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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관칼럼 - 신언서판(身言書判)
박영관칼럼 - 신언서판(身言書判)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3.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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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으면 복이 온다 -

                                                                                            진도군 고군면 오일시 박영관

그리 매서운 겨울바람에 움츠렸던 냇가의 버들가지가 살랑이는 봄바람에 화색이 돌아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온기를 머금은 흙 속의 씨앗이나 뿌리들은 용트림하듯 힘차게 기지개를 켠다.

춘삼월이 되니 지나는 사람들의 몸맵시도 가벼워지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환한 표정은 스쳐만 지나가도 모르는 인연이지만 설렌다. 어느 모임에 가면 초면인 사람에게 인사를 한다. 손을 잡으면 좋은 기운이 스며든다. 보기만 해도 엔도르핀(endorphin)이 감돈다.

사람을 만나면 첫인상에서 만난 사람의 깊이를 스스로 헤아린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판단하는 일을 쉬운 일이 아니고 신중(愼重 : 썩 조심스러움)한 일이다. 누구나 처음 대하는 사람은 먼저 얼굴이나 풍채를 보고 그 사람됨을 평가하려 한다. 사람은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고, 진실과 거짓이 상반되게 행동을 하여 지금까지 인문학 분야의 주요 연구과제가 되고 있다.

고사성어(故事成語 : 옛날 있었던 일에서 만들어진 어구)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이 있다. 이 성어는 1,300여 년 전 당(唐)나라 태종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인재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신당서(新唐書) 권(卷 )45지(志) 제(第)35 선거지(選擧志) 하(下)』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범택인지법유사(凡擇人之法有四 : 무릇 사람을 고르는 법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 일왈신(一曰身 : 첫째는 몸인데) ; 體貌豐偉(체모풍위 : 그 얼굴과 몸매가 듬직하고 위풍당당해야 하고), 二曰言(이왈언 : 둘째는 말인데) ; 言辭辯正(언사변정 : 그 말하는 바가 조리가 있고 반듯해야 하며), 三曰書(삼왈서 : 셋째는 글씨인데) ; 楷法遒美(해법주미 : 글씨가 해서처럼 또박또박 정확하면서 아름다워야 하고) ; 四曰判(사왈판 ; 넷째는 판단력인데), 文理優長(문리우장 : 사안의 이치에 대한 판단력이 우수하고 뛰어나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런 인재 등용의 지침을 만든 이는 당나라 태종이었다. 그는 자신이 ‘황태자의 난’ 등 여러 역경을 극복하고 황제에 올라 중국 역사상 매우 뛰어난 성군으로 평가받으며 재위를 마쳤는데, 그는 실제로 이런 기준에 근거하여 인재를 등용했고, 후대까지 과거시험에 적용하여 인재 등용의 기준으로 삼았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중국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광종 때부터 호족 출신의 공신 세력을 누르고 충성스러운 문신 관료를 얻기 위해 과거제도를 실시했고, 인물 평가의 기준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유교를 숭상하는 사회로 인재를 등용하는데 신언서판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이러한 판단의 기준은 요즘도 변함없이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내면의 세계를 파악한다. 흔히 잘생겼다. 영특하다고 하는 것도 신언(身言)을 판단 기준으로 삼고 말하는 것이다. 신언서판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내면화되어 가고 있다.

이에 덧붙인다면 첫째, 신(身)은 사람의 외형을 평가하는 기준이고 건강이 우선이다.

두 번째, 언(言)은 말솜씨이다. 인간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리더의 역량 중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조리 있는 말과 표현, 상대를 쉽게 설득하는 능력 등을 살피는 것이다. 이에 덧붙인다면 틈만 나면 간사하고 요사한 말로 잠시 속이는 이는 경계의 대상이다.

세 번째, 서(書)는 이를 뒤에서 풀어주고 있는 해법주미(楷法遒美)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유려하고 아름다운 글씨가 인재를 판단하는 세 번째 기준으로 해석했다.

네 번째, 판(判)은 올바른 판단 능력이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어떤 현실적인 문제를 던져주고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해당 인재의 총체적인 지식과 정보를 엿보았다. 문리우장(文理優長)이라는 해설을 덧붙여 결국 사람의 평가는 어느 특정한 부분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을 함부로 비교하지 말고 평가하지도 말자. ‘그러려니’ 하며 중심을 갖고 살아가자. 성자 어거스틴(Augustine : 354∼430)은 ‘건강하게 살아서 숨을 쉬고 있음이 엄청난 축복(祝福)이고 은총(恩寵)이다’라고 했고, 종교 개혁가 마루틴 루터(Martin Luther : 1483∼1546)는 ‘Thank God for everything. I thank God I'm alive.(모든 것에 대해 신께 감사드린다. 내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했다.

사람은 처음 만난 사람을 판단하는 데는 3초라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결정한다고 한다. 직감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그 첫인상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살아가는데 사람이 가장 귀한 존재이고 서로 관계를 나누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 귀함을 잊고 얼굴만 보고 호불호를 결정한다면 존귀한 보물을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다. 우리에게 잠시라도 맺은 인연은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며 서로 아끼고 배려하자.

오늘이라는 하루가 우리에게 주어진 최상의 ‘선물’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다. 언제나 활짝 웃으며 어떤 일이나 말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비교 대상으로 삼지도 말자. 순간순간의 삶에 남을 자신의 인생관에 견주지 말고, 공감의 폭을 맞춰 가며 보람으로 즐기고, 서로 사랑하며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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