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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관칼럼 . 나무를 심는 마음 - 미래를 위한 준비 - .
박영관칼럼 . 나무를 심는 마음 - 미래를 위한 준비 - .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7.2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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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준비

 

                                                                                                                               고군면 오일시 박영관

창문을 열면 문밖은 어제와 다름없다. 태양은 동쪽 하늘에서 변함없이 붉게 솟는다. 창문을 스치는 바람 소리는 훈훈하고, 햇볕은 따갑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찾아오고 있다. 늘 찾는 장마로 하늘은 회색빛이다. 흐려진 하늘만큼이나 우리 사회 곳곳에는 그늘이 성큼 드리워져 있다. 하늘이 “내일을 위해 너는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묻는다.

“내일 이 땅에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으리라”라고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1632년∼1677)가 말했다. 사람은 어둠을 뚫고 빛을 찾는 존재이다. 희망의 신념으로 절망을 극복해왔다.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철학자, 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은 저서 『팡세(Pensée):명상록 단장 391』에서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말했다. 자연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은 약하지만,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고귀함과 위대함을 나타낸 말이다.

 소국(素國) 박목월[朴木月, 본명:박영종(朴泳鍾) 1916∼1978)] 선생은 시인이며 교육자였다. 한양대학교 교수일 때 선생의 수필 「씨 뿌리기」에 호주머니에 은행 열매나 호두를 넣고 다니며 학교 빈터나 뒷산에 뿌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유를 묻자 빈터에 은행나무가 우거지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언제 열매가 열려 누가 따면 어떠한가.

“예순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육십부종수(六十不種樹)]”고 말한다. 심어봤자 그 열매나 재목은 못 본다는 말이다. 송유(宋兪)가 70세 때 고희연(古稀宴)을 했다. 감자(柑子:제주도 재래 감귤) 열매 선물을 받고 그 씨를 거두어 심게 했다. 사람들이 속으로 웃었다. 그는 10년 뒤 감자 열매를 먹고도 10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떴다.

묵재(默齋) 홍언필(洪彦弼: 1476∼1549)은 형조판서, 병조판서, 호조판서, 대사헌을 역임했다. 특히 대사헌을 여섯 차례나 지내면서 관기(官紀)를 바로잡는데 헌신했다. 몸가짐이 검소하고 청빈하기로 유명했다. 집안 법도가 엄하여 아들 홍섬(洪暹:1504∼1585)이 큰 옷을 입지 않고서는 들어가 만나보지 못하였다. 성현들의 글을 즐겨 읽었다. 홍섬(洪暹:1504∼1585)은 조광조(趙光祖:1482∼1519) 문하에서 수학했다. 1571년 좌의정이 되엇다. 1573년 궤장(几仗)을 하사받고 영의정을 세 번에 걸쳐 중임하였다. 1579년 지병으로 관직을 사임하였다가,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가 되었다. 경서(經書)에 밝은 문장가로, 문집에 『인재집(忍齋集)』, 『인재잡록(忍齋雜錄)』이 있다. 홍언필(洪彦弼, 1476∼1549)의 아내가 평양에 세 번 갔다. 어려서 평양감사였던 아버지 가중(可仲) 송질(宋軼:1454∼1520)을 따라갔다. 두 번째는 남편 홍언필(洪彦弼: 1476∼1549)을 따라갔다. 세 번째는 아들 인재(忍齋) 홍섬(洪暹:1504∼1585)을 따라갔다. 홍언필(洪彦弼) 아내가 처음 갔을 때 장난삼아 감영에 배를 심었고, 두 번째 갔을 때는 그 열매를 따 먹었다. 세 번째 갔을 때는 재목으로 베어 다리를 만들어 놓고 돌아왔다. 세 이야기 모두 『송천필담(松泉筆譚)』에 나온다. 『송천필담(松泉筆譚)』은 양졸재(養拙齋) 심재(沈梓, 1624∼1693)가 한국과 중국의 여러 문헌들에서 읽고, 또 직접 견문한 바를 간추려 적은 수필집 8권 8책이다. 학문·정치·경제를 비롯하여 미담(美談)과 가화(佳話)를 듣고 본대로 기록한 책이다.

경지(敬之) 황흠(黃欽, 1639∼1730)은 참봉으로 1680년(숙종 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이후 좌우참찬과 육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다. 정사에 관여한 50여 년 동안 나름대로 소임을 다하여 3대(숙종·경종·영조)를 모셨다. 매사에 신중하였으며 청렴 검소하게 지냈으므로 헐뜯는 사람이 없었다.

영조(1770) 임금이 대신들을 인견(引見)하는데 좌의정 장밀헌(藏密軒) 송인명(宋寅明:1689∼1746)이 아뢰기를, “청렴하고 신중한 사람을 택한다면 현재로는 도곡(陶谷) 이선현(李宣顯) 한 사람이고, 선조(先朝) 때 옛 신하 중에서 구한다면 판서 황흠(黃欽, 1639∼1730)이 엄정하면서도 화목하고 정사도 공정하고 예의를 준수하는 청렴결백한 신하였다”고 하였다. 90세를 넘겼으나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지막 벼슬은 보국판돈녕(輔國判敦寧) 이조판서였다.

황흠(黃欽, 1639∼1730)이 80세에 낙향하여 지낼 때 종에게 밤나무를 심게 했다. 이것을 본 이웃 사람이 웃었다.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는데 너무 늦지 않을까요?” “심심해서 그런 걸세. 자손에게 남겨주어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10년 뒤에도 황흠은 건강했다. 그때 심은 밤나무에 밤송이가 주렁주렁 열렸다.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면 늦은 때는 없다. 지금 시작하자. 예순만 넘으면 노인 행세를 하며 책도 놓고 일도 안 한다. 그럭저럭 세월만 보낸다. 100세 시대에 이런 속 좁은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 좋은 미래의 문화를 위해 씨를 뿌리자. 내가 그 열매를 못 따면 어떤가. 좋은 생각을 계획대로 실천해 보자. ‘하루살이도 사흘 먹을 것을 걱정한다’는 속담이 있다. 인생은 늘 준비하며 살아야 후회가 적다.

『논어(論語)·위정편(爲政篇)』에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했다. 공자는 학(學)과 사(思)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중용의 정신을 강조했다.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만 배우기만 하고 그 배운 것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단순한 지식의 유입에 그치기 때문에 남는 것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은 전체적인 면을 보라는 것을 의미한다.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의 삶의 질은 큰 차이가 난다. 준비하고 기다리면 그날은 반드시 온다. 좋은 생각을 품고 계획을 세워 실천하자. 행운은 그저 오지 않는다. 준비하면 어느 때 어느 경우에라도 나에게 오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언제나 좋은 생각으로 준비된 우리가 되자. 문화 예술이 활짝 피려는 예도(藝都:민속문화예술 수도) 진도(珍島)의 품격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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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숙 2023-07-20 20:17:52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은 늘 에너지가. 밝습니다
꽃처럼 모든이에게. 기쁨과 아름다움을. 주지요
박선생님의 나무를 심는 마음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