니라 현상을 통찰력 있게 종합함으로써 대안을 제시했다.

선생은 자신이 선택한 테마연구를 통해 지역 향토사의 생생한 분위기를 담아낼 뿐 아니라 방향을 제대로 짚어냄으로써 단순 기록을 뛰어넘어 내일을 전망해내는 가교역할까지 담당했다. 선생의 저술과 연구 활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물론 후세들에게 소중한 교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뿌리를 살피고 소중히 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는데 기본 토대가 될 내발적 힘의 증강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 선생이 평생 훑고 보듬어낸 것은 전라도의 마음이고 광주의 정신이 아닐까한다. 그것을 광주인문학당 무등공부방에서 ‘김정호의 향토학 강연’으로 펼쳐내며 남도문화의 재정립을 도모하려 한다.(대동문화 표지이야기. 정리 박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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