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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진도군민의 반일(反日)사회운동사(6)
일제시기 진도군민의 반일(反日)사회운동사(6)
  • 藝鄕진도신문
  • 승인 2023.08.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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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회」와 「진도적색농민조합」의 결성

이세영(한신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진도 적농에 참여한 이들을 몇 가지 기준에 의해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우선 く표 1〉에서 보듯이 참여자가 7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적농 조직을 발의한 곽재술과 「자각회」 회원 3명을 제외하면 적농이 조직된 이후에 가입한 이는 조병하•조규린뿐이다. 이는 하부 조직은 물론 대중적 기반이 거의 확대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아래로부터 농민을 조직하는 적농 노선이 일반되고 있었고, 따라서 농민조합과 같은 실천 운동을 위주로 한 노선을 지지했던 곽재술의 노선이 채택되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는 진도에서 실천 운동의 경험이 전혀 없었고, 또 진도의 객관적 여건은 적농의 조직을 확대할 만한 운동 역량이 부재했기 때문에 진도 적농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되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진도 적농은 곽재술이라는 노동운동을 경험한 인텔리가 귀향하여 기존의 「자각회」 회원들과 외지에서 노동운동을 경험한 이들과 함께 말하자면 위로부터 조직한 것이었기 때문에 출범한 지 4개월 만에 해산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진도 적농은 그것이 존속했던 기간, 그리고 해산 이후에도 특히 군내면 세등리의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본 것처럼 1933년 9월 곽병관을 중심으로 한 독서회 결성 움직임이 있다가 실패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 이듬해 1934년 3월 서당 교사로 있던 곽병관은 곽정배(郭正培)로부터 세등리에서 한때 조직되었다가 유명무실해진 유년구락부를 다시 부활시키고 서당에 야학을 개설해 줄 것을 부탁받게 된다. 곽정배는 세등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고, 이후 농업에 종사했다. 그는 1933년 곽병관으로부터 『오늘의 세상』을 받아 읽고 그로부터 사상적 지도를 받았다. 곽정배의 부탁을 받은 곽병관은 4월 중순경 서당에서 유년구락부원 12~13명을 불러 유년구락부를 부활시켰다. 또 곽병관은 낮에 아동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도 야학을 개설하여 남학생 12명, 여학생 5명을 모아 『노동독본』을 교재로 토론식 수업을 진행했다.

1934년 8월 15일 곽병관은 곽재술에게 소인극(素人劇)(아마추어 연극)의 대본을 써 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곽재술은 「지도원의 강연」이라는 연극 대본을 쓰고 직접 서당의 아동들인 곽정배•곽병운(郭丙雲)•곽재근(郭在根)•곽재림(郭在林)•곽종언(郭鍾彦) 등을 지도하여 8월 23일 밤 곽병환의 집에서 마을 주민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연극을 공연했다. 이 연극은 24일 밤 둔전리 김남원의 집에서도 주민 1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공연되었다.

연극의 내용은 농촌이 몰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농사 개량이라는 것도 사실은 세금을 거두기 위한 수단, 자본주의의 착취 수단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농사지도원이 부르짖는 농사 개량이나 근검 저축이라는 것도 사실은 기아선상에 헤매고 있는 조선 민중을 더욱 기아 상태로 몰아넣는 기만정책에 불과하다는 것 등이었다. 그리하여 지도원의 근검 절약•농사 개량에 대한 강연이 과중한 세금으로 농사 경영이 어려워진 소지주 마당에서 열리고 있을 때 서울에서 내려온 청년(이는 곽재술을 가리킴)이 관중석에서 그 강연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현재 조선인만큼 근로 시간으로 봐서 가혹한 국민이 없지만 조선인만큼 기아선상에서 신음하는 민족도 세계에는 없다. … 당신을 출장 보낸 농회(農會)는 마땅히 농민을 지도하지 않고 기만적 책동을 드러내고 있다. … 농사 개량이라고는 하지만 농민 생활에서 하등의 이익도 되지 않고 단순히 납부 독려에 편리하게 하고자 할 뿐이니 힘써 일해도 7~8할은 소작료•비료대 등으로 가져가버려 죽 끓일 양식도 없다. 소작농이 아닌 지주와 자작농의 생활은 어떤가. 가을 추수에 얼마간을 수확해도 세금과 비료대금 때문에 초가을에 벼를 내다 팔지 않으면 안 되는데 팔 때면 벼 값이 하락하여 헐값으로 팔아야 하는데 다음 해 봄이면 벼 값이 다시 오르고 물가도 뛰어오른다.

 

즉, 관중 속의 어떤 청년이 농회지도원의 강연을 이처럼 반박하자 강연회는 중단되었고, 그 농회지도원이 퇴장하려 할 때 소작농인 청년은 의기양양하게 구장(區長)에게 ‘저런 사람은 다시는 우리 부락에 오지 말라고 하시오’라는 말과 함께 막이 내렸다. 이와 같은 소인극은 당시 다른 지역의 적농들이 흔히 하고 있던 프로(프롤레타리아)문화운동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 소인극 공연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 군내면 면장이던 곽두인(郭斗仁)이 농촌진흥실행조합(農村振興實行組合)에 저축맥(貯蓄麥)의 납부를 미루던 곽재술의 어머니를 구타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격분한 곽재술은 곽두인을 구타했고, 「중앙일보」는 이를 기사화했다. 경찰은 이때부터 야학을 조사하고, 곽재술을 구금한 가운데 진도 적농의 조직을 밝혀냈고, 관련자들을 모두 검거하고 조사했다. 이로써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박종춘을 제외한 조규선•박종협•곽재술•곽재필 등 4명은 검거되었고,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각각 2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진도 적농은 다른 지역의 농민조합과 비교해 보면 조직화의 초기 단계에서 자진 해산의 형식으로 해체됨으로써 거의 실제로 활동하지 못한 유형에 속했다. 또한 조직 형태의 측면에서 보면 ‘기성 농민조합을 극좌적으로 지도•조정하고 농촌의 피폐에 편승하여 조합의 확대•강화를 도모한’ 이른바 기존 농민조합의 개조 형태가 아니라 소수의 귀향 청년 지식인들이 ‘위로부터’ 새로 조직체를 결성한 것이었다.

또한 강령으로 보면, 진도 적농의 강령은 ‘잠정적’이란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당시 좌익농민조합이 공통적으로 내걸던 슬로건인 ‘일제제국주의 타도’, ‘조선 독립의 즉각 챙취’, ‘일제의 만주•중국 침략 반대’, ‘치안유지법•보안법 철폐’, ‘농회•산림조합•금융조합 폐지’, ‘일본어 강제 사용 반대’, ‘토지의 무상 분배’ 등을 내걸지 않았다. 반면에 진도 적농은 ‘전매제도 반대’, ‘세금 감액’ 등의 요구를 제외하면 ‘소작인 통제기구 반대’, ‘소작료 감액’, ‘소작권 이동 반대’ 등의 지주계급에 대한 요구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일제가 일본인 지주 및 조선농회의 거센 반발을 사며 제정한 농지령(農地令)의 철저한 실시를 내세웠다. 이렇게 볼 때 진도 적농은 당면의 과제 해결에 있어서 처음에 조규선이 주장했던 ‘전위동맹과 같은 지역 전위정치조직의 노선’, 즉 ‘혁명주의•직접행동주의 다시 말해서 법규를 무시한 운동’을 실행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진도 적농의 조직과 실천이 미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만주사변 전에는 합법적 행동으로도 가능했던 행동강령이 만주사변 이후에는 비합법적으로 추구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일상적 이해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하더라도 일제의 파시즘체제•전시체제 아래서는 농민과의 연대•결합에 의한 실천이 그만큼 어려운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 지적되는 것은 진도 적농은 행동강령과 실천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을 ‘지주계급 타도’•‘사유재산제도 부인’에 두는 계급주의적 노선을 취했던 것인데 그것이 도리어 그 행동과 실천의 주체 범주를 스스로 제한하고 말았던 것이다. 즉 일제의 파시즘체제 아래서는 농민계급이 주체가 되어 노동자•빈민층과 연대•통합함으로써 투쟁역량을 확대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계급주의적 노선 때문에 구체적인 실천•투쟁의 단계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상에서 진도 적농은 다른 지역의 농민조합과 비교해 보면 조직화의 초기 단계에서 자진 해산 형식으로 해체됨으로써 거의 실제로 활동하지 못한 유형에 속했다. 또한 조직 형태의 측면에서 보면 ‘기성 농민조합을 극좌적으로 지도•조정하고 농촌의 피폐에 편승하여 조합의 확대•강화를 도모한’ 이른바 기존 농민조합의 개조 형태가 아니라 귀향한 소수의 청년 사회주자들이 ‘위로부터’ 새로 농민조합을 조직하는 데에 그치고 만 것이었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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